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디지털치료기기(DTx)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대다수가 예상했던 에임메드의 '솜즈', 즉 불면증 치료 소프트웨어가 차지했다.
현재 에임메드의 솜즈와 웰트의 필로우RX가 나란히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제도 트랙에 올라있었다는 점에서 조만간 2, 3호 기기도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하지만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다는 의견도 나온다. 허가는 이뤄졌지만 여전히 수가 등 제도권 안착 문제와 의사의 처방 문제가 과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즉 이제 첫 걸음을 뗀 것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에임메드 '솜즈' 국내 1호 디지털치료기기 등극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5일 에임메드의 인지치료 소프트웨어 솜즈(Somzz)를 국내 첫 디지털치료기기로 허가했다.
솜즈는 불면증을 적응증으로 하는 어플리케이션 기반의 소프트웨어로 현재 표준치료로 여겨지는 인지행동치료를 모바일에서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모바일 앱을 통해 수면 일기를 작성하면 이에 대한 수면 습관 교육을 제공하고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지속하며 행동 중재를 6주에서 9주간 수행하면서 수면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 핵심.
에임메드는 이에 대한 유효성을 증명하기 위해 국내에서 총 3곳의 기관과 6개월간 임상을 진행했으며 그 결과 불면증 심각도 평가 척도의 개선을 인정받았다.
이처럼 국내에서도 첫번째 디지털치료기기가 탄생하면서 관련 시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디지털치료기기가 자리잡은 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코로나 대유행을 타고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이미 상당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상태.
실제로 현재 국내에서 식약처로부터 임상시험계획(IND)을 허가 받고 임상을 진행중인 기업만 10여곳에 이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중 에임메드와 웰트가 지난해 말 확증 임상을 끝내고 품목 허가를 진행중이었다는 점에서 둘 중 누가 1호 대상이 될지에 더욱 관심이 쏠렸던 것도 사실.
일단 에임메드가 1호로 이름을 올리며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2, 3호 허가 대상도 조만간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일단 2호로는 품목허가를 진행중인 웰트가 유력하다. 이어 뉴냅스와 라이프시맨틱스, 하이 등도 확증 임상을 끝냈거나 막바지 작업을 진행중이라는 점에서 연이어 허가가 나올 가능성도 존재한다.
여기에 에프앤아이코리아, 마인즈에이아이, 테크빌리지 등도 탐색 임상을 진행중이라는 점에서 빠르면 연내에 무더기 허가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디지털치료기기는 의약품과 달리 전임상과 1상, 2상, 3상 구조없이 탐색임상 다음 바로 확증임상만 거치면 품목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빠르게 트랙에 올라탈 수 있는 이유다.
제도권 안착이 관건…관련 논의는 여전히 진행중
하지만 국내 1호 디지털치료기기가 나왔다고 해도 곧바로 임상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치료기기는 말 그대로 세상에 없었던 혁신 의료기기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만큼 아직 제도권에 안착하기 위한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식약처 허가만으로는 바로 임상에서 사용할 수는 없는 상태로 신의료기술평가와 건강보험 적용 등의 문제가 남아있다"며 "조속한 사용을 위해 보건복지부 등과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인 것은 이번에 허가를 받은 솜즈가 범부처 차원에서 진행되는 혁신의료기기 통합 심사제도에 1호 대상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제도는 의료 인공지능이나 디지털치료기기 등 비침습적 의료기기를 대상으로 빠른 시장 진입을 위해 평가 절차와 기간을 대폭 간소화한 패스트 트랙.
과거에는 혁신 의료기기로 지정받아도 인허가와 기존기술여부 등을 검토해야 하는 만큼 1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지만 이 트랙에 올라 타면 식약처와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동시에 움직여 80일 이내에 모든 과정을 끝낸다.
즉 의료기기 인허가와 혁신 의료기기 지정, 요양급여여부 판정을 80일 이내에 끝낼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역시 수가다. 인허가와 혁신 의료기기 지정은 행정상으로 유효성과 안정성만 확보되면 끝이지만 수가는 건강보험 재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논의해야할 사안이 산더미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내 1호 디지털치료기기 허가가 나온 현재 상황에서도 수가 부분은 여전히 안개속인 것이 현실.
식약처는 물론 복지부와 심평원, 유관단체, 관련 기업까지 모여 이미 수차례 회의를 진행했지만 아직까지 수가 적용 방안을 학정하지는 못한 상태다.
심평원 관계자는 "식약처, 복지부 등 정부는 물론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 유관단체 등과도 긴밀한 논의를 진행중인 상황"이라며 "말 그대로 처음 시도하는 절차인 만큼 지속적인 보완과 의견 개진을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선별급여 적용 유력…"완전히 새로운 수가체계 필요"
현재까지 논의된 내용을 살펴보면 디지털치료기기에 대한 수가 적용은 선별급여에 탄력 수가를 더한 형식이 매우 유력한 상황이다.
유효성과 안전성을 인정받은 만큼 건강보험 체계 안으로 편입하되 비용효과성 측면에서 일단 환자 부담율을 높게 가져가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복지부와 심평원은 현재 선별급여 10% 단계에서 시작한 뒤 탄력 수가 등을 별도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보험에서 10%를 부담해 주고 환자가 90%를 본인 부담하는 방식으로 시작해 사용량과 원가 등을 분석해 탄력적으로 수가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디지털치료기기 개발사들도 일정 부분 이러한 체계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러한 체계에 대해 반대 입장에 있다는 점에서 갈등이 예상되고 있다. 디지털치료기기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체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치료기기를 개발하는 A기업 대표는 "당장 개발 비용 등 원가는 차치하더라도 시장 안착을 위해서는 의사와 환자의 수요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선별급여 10%로는 도저히 생태계를 만들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1호, 2호 기업이 붕괴되면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토양 자체가 망가진다는 의미"라며 "아무리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도 다시는 국내에 디지털치료기기가 나올 수 없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 기업들은 현재 심평원의 원가 산정 방식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원가 분석 시스템이 수십년전 IBM이 만든 가산 비용 방식 환산 비율이라는 점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또한 일반 의약품과 달리 소프트웨어는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를 반영하지 않으면 도태된 기기만이 남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디지털치료기기 개발 기업인 B사 대표는 "현재 심평원이 가동하는 원가 분석 시스템이 수십년전 IBM이 만든 비용 환산 구조로 로그인이 되면 1점을 가산하는 등의 매우 원초적 구조"라며 "첨단 소프트웨어인 디지털치료기기에 적용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고 꼭집었다.
또한 그는 "특히 소프트웨어 기반 치료기기를 원가 기반으로 수가와 급여 상한액을 결정하면 어느 기업이 지속적으로 펌웨어를 업데이트하고 보안을 강화하겠느냐"며 "원가가 정해져 있는데 소프트웨어에 지속적인 비용과 인력을 투입한다는 설정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처방 문제도 핵심 사안…의사들 반응도 제각각
또 하나 남아있는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바로 의사의 처방권 문제다. 디지털치료기기도 결국 일종의 치료법이라는 점에서 의사의 처방 없이는 공염불이 될 수 있는 이유다.
디지털치료기기 개발 기업들이 별도의 수가 체계를 요구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의사들의 처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동기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B기업 대표는 "이미 기업이 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끝났고 정부도 수가 체계 마련 등에 매진하고 있는 만큼 분명하게 디지털치료기기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임상 현장에 들어올 것"이라며 "이제 남은 것은 의사와 환자의 선택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상당수 기업들이 별도 수가 체계를 요구하는 배경 중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의사의 처방 유도 문제"라며 "과거 방식과 동일한 기전으로 수가를 준다면 의사 입장에서 디지털치료기기를 처방할 동기가 매우 약해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세상에 처음 선을 보이는 치료법인 만큼 의료인의 설명과 권유 등이 필수적이지만 과거 의약품이나 기존 의료기기와 동일한 방법으로 수가가 책정될 경우 의사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의료진들도 같은 의견을 내고 있다. 별도의 장치가 없다면 일부 디지털치료기기에 관심이 있는 의사들 일부를 제외하고는 누가 굳이 불편을 감수하고 처방을 내겠냐는 지적이다.
D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나야 워낙 관심이 많은 분야이고 하니 제도권에 들어온다면 학문적 호기심에서라도 처방을 내겠지만 다른 의사들은 생각이 다를 수 있다"며 "약물이나 현재 인지행동치료 수가 정도로 비용이 나온다면 굳이 의사들이 이를 처방할까 하는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아울러 그는 "특히 만약 선별급여 형식이라면 당장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더 큰데 의사 입장에서 굳이 이를 설득하고 교육하고 권유하는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와 기업, 의약단체 등이 함께 풀어야할 문제라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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