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지속 중인 COVID-19로 인한 글로벌 팬데믹 위기에서, 국가의 모든 역량을 투입한 다양한 대응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COVID-19 진단키트의 조기개발과 보급, 해외 수출 사례는 보건의료 주권을 확립하고 국가 브랜드를 높인 주요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국내 의료기기산업이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국내 의료기기시장 규모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규제 수준과 국산 의료기기의 낮은 시장 점유율 등에 의해 많은 기업이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1년 말에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발간한 의료기기 수요 이슈 분석에 따르면, 의료기기의 수출기여도는 높으나 국내 내수 자급률이 약 40% 수준으로, 국내 사용률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에서의 국산 의료기기 사용률은 약 11% 수준으로 이에 대한 적극적인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상급종합병원에 신규 등록되는 국산 의료기기제품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으나 대부분 일반재료군에 집중돼 있어, 기업이 많은 비용을 들여 개발한 기술을 기반으로 생산된 첨단 제품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의료기기를 통한 의료행위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므로 수요자인 병원 입장에서, 특히 중증 질환을 다루는 상급종합병원은 가능한 임상결과가 축적된 기업 또는 의료기기를 선택하게 된다.
국내 기업이 제품 출시에 이르기까지 임상결과 축적을 위해 선행해야 하는 많은 과정을 수행함에도 의료기관이 원하는 수준의 신뢰성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가에서 의료기기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증제를 도입하고 인증된 의료기기의 결함으로 인한 의료사고를 기업과 국가인증기관이 동시에 담보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의료기관이 안심하고 양질의 국내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또한 의료기기 시장에서는 선점효과로 인한 브랜딩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므로, 다양한 융합 기술을 통한 첨단 의료기기 개발이 지속돼야 한다. 사업화 전략에 있어서는 전략적 M&A, 기업의 브랜드 강화를 지원하면서 국가가 국내 의료기기 기업을 보호할 수 있도록 의료산업 기술사업화 센터 등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의료계에도 빅데이터와 AI를 필두로 하는 디지털화가 미래 대응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고, 의료기기 산업계에도 넥스트 노멀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에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다. 의료기기의 디지털화는 단순한 데이터의 수집, 가공, 활용의 범주를 넘어 다양한 의료기기와의 융복합이 주를 이루게 될 것이다.
초연결로 대두되는 여러 기기의 연결성은 의료기기 분야에도 더 많은 응용성을 제공할 것이며, 환자 안전성 확보와 의료 서비스의 신뢰성 확보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기존의 의료기기 규제 과학으로는 다양한 품목의 의료기기 연결성에 대한 검증이 어려우며 임상적 데이터 확보가 어려워 현행 규제에서는 의료기기 기업이 겪는 어려움이 답습될 여지가 있다.
미국의 경우 21세기 치료법의 제정, 디지털 혁신 계획과 같은 규제의 수립이 선행된 후 디지털 치료기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례 연구를 통해 국내 의료기기 산업계가 글로벌 의료기기 시장의 점유율을 높일 수 있도록 규제 정비가 시급하다.
국내 의료기기 기업들이 첨단 디지털 의료기기 제품을 개발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규제 샌드박스를 형성해 환자에게 위해도 우려가 적은 기술부터 적용해 나가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임상에 기반한 활발한 기술연구를 통해 축적된 근거를 바탕으로 디지털화 기반 의료기기의 임상 평가 기술, 규제 개선 방향을 도출해 국내 디지털 의료기기가 충분한 임상 근거를 확보해 해외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반이 제공돼야 한다.
규제 개선의 방향성은 해외 규제와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많은 의료기기 기업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 절차 등 국내 규제와 크게 상이한 해외 규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럽은 의료기기규정(MDR)의 전환 이후 임상평가 절차가 강화되고, 임상시험 요구도가 크게 증가했다. 다행히 당국에서 규제 조화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고 임상평가 도입 방안에 대한 용역연구 공모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의료기관도 기업과 함께 규제 조화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규제 개선 이전에라도 국외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여러 사업을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협력과 동반 발전을 위해 의료진은 임상시험의 시험자 역할에서 한발 더 나아갈 것이다. 국산 의료기기가 국내외 시장에 원활하게 진입하기 위해서는 임상 현장을 이해하고 있는 의료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의료기기 임상시험에 대한 국제 규격인 ISO 14155에서 “의료기기 기업은 반드시 의학적 지식에 접근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명시된 것과 해외 임상평가 제도에서 임상전문가인 의료진의 참여가 요구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의료기기 산업계의 주된 연구인력인 공학자와 의료진 간에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특히 대학 병원과 기업이 적극적으로 교류해야 한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은 유럽의 MDR 전환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고려대학교의료원과 함께 2019년에 종합병원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국제 의료기기 임상시험 실시기관 인증인 ISO 14155를 획득했다. 2021년에는 비유럽권 최초로 의료기기 사용적합성 테스트센터가 ISO 13485 국제 표준 인증을 획득했다.
또한 2022년에 개방형 실험실 주관기관으로 재선정돼 의료기기 산업 발전을 지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와 같은 인증과 지정은 의료기기 기업이 상호 발전을 위해 동반할 때 그 효과가 증대되며, 향후 병원과 기업은 의료기기 분야에서 생산자와 구매자의 관계를 뛰어넘어 공동의 성장을 이루는 의료기기 연구개발 혁신의 중요한 원천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급변하는 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선도 국가로 거듭날 수 있도록 힘써주신 의료기기 산업계에 감사한 마음이다. 앞으로 의료계와 의료기기 산업계의 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협력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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