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입원전담전문의 제도의 현실에 대해 어렵거나 무거운 이야기들을 지면으로나마 풀어놓았습니다.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정,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은 낮은 수가, 현장에서의 불투명한 미래 등 이제 막 그 첫 발을 내딛은 입원전담전문의의 앞에는 수많은 장벽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원전담전문의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를 이번에는 조금은 가벼운 분위기로 풀어놓고자 합니다. 이 글을 보시는 많은 분들께 자그마한 울림이 되기를 바란다.
외과 환자의 예후는 수술실에서 결정된다고들 합니다. 늘 부족한 전공의에 비해 끊임없는 수술과 수많은 환자들로 인해 외과 병동은 늘 ‘무의촌’이라는 자조 섞인 별칭을 얻게 되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도의의 훌륭한 수술 덕에 외과의 환자들은 언제나 큰 어려움 없이 호전되어 퇴원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수술을 받고 있는 환자 못지않게 병실에서 회복하고 있는 환자도 의사를 필요로 합니다. 수술 후 환자는 병실에서 통증, 발열, 창상, 배액관 등으로 끊임없이 호전과 악화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하루 한 번의 혈액검사와 회진만으로는 이러한 신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수술 환자의 곁을 지키면서 환자가 보내는 신호를 감지하고 치료하는 전문의의 존재가 환자의 예후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또한 환자와 그 가족들은 수술과 입원이라는 낯선 이 상황에 대해 항상 의사의 설명을 듣기 원합니다. 수술은 잘 되었는지, 열은 왜 나는지, 배액관의 색깔은 왜 이런지, 입원전담전문의가 없던 시절에는 과연 누구에게 묻고 누가 설명하였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많은 질문을 하곤 합니다.
환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알게된 놀라운 사실은, 생각보다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의학의 불완전성에 대해 이해하고 심지어는 심각한 합병증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을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환자-의사 간 신뢰 관계의 많은 부분은 의학적 결과가 아닌 치료 과정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환자 곁에 상주하며 끊임없이 살피고 설명하는 의사는 이에 있어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하루에 한 번만 환자를 만나도 바쁜 외과 의사가 회진을 온다며 환자들이 감격해하던 시대는 이제 지난 듯 보이며,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충실한 설명이 뒷받침되어야 환자와 그 가족들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환자 뿐 아니라 전공의 수련에 있어서도 입원전담전문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수련과정 개편과 전공의 특별법 등으로 인해 전공의들의 수련 환경은 그야말로 대 격변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저년차 전공의들에게 입원환자 진료에 대해 교육하던 상급 년차 전공의 부재의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미래의 외과 의사를 수술만 할 수 있는 테크니션으로 키워낼 것이 아니라면, 하루빨리 지금의 전공의들 곁에서 전문의가 함께 교육을 수행하여야 합니다. 상급 년차 전공의보다 풍부한 경험을 갖춘 전문의에 의한 교육의 질적 상승 효과 뿐만 아니라, 수련의의 환자에 대한 책임의 문제도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입니다.
2019년도 기준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과 전문의는 약 6200명인데 비해, 그 중 요양병원, 의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과 전문의는 약 3200명으로 절반 이상의 외과 전문의들이 수술 환자의 곁을 떠나 있습니다. 외과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수술 환자의 곁을 떠나게 만드는 의료 시스템이 부족한 것입니다.
이 중 일부 전문의들을 수술 환자의 곁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면 환자들은 더욱 안전하고 수준 높은 진료를 통해 더욱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입원전담전문의 제도가 모든 의료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열쇠가 될 수는 없습니다만, 환자 안전, 의료 질 향상, 전공의 수련 등 많은 분야에서 개선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곳에서 의사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수술 환자와 가족들이 입원전담전문의를 필요로 합니다.
환자의 필요보다 더 중요한 비전이 있을까요? 외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던 그 날의 마음 속 울림처럼, 환자들이 보내는 울림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원전담전문의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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