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및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의 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왔고, 특히 최근 몇 년 동안에는 갱신청구권, 권리금 보호 등에 있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런 변화로 인해 현재는 병원 건물을 임차할 때 10년 이라는 기간을 염두에 두고 시설 투자 등을 결정할 수 있고, 차임 인상, 권리금 등에 있어도 임차인의 권리가 두텁게 보호된다.
하지만 이 모든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 중 가장 간단하면서 중요한 것은 “차임을 연체해서는 안된다는 점” 이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3개월 이상 차임을 연체할 경우 임대인은 아무런 조건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갱신청구권 등 주요 권리들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들어 비슷한 사례를 반복적으로 상담요청 받은바 있는데, 시사하는 바가 있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경기도 지역에서 의원을 개원한 A는 개원 초기 인테리어 공사, 인력 채용, 인·허가 등에 바쁘다보니 초창기 임대료 입금을 깜빡 했다. 두 달 동안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고 임대료를 뒤늦게 입금하였는데, 9/1자, 10/1자 입금을 깜빡 잊고 11/3경 3달 치를 한 번에 입금했다. 시간적으로 보면 대략 두 달 정도를 밀린 셈이라 임대인에게 사과의 뜻도 전했다. (그 과정에서 A원장은 매달 1일 임대료를 선불로 지급하기로 한 것도 놓쳤고, 매달 말일에 돈을 보면 된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은 한 달 남짓 차임을 연체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임대인이 계약 종료를 통보하며 A원장의 계약갱신을 거절하였다. 거절 사유는 3달치 차임을 연체했다는 것이다. 임대료는 매달 1일에 선불로 지급하기로 했는데, 초기에 9/1, 10/1, 11/1 세 번의 차임을 연속하여 연체했으니 갱신 거절 사유가 된다는 것이 임대인의 주장이었다. A 원장이 3달치 차임을 한 번에 입금한 것은 11/1로부터 이틀이 지난 11/3 이었으니 3달치 차임을 연체한 것은 맞다. 하지만 단 이틀 차이로 계약을 해지 당한다는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법률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판례는, 임대차기간 중 어느 때라도 차임이 3기분에 달하도록 연체된 사실이 있다면 그 임차인과의 계약관계 연장을 받아들여야 할 만큼의 신뢰가 깨어졌으므로 임대인은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고, 반드시 임차인이 계약갱신 요구권을 행사할 당시에 3기분에 이르는 차임이 연체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대법원 2021. 5. 31. 선고 2020다255429호 판결). 따라서 현재는 연체가 없다고 하더라도 임대인은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A원장의 사례처럼 입주 초기에 차임 입금을 깜빡하고, 이후 계약기간동안 성실하게 차임을 지급해 온 경우까지 “신뢰가 깨졌다”고 판단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판례가 제시한 법 해석론에 따르면 A원장에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A원장은 임대인과 협의하여 5% 이상으로 임대료를 올려주고 새로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렇지 않으면 계약이 종료될 위험이 있기에 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임대료가 대폭 상승하는 불측의 손해를 입게 된 것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을 위한 여러 보호 장치를 마련하고 있지만, 차임이 연체될 경우엔 그 어떤 보호 장치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럴 경우 임차인은 건물을 5년, 10년 동안 이용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투여한 여러 노력과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게 될 수 있으니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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