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메디칼타임즈에 처음 기고를 한 칼럼이 2019년 10월28일 '280억 vs 25억… 안전에 얼마 투자하겠습니까?' 였다. 280억은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2020년 식의약 안전기술 연구비의 규모였고, 25억은 심사관 충원을 위한 예산이었다. 필자는 평가원에 의약품/의료기기 안전을 검토하는 전문가가 희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예산은 바뀌어야 마땅하다는 칼럼을 쓴 바 있다. 그러나 그 뒤로 무엇이 바뀌었을까?
식약처는 지난 8월31일 2023년도 예산안을 보도했는데, 바이오헬스 안전관리 등을 위한 예산으로 1740억원이 책정됐고, 여기에는 의약품 부작용 등에 대한 검증을 강화하기 위해 의료기관의 실사용 데이터(RWD) 수집 분석을 위한 공용데이터모델 수집체계 구축, 인체이식 의료기기에 대한 장기추적조사, 컴퓨터 모델링 기반 의료기기 안전성 평가체계 개발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 연구들이 얼마나 식약처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지를 살펴봄으로서 식약처라는 조직이 내실을 기하는 쪽보다 겉으로 부풀리기 쪽으로 가고 있는 점에 대해서 경고하고자 한다.
먼저 식약처는 2023년 의약품 부작용 모니터링을 위해 실사용 데이터(RWD) 수집 분석을 위한 공용데이터모델 수집체계 구축을 하겠다고 한다. 올해 5월에도 식약처는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부작용에 대해서 미국, 유럽과 같이 RWD를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식약처는 RWD라는 단어를 매우 선호하고, 마치 RWD라는 단어를 쓰면 뭔가 있어 보인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미국, 유럽이 코로나 백신의 안전성 모니터링에 RWD를 사용한 것이 전혀 아니다. FDA의 VAERS, EMA의 Eudra는 오래 전부터 늘상 작동되고 있었던 부작용 모니터링 시스템이며, 코로나 백신에 대해서도 작동됐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코로나 백신에 대해서 이렇게 작동하는 기본적인 시스템이 없었다. 그래서 의학한림원에 백신안전성 연구를 위탁해야 하는 실정이었던 것이다. 어느 선진국이 코로나백신에 대한 안전성 검토를 규제기관에서 하지 않고, 학문기관에 위탁했는가? 또 FDA는 데이터 전문가들을 통해 안전성 모니터링에 RWD를 활용하려고 하는 시도를 했지만 아무리 EMR(전자의무기록)과 연동해 자료를 분석한다고 해도 수많은 교란인자, 자료 누락 등으로 인해 VAERS와 PSUR 등 기존의 안전성 모니터링 시스템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규제기관에 마땅히 있어야 하는 기본적인 시스템 구축에는 관심이 없고, 다른 나라에서도 한계를 인정한 연구에 수백억을 투자하는가?
두번째 식약처는 2023년 인체이식 의료기기에 대한 장기추적조사를 하겠다고 한다. 그럼 지금까지는 안했다는 말인가? 식약처는 2019년 8월 인공유방의 부작용 조사 등을 위한 환자 등록연구, 즉 장기추적조사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는데 그건 뻥이였단 말인가? 본인들은 뻥이나 치고, 국민의 안전 차원에서 굳이 필수적이지 않은 12등급 의료기기에 대한 공급내역 보고 같은 행정갑질이나 하는게 제대로 된 조직인가?
세번째 식약처는 2023년 컴퓨터 모델링 기반 의료기기 안전성 평가체계 개발을 하겠다고 한다.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이해도 안되지만 과연 현재 식약처가 의료기기 안전성을 위해서 하고 있는게 있는지나 살펴보기 바란다. 식약처에는 의료기기 안전성을 검토하는 전문가 자체가 없다. 의약품과 백신 부작용에 대해서는 한미약품의 올리타정 사건 이후로 그나마 임상시험 중 발생한 중대한 약물부작용에 대해서 임상심사위원(의사)을 채용해 검토하고 있지만 의료기기 쪽은 아예 부작용 검토를 하는 의사가 배치돼 있지 않다. 필자가 의료기기를 취급하는 회사에서 근무할 때 약사법에 명시된 대로 의료기기 부작용을 정리해 식약처에 보고했더니 식약처의 반응은 왜 이런 걸 보고하느냐, 부작용을 보고하는 회사는 너희가 처음이다 였다. 의약품안전관리원도 그 기능이 참으로 하찮지만, 의료기기안전관리원은 도대체 뭘 하는 조직인지 한심스러울 따름이다.
정리하면 식약처는 RWD 라든지, 컴퓨터 모델링이라든지 이런 허울뿐인 용어를 남발하지 말고, 안전성 모니터링의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현재의 나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초기 정부가 도로를 깔고, 기차를 만들고 등 기간사업을 잘 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정부 조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식약처는 가장 전문적인 조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문성이 부실해 국민들이 입는 피해가 막대하다.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자신을 PR하기 위한 promotion이 중요하다. 그러나 공직에서 일하는 리더는 국민을 위한 백년대계를 고민하고, 기초적인 시스템을 튼튼히 해야 한다. 그런데 식약처장이라는 사람들이 그런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고, 오직 자신의 잠시 임기 동안의 업적을 promotion 하는 것만 주구장창 보고 있다. 이럴거면 다시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으로 들어가 감시와 통제라고 제대로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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