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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 환자를 만난 날, 옳은 방향의 치료란 어려운 일

정태종 전공의
발행날짜: 2022-04-11 05:10:00

정태종 전공의(정형외과 1년차)

지난해 어느 여름 날이었다.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다. 작업 중에 손을 베인 환자라고 한다.

처음 본 환자의 인상은 다소 수줍은 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미성년자인지라 환자의 보호자인 어머니에게 상처가 깊게 패여 인대 및 심부조직 손상이 있으면 인대봉합술을 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처치실로 들어갔다. 환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쓰고 있는 모자로 보일 듯 말 듯하게 눈을 마주치며 리도카인 마취 주사에 통증을 표시한다.

상처를 조심조심 열어보니 깊지 않고 피하지방정도만 베인 상처였다.

봉합을 시작하기전 우연히 시선이 손목 쪽으로 향한다. 현재는 아물었지만 3개 정도의 선형의 반흔들. 왠지 모를 심상치 않은 생각에 봉합을 하며 말을 걸었다.

"학생이세요?"

"네 ,고3이에요"

"에고 많이 힘드시겠네요, 코로나 때문에도 힘든데 더워서 어떡해요."

"그러게요."

"요즘 많이 힘들고 그래요?"

"네…."

"혹시 제가 우연히 손목에 상처들이 보이는데 어떻게 다치신 거에요?"

"아… 네…" 환자는 말끝을 흐렸다.

"혹시 스스로 상처를 낸 건 아니에요?"

"맞아요, 네…."

"요즘 많이 우울한가요?"

"네."

"혹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네, 가끔요."

"많이 힘드셨나봐요, 혹시 이번에 이 상처도 스스로 낸 거에요?"

"네, 맞아요 사실…."

손바닥에 깊지 않은 정도의 상처, 힘들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라도 해야 했으리라. 누군가에게 힘들다는 소리를 스스로를 해함으로 친 것이겠지.

"학업 스트레스가 많이 힘들죠, 저도 고3 여러 해를 보내서 힘든 거 알아요, 손목의 상처는 언제 있었던 거에요?"

"작년 12월이요."

"12월이면 고3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 이런 게 심했겠다. 에고…지금까지도 많이 힘들었어요?"

"네 진짜 너무! 스트레스 받아요, 힘들어요!" 환자는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혹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받아본 적 있어요?"

"아니오. 고3이라서 그런 거같아요."

"제가 학교 다닐 때도 정신건강의학 공부를 했지만,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를 갔던 친구들도 있었어요. 가면 누가 흉보거나 이상한 곳이 아니에요 생각보다 다녀오면 많이 편해질 수 있어요. 이번에 다친 상처는 제가 꼬매고 하면 분명히 나을거에요, 하지만 마음은 꼭 치료를 받아야할 것 같아요. 제가 어머님께 많이 힘들어하신다고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까요?"

환자는 대답이 없었다.

"저는 하지말라고 하셔도 이야기할거에요, 저는 이런 사람이니까, 아픈건 보면 뭔가해주고 싶은 사람이라서, 미안해요 제가 있는 이유가 그것에 있어서 저는 그렇게 해야겠어요."

"네." 역시나 답변은 짧았다.

"앞으로 학업 스트레스는 이번 해 이후에도 계속 될 수 있어요, 그때마다 이런 일이 생긴다면 더 슬픈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런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상처는 이대로 소독 받고 2주 정도 쯤에 실밥 뽑으면 돼요. 제가 어머님과 이야기할게요."

환자와의 대화를 마치고 어머님께 다가가 말씀을 나누며 상처는 깊지 않아 괜찮지만 다른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다.

"자녀분이 지금 스트레스가 많이 심한 것 같아요, 혹시 예전에도 스스로 손목에 상처를 낸 것 아세요?"

"네 알고 있어요."

"제가 그것과 관련된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네 지금 대기실에 남편도 있으니까 같이 해주세요."

"아버님 되실까요? 상처는 괜찮고 몇일후면 회복할 겁니다. 다만 제가 손목의 상처나 이번 상처가 스스로 해한 것이라고 해서 이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자녀분에게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했다.

"저는 사실 저희끼리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도 그런 것 같아서 안 그래도 너무 걱정이 되긴합니다"라는 보호자의 답변이 돌아왔다.

"올해도 물론 너무 중요한 해이지만, 앞으로 어떤 쪽을 선택하게될 지 모르지만, 학업 스트레스는 앞으로도 계속 있을텐데 이렇게 해결하게 된다면 이후에는 너무 늦을지도 모릅니다. 부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보셨으면 좋겠어요."

응급실을 보다보면 이렇게 스스로를 해하지만 깊지 않은, 얕게 내는 상처로 오시는 분들이 있다. 크게 힘들다는 소리를 지르기에도 수줍은 지 다른 사람들이 불편할까봐 걱정하며 몸에 상처를 내서 표현하는 분들이 있다.

뼈만 보고 나사나 스크류만 박는 외과계 의사지만, 응급실에서 가장 일차적으로 상처를 보게 된다. 과거 정신건강의학과에 흥미도 있었고 현재 나에게 큰 영감을 주는 사람이 이 쪽에 있어 나도 모르게 이 날은 더 주제를 넘어버린 것 같다.

우리는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에서 환자와의 대화를 몇가지 주제로 끌어가고 결정(decision making)을 하는 연습을 하기에 이런 스스로 해하는 행동(self harm)에 관한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몇일 뒤에 다른 정신건강의학과 동료와 이야기하다 보니 오히려 이렇게 스스로 낸 상처에 큰 관심을 내는 것이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한다. 상처를 낸 모습에 타인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보며 계속해서 상처를 내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습관으로 될 수도 있다고.

마음이나, 상처나 아파서 오는 누군가를 치료하는 일은 생각보다 무척 어렵고 섬세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더 많은 사람에게 치료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고.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에게 올바른 방향으로 치료를 이끌어낸다는 것은.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올바른 방향으로의 전환을 꾀할 수 있으니 쉬지 않고 더 고민하고, 문헌들을 찾고, 타인과 토론해야 한다. 그게 젊은 의사로 좀 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전공의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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