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는 사회적 자본의 가치를 가지며 개인·경제·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이는 사회 곳곳에서 위험요소를 없애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주는 덕분이다.
실제 보험연구원의 한 연구는 "신뢰는 환경·범죄·교통·주거·건강·노동 등에서 발생하는 사회비용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해 지속가능사회 발전에 기여한다"고 전하고 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신뢰는 거래과정을 감독하는데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집단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돼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의료에서도 마찬가지다.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는 의료행위 과정에서 소송 가능성을 낮추는 덕분이다. 환자는 의사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신뢰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에 지금의 필수의료 문제가 심화했다는 시각이 많다. 실제 소아청소년과 기피과 현상의 원인을 말할 때 이대목동병원 사건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여기에 지난 23일, 대구 10대 환자 사망 사고로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응급의료에서도 같은 문제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처벌기조로 의사의 의료행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됐고, 이는 불가항력적인 악결과에 대한 의료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 귀 내시경을 보다가 환아의 귓바퀴에 상처가 났다는 이유로 30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한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얘기는 이미 유명하다.
이는 의료계가 필수의료 문제를 해법으로 수가 인상을 강조하는 이유다. 의료소송 가능성을 없앨 수 없다면 더 높은 임금으로 유인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료소송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임금으로 보전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의료비 상승을 우려하는 국민 반대에 가로막히고 있다.
이에 의료계 일각에선 더는 의사들에게 사명감을 강요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거 의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이들의 사명감을 고취시켰고 덕분에 필수의료를 지킬 수 있었지만, 이젠 아무것도 없다는 주장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한 번 무너진 신뢰를 되돌리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다만 많은 연구자들은 신뢰 회복의 방법으로 공감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 한국조사연구학회의 한 연구결과를 보면 "사회집단과 사회적 거리가 먼 사회 구성원들에게 넓게 퍼져나가는 신뢰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자신과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능력인 거시적 조망수용이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국민이 의사에게, 의사가 정부·정치권에게 각을 세우는 실정이다.
필수의료 문제의 원인을 단순히 시스템의 문제로 몰아가고, 의료계 주장을 직역 이기주의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 해결을 위해 국민, 의료계, 정부, 정치권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공감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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