|충남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4학년 정호영| "선생님, 저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말이 참 싫어요. 왜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어야해요?"
정신과 병동 실습을 마치는 날, 실습 중 제법 친해진 나은(가명)이가 마지막 인사를 하며 했던 질문에 뭐라 대답을 해야할지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울컥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웃으며 잘 지내라고 인사하며 돌아섰지만, 그 순간은 나의 작년 1년간 병원생활 중 가장 강렬하고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되었다.
개인 정보가 노출되지 않는 선에서 말해보자면, 나은이는 오랜 우울증을 앓고있는 여고생 환자이다. 제법 씩씩하게 병동생활을 하는 것 같다가도 나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러다가도 “저는 선생님이 좋아요. 제 말 잘 들어주시잖아요. 선생님한테 말하니까 답답한 기분이 없어졌어요. 감사해요.“하며 배시시 웃던 환자였다.
3주라는 실습기간 동안 정이 꽤 많이 들었던 모양인지 나은이의 질문은 나를 속상하게 만들었다. 집에 돌아와 한참을 생각했지만 쉽사리 답을 내지 못했다. 그러게, 왜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병원에서의 생활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었다.
매주 다른 실습일정 속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많은 환자들을 비슷한 루틴으로 마주했지만, 헤어지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증상이 호전되어 웃는 얼굴로 병원을 떠나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생사의 기로에서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병원을 떠나는 환자도 있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아이가 엄마의 뱃속에서 떠나기도 하는가 하면, 10달의 기다림 끝에 새로운 생명을 안고 병원을 떠나는 엄마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러나 저러나 헤어짐은 늘 아쉽다. 환자의 완치는 정말 기쁜 일이지만, 오랜 기간동안 환자와 동고동락 하던 환자가 퇴원하여 침대가 텅 비어있는 것을 볼 때는 왠지 모를 허전함도 느껴진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생명을 떠나보내는 일이나, 오랜기간 병마와 싸우던 환자를 영원히 보내는 일은 말할 것도 없다.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을 겪으면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정의 한다면 좋든, 싫든 헤어짐은 의사와 환자의 숙명이 아닐까. 그렇지만 의사와 환자가 헤어진다고 해서 둘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의사가 행한 의술은 환자의 몸과 마음에 남아 있을테니. 그 뿐만이 아니다. 의사에게 역시 환자와의 경험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더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니 말이다.
가끔 나은이가 퇴원해서 학교는 잘 다니고 있을지, 먹고싶어하던 떡볶이는 먹으러 갔을지, 요즘은 죽고싶단 생각은 하지 않을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또 환자가 마지막에 내게 던진 질문 역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환자와 헤어짐이 인연이 다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헤어짐이 조금은 덜 슬프지 않을까. 만남과 헤어짐을 배움의 기회로 삼아 이 소중한 인연을 잘 보듬고 가야지 다짐해본다. 또한 나 역시 내가 만났던 환자의 인생의 조그마한 해답을 주었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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