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시작된 한국뇌졸중등록사업(Korean Stroke Registry)이 매번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94개 병원이 참여하고 환자 등록 30만건을 넘기면서 그 자체로 연구의 '보고(寶庫)'가 됐다는 게 뇌졸중 전문가들의 평.
26개국이 뇌졸중 국가 레지스트리를 운영하고 있지만 30만건의 환자 등록은 유례를 찾기 어렵고, 실제로 뇌졸중등록사업 데이터를 기반으로 250편의 SCI급 연구 논문이 쏟아져 나온 것도 양과 질 모두를 담보하는 지표다.
연구뿐만 아니다. 자료를 기반으로 한 연례보고서는 국내 뇌졸중 환자의 특성과 급성기 진료의 현황을 파악, 뇌졸중 적정성 평가나 뇌졸중 관련 정책 반영에도 활용될 수 있다.
문제는 뇌졸중의 제반 사항 변화 파악 및 이에 대한 대응책 수립에도 불구하고 뇌졸중 치료를 위한 골든타임 확보가 고질병으로 남았다는 것. 적기에 의료기관을 찾아 치료를 받는 환자 비율이 정체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종무 대한뇌졸중학회 뇌졸중등록사업 운영위원장(을지의대 신경과)을 만나 사업 현황 및 향후 운영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뇌졸중등록사업은 한국의 급성 뇌졸중 및 일과성허혈발작의 사례 데이터를 수집하고, 뇌졸중 치료의 질을 평가하며, 모니터링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범국가적인 뇌졸중 레지스트리로 시작됐다.
2001년 23개 의과대학, 33개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첫 발족한 이후 2006년 보건복지부의 지원으로 66개 대형병원이 참여해 9년 간 뇌졸중임상연구센터(Clinical Research Center for Stroke, CRCS)의 6개 세부 과제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현황은 어떨까.
"연간 뇌경색 환자 30%, 데이터로 누적…유례 찾기 힘든 규모"
박 위원장은 "2016년에 대한뇌졸중학회 연구활성화위원회가 창립됐고, 2017년 질병관리청의 지원으로 다시 한국뇌졸중등록사업이 발족해 새로운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2020년 대한뇌졸중학회 연구활성화위원회는 한국뇌졸중등록사업 운영위원회(KSR steering committee)로 거듭났다"고 말했다.
그는 "2023년 현재 전국 94개 병원이 한국뇌졸중등록사업에, 이 중 78개 병원이 KSR 핵심 데이터베이스에 참여하고 있고, 참여 기관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사업의 목표는 급성 뇌졸중 및 일과성허혈발작의 치료 결과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고 대표할만한 국가 데이터를 제공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참여 기관이 늘어나며 양질의 데이터 축적이 가능해졌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국가 레지스트리 모델이 있지만 한국 사업에 비하면 열세다.
박 위원장은 "2016년 자료에 따르면 26개 국가에 28개의 뇌졸중 국가레지스트리가 운영중인 것으로 파악된다"며 "70%가 환자동의서를 받지 않고 있고, 25%가 전자의무기록의 연계를 통해 운영하고 있는데 북유럽은 의료사회주의 체제답게 국가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고, 미국은 의료보험 관련한 급여 인정 등의 이슈로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관에서 주도하거나 특정 목적으로 출발한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소수의 대학병원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시작했다"며 "이후 복지부 뇌졸중임상연구센터 연구과제, 뇌졸중학회 연구활성화위원회, 뇌졸중학회 한국뇌졸중등록사업운영위원회, 질병관리청 후원 단계를 거쳐 뇌졸중학회 뇌졸중센터 인증사업과 뇌졸중등록사업이 연계되면서 덩치가 커졌다"고 강조했다.
국내 연간 뇌경색 발생 건수 10만건 중 30%가 뇌경색 데이터로 등록될 정도로 사업은 원활한 편. 30만명이 넘는 누적 뇌졸중 데이터는 타국가에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방대한 양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업 시행 20년이 지나면서 뇌졸중을 둘러싼 발병 특징, 원인 등의 변화를 포착했다는 것도 수확이다. 이는 정책 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은 "지난 20년 추이를 살펴보면 뇌졸중의 발병 연령 증가가 관찰된다"며 "2002년에는 평균 연령이 64세이던 것이 2022년에는 68세로 늘어났고 85세 이상의 초고령 뇌졸중환자의 비율도 10%를 넘겼다"고 밝혔다.
그는 "뇌졸중의 발병 원인에도 변화가 생겼다"며 "고지혈증에 대한 대중의 인식 확산으로 동맥경화성 뇌경색은 주춤하고, 소혈관폐색에 의한 뇌경색은 고혈압 관리율 증가에 따라 감소하다가 최근엔 다시 정체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인구 고령화가 원인으로 지목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편 인구고령화와 더불어 심방세동이 증가해 심인성뇌경색이 증가했지만 2012년부터 와파린을 대체한 새로운 항응고제의 출현 및 광범위한 사용으로 심인성뇌경색은 최근 정체 및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뇌졸중 발병 현황 변화…치료 골든타임 정체 현상 아쉬워"
국내 뇌졸중의 특성 파악 및 경향 변화가 확인되면서 이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연구도 추진된다.
박 위원장은 "급성뇌경색 발생 시 가장 중요한 치료는 막힌 뇌혈관을 뚫는 정맥내 혈전용해술과 동맥내 혈전제거술과 같은 뇌혈관재개통술"이라며 "정맥내 혈전용해술은 응급실에서 필수적으로 고려돼야 하는 가장 높은 권고수준의 응급치료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 시행률이 감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동맥내 혈전제거술의 발전에 따른 현상일 수도 있으나 현재 권고안에서는 동맥내 혈전제거술을 고려해 정맥내 혈전용해술을 생략하는 것에 대해서는 권고하지 않는다"며 "이에 질병관리청의 지원으로 이러한 현상에 대한 현황파악, 요인분석 및 개선을 위한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도 한국뇌졸중등록사업은 정책 수립의 기반 자료로 역할했다. 대규모 감염병 사태에서 뇌졸중 진료 실태, 환자들의 행동 양식 변화를 살펴본 결과 뇌졸중 및 일과성뇌허혈발작의 진단 건수 감소 및 병원 도착까지의 소요 시간 증가, 정맥내 혈전용해술의 시행 건수가 감소가 관찰됐다. 이는 갑작스러운 감염병 유행에도 뇌졸중 진료의 연속성 대비 필요성을 확인시켜 준 것으로 평가된다.
다양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치료 골든타임이라고 할 수 있는 3시간 또는 6시간 이내 응급실 방문 환자의 정체 현상은 고질병으로 지목된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고 이는 제도와 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논의 및 결단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문.
박 위원장은 "그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뇌졸중 데이터를 마련하겠다는 일념으로 양적 성장에 대해 집중했지만 레지스트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질관리"라며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피드백을 통한 질관리로 치료 성적을 개선해 뇌졸중환자의 예후를 변화시키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빅데이터 시대의 연구 및 공익사업 등을 위한 정확한 레지스트리 자료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고 이는 사업이 다양한 목적의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발판"이라며 "학회 차원에서 데이터 공유의 당위성을 공감하고 있고 적절한 방법론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질관리를 위해 레지스트리는 필수적으로 권고되고 있고, 많은 나라가 레지스트리 동의서를 면제하고 있다"며 "동의서가 있는 환자만 레지스트리를 하게 되면 바로 사망한 환자이거나 동의서를 받지 못한 경우 레지스트리에서 누락돼 대표성을 잃게 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 차원의 레지스트리는 개인정보보호 보다는 공공의 이익이 더 큰 사안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자료의 원활한 취합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박종무 위원장은 "레지스트리는 입원 및 단기 예후 정보만 포함해 발병 전후 장기간의 진료 행태 비교, 예후 추적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국민건강보험, 심사평가원, 통계청 등 이차 자료원과의 연계가 매우 중요하다"며 "이런 경우 개별 환자 동의서가 필수적인데 행정적으로 쉽지 않아 개인정보보호와 공익의 절충점이 제시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그는 "한국뇌졸중등록사업 레지스트리는 사실상 헌신적인 연구자의 노력으로 운영되는 형편"이라며 "자료 입력 및 관리에 많은 시간과 인력이 투여되는 만큼 자료 입력에 대한 보상 방안 역시 제도를 지속하는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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