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노인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OECD 2위이지만, 노인복지는 최하위이고, 노인자살율은 최고이다. 이 데이터로 추정하건데 불행한 시간들로 수명이 연장되고 있는 것이다. 즉, 복된 수명 연장이 아니라, 불행한 수명 연장이다.
필자가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코로나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사망하신 분들의 상당 수가 요양원/요양병원에 있는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코로나로 인해 가족들과의 대면도 차단된 채 쓸쓸히 죽어갔다. 필자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과연 코로나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요양원/요양병원에서 인생의 마지막 시간들을 보내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고민하게 됐다.
필자의 어머니는 수년전 췌장암으로 소천했는데 치료 방향을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고민이 돼 서울의대 은사님이시고, 이런 문제에 대해 필요한 조언을 해주실 것 같아 허대석 교수님께 메일을 드린 적이 있었다. 교수님은 환자가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즉 항암치료를 받으며 고생을 하더라도 몇 개월 더 사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또는 그렇게 사는 것은 사는게 아니라고 생각하는지에 따라서 치료 방향을 잡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해 주셨다.
필자의 어머니는 평상시에도 거동할 수 없는데 계속 사는 것은 사는게 아니라고 종종 말씀하셨었다. 췌장암으로 여명이 몇 개월 남지 않은 것을 알았지만 두려움이 없었고, 죽는 날이 천국 가는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했다. 이런 어머니의 생각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이 땅에서 함께 있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소원 때문에 필자의 어머니는 여러 치료를 받으며 고생을 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시간이 짧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시간들을 생각할 때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남은 시간을 항암 치료에 쓰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하는데 썼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후회하는 마음이 들곤 한다. 왜냐하면 어머니와의 마지막 추억이 모두 병상에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필자는 올해 우리들의 블루스 라는 드라마를 보았는데, 거기에서 옥동 할머니의 삶을 보며 노인 문제에 대한 약간의 답을 찾게 됐다. 옥동 할머니는 유방암으로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를 거부하고, 일상의 삶을 살아간다. 반려견과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고, 시장에서 야채를 팔고, 동료 상인들과 커피를 마시고, 국밥은 넘어가지 않았지만 국밥 국물을 마시며 살아간다. 인생의 남은 시간을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애정을 표현하고,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밥과 된장찌개를 끓인 뒤 기운이 다해 죽었다. 영원한 잠에 들어갔다는 표현이 어울리리라. 필자도 저렇게 죽으면 얼마나 복될까 생각했다.
인생의 순리대로 늙고 기운이 다하면 죽는 것이 복되다. 기운이 다했는데, 현대 의학으로 기운 연장(예를 들어 L-tube feeding 등), 수명 연장이 과연 의학의 바람직한 역할인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한다. 또 연명치료를 거부하듯이 어느 정도의 연령 이상에서는 항암 치료, 급성심근경색/뇌출혈 등 중증의 장애가 후유증으로 남을 수 있는 시술 등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유심히 관찰해 보니 노인을 좋아하는 존재들은 아이들, 반려견들인 것 같다. 자연스럽게 인생의 순리대로 늙고 기운이 다하는 동안 아이들, 반려견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피차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사실상 가족이 없었던 옥동 할머니에게 가족 같은 이웃이 있었듯 그렇게 편안하게 함께 늙어갈 수 있는 이웃이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가족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은 노인들을 위해, 그 자녀들이 마치 육아 휴직을 쓰듯 노인 돌봄 휴가를 쓸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노인 문제를 최우선 국정 과제로 삼은 이번 정부는 불행한 수명 연장이 아니라 순리대로 늙고 기운이 다하면 죽는 과정을 복되게 할 수 있는 그런 참된 복지를 국민과 함께 고민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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