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입장에서는 쓸 수 있는 무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러다가는 환자에게 살 빼고 금주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지방간 클리닉을 운영하는 소화기내과 교수가 이번 급여 재평가 결과에 대해 남긴 아쉬움 섞인 평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고덱스'가 급여적정성이 없다고 평가내린 일주일. 지방간을 포함한 간 질환 치료를 전담하는 의료진들의 고심이 커지는 모습이다.
의약품 급여 재평가 방침이 그대로 진행될 경우 의사로서 환자에게 처방할 '약물'이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15일 의료계와 제약업계에 따르면 고덱스의 퇴출 위기가 알려지면서 임상 현장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지방간 약물 치료 시 처방할 수 있는 성분은 크게 3가지다. 구체적으로 실리마린(밀크시슬 추출물)과 비페닐디메칠디카르복실레이트(Dimethyl Dicarboxylate, DDB), UDCA(Ursodeoxyholic acid)로 꼽힌다.
이들 성분의 대표 품목을 꼽는다면, 실리마린은 부광약품 레가론, DDB는 셀트리온제약의 고덱스, UDCA는 바로 대웅제약 우루사다.
문제는 이들 중 레가론과 고덱스가 복지부와 심평원이 추진 중인 급여재평가에서 적정성 '없음' 판정을 받고 퇴출 위기에 몰렸다는 것이다.
먼저 지난해 급여적정성 '없음' 평가를 받은 레가론의 경우 판매사인 부광약품이 정부에 맞서 가처분 등 소송전을 벌이면서 아직까지 임상현장에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아직까지 고덱스가 최종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임상현장에서는 레가론과 같은 길을 걸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동시에 이번 급여재평가에 빠진 펜넬, 리비디 등 DDB 계열 다른 품목들도 언제든지 처방액 증가 시 평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A대학병원 지방간클리닉 교수는 "레가론이 지금 소송을 벌이고 있는 데 몇 년 지나면 결판이 날 것이다. 고덱스도 마찬가지로 같은 길을 걷지 않겠나"라며 "고덱스도 결과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다른 DDB 계열 품목들도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급여에 빠진다면 비급여로 처방하는 일이 발생할 텐데 비용만 더 올라가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의사 입장에서 앞으로 지방간 환자에게 살 빼라는 것 외에는 딱히 해줄 말이 없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아 우려스럽다. 체중감소와 금주를 제외하고 약물 치료를 할 수 없게 되는 셈"이라고 걱정했다.
그렇다면 정부의 급여재평가 과정 속 이제 남은 것은 대웅제약 우루사를 대표로 하는 UDCA 성분 의약품이다.
일각에서는 고덱스가 급여 퇴출당할 경우 직접적으로 우루사가 수혜를 받을 것이란 관측도 내놓고 있다. 다만, 우루사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 UDCA 계열 품목인 명문제약 씨앤유캡슐 또한 식약처의 임상재평가 대상으로 분류돼 있어 불안감은 존재한다.
이 가운데 임상현장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고덱스와 우루사의 약물 기전이 다르기에 직접적인 대체의약품이 되기 어렵다는 의견도 제기되지만 간장약들의 급여 퇴출 우려 속 지방간 약물치료 시 마땅한 대체 품목이 없는 상황이기에 우루사가 그 수혜를 입을 것이란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이현웅 교수(소화기내과)는 "엄밀히 따진다면 고덱스의 대체의약품이 우루사가 되긴 어렵다. 기전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이번 급여재평가 결과로 본다면 우루사도 지방간에 쓰지 못하게 돼 있기에 비급여로 전환돼야 하는 것이 맞다. 결국 이렇게 된다면 환자들이 건기식 시장으로 눈을 돌려 부작용이 더 늘어날 수 있는 부분이라 제대로 된 대응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건국대병원 김정한 교수(소화기내과)는 "지방간 치료로 국한해서 본다면 고덱스 등 DDB 약물, 레가론, 우루사까지 현재 근거 수준만 따지만 약간 부족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약물 치료로 생각한다면 이를 제외하고 임상현장에서 쓸 더 좋은 약물이 없다"며 "이런 약들이 하나둘씩 퇴출당해 최악의 경우 우루사 하나만 남는다고 했을 때 의사 입장에서 선택지가 너무 좁아진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한 교수는 "우루사가 지방간 치료 근거 수준이 실리마린 제제 등과 비교해 크게 우수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급여재평가 대상 품목을 서둘러서 퇴출하기보다 근거 수준을 찾을 기회를 주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있다"며 "결국에는 살 빼고 술 끊으라는 것 외에는 환자에게 해줄 말이 없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우루사가 최후까지 살아남는다고 한다면 한 가지밖에 처방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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