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과 실습을 돌며 원하는 학생들에 한해 나이트 근무를 설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교수님 말씀에 홀린 듯이 신청했다. 그렇게, 12시간의 밤샘 근무를 하게됐다.
처음엔 역대급으로 많은 환자수에 놀라며 인턴, 레지던트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술기 등을 참관했다.
4시간쯤 지났을까. 한 환자가 흉부압박을 받으며 소생실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따라들어갔다. 심장무수축(asystole)이었다. 즉시 심장 충격기(Defibrillator, 디피브릴레이터)를 부착하고 압박(compression, 컴프레션)을 교대하며 실시하셨고, 각종 약물투여를 지시하던 교수님께서 "10초 후 학생선생님 들어가세요"라며 나를 바라보셨다.
애니가 아니었다. 멀쩡히 밤산책을 하던 사람이었고, 난 지독히도 연습했던 심폐소생술(cpr)을 하기위해 가슴을 내려보았다. 배운대로 유두(nipple) 위치를 확인하고, 흉골(sternum)에 손바닥을 댔다. 압박을 시작한다. 분당 110회의 박자와 fully recoil할 수 있는 압박.
번갈아 교대하며 대충 40분이 넘어갔을까. 중간중간 맥박 체크와 전기충격이 지나가고,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살리고 싶다는 생각과 내가 조금 더 잘하면 다를 수 있지않을까 라는 생각에 압박 속도가 약간 빨라지는 듯 하자, 110bpm으로 맞춘 메트로놈을 켜주셨다.
이내 멈춰도된다는 말을 하셨다. 거기까지였다. 흉부압박으로 뱉어지는 숨소리와 여러 모니터링 장비의 알람소리로 가득찼던 소생실이 일순간 고요해지고 메트로놈만 속절없이 똑딱였다.
저 메트로놈이 똑딱거리듯 심장이 다시 뛰었다면, 저 밖의 보호자들은 오열하지 않았을 수 있을까.
내가 했던 천 여 번의 압박중 한번이라도 더 잘된 압박이었다면 돌아올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스크럽복과 캡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고, 잠시 응급실밖을 나왔다.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넘기고 터져나오는 울음을 주차장까지 참아냈다.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며 울음을 토해냈다. "우리 재호가 이렇게 성장해가는구나. 잘했다."
내 손 끝에 죽음을 담은 것은 아득히 슬픈 일이었다. 급성심근경색(AMI)로 십여년전 돌아가신 작은아버지의 기억이 떠오르고, 죄책감을 가졌다. 이내, 또다른 심정지(arrest) 환자가 응급실로 밀고 들어온다. 응급실 의료진은 다시 환자를 살리기 위해 뛴다.
배우고 공부하여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야겠다. 이 땅의 모든 응급의학과 선생님들께 깊은 존경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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