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성감별 금지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되면서 의료계가 지원사격에 나섰다. 남아선호사상이 사라지다시피 하면서 입법목적이 상실된 법안인 만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2일 의료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3월과 올해 2월 접수된 '의료법 20조 2항 위헌확인' 사건 2건을 병합해 심리 중이다. 태아 성감별 금지법을 담은 의료법 20조 2항은 의료진이 태아의 성별을 보호자나 다른 이에게 알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번 2건의 헌법소원 청구인들은 이전부터 이 조항에 위헌성이 있다고 생각하던 차에 아내가 임신하면서 청구인 자격이 생기자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부인과에서 태아의 성별을 알려줄 수 없다고 한 게 도화선이 된 것으로 청구인들은 이 조항이 범죄 억제력을 상실한 채 금지조항만 남아 있어 공연히 보호자와 의사를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아선호사상이 사라지다시피 한 상황에서 태아 성감별 금지법을 유지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지난 3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출생·사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총 출생성비는 104.7명으로 전년보다 0.4명 감소했다.
이는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90년 이후 최저치다. 출생성비는 1990년만 해도 116.5명에 달했는데, 여아 100명당 남아는 116.5명이 태어났다는 의미다.
남아선호사상으로 1990년대 110명을 넘었던 출생성비가 최근 103∼107명 수준으로 정상범위를 보이는 모습이다. 이는 남아선호사상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
의료계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특히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010년대 중반부터 자녀 성별에 대한 인위적 개입이 거의 없어져 성감별 금지조항은 실효성을 상실했다는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지금에 와선 출산연령 상향 등으로 고위험 임신이 증가해 오히려 의학적으로 성 감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또 낙태는 대부분 태아 성감별이 불가능한 임신 초기에 이뤄져 관계없으며, 성별 확인을 원하는 건 부모인데 이를 고지한 의사만 처벌하는 규정은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내놨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역시 의견서를 내고 남아선호 경향의 감소가 뚜렷하고 출산율·성비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조항을 유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또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가임기 여성 1만 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낙태의 원인은 성별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응답자의 97.7%가 성 감별이 불가능한 16주 이하 시기에 인공임신중지를 했다는 것.
산부인과의사회는 태아 성감별 금지법이 갖는 모순과 부작용을 지적했다. 성 감별을 원하는 것은 보호자인데, 이에 응했다는 이유로 의료인만 처벌하는 것은 기존 낙태죄와 비교하더라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이 법안으로 성 감별을 거절당한 보호자가 초음파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불특정 인물에게 성별을 확인받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는 것. 더욱이 이 경우 어떠한 법적 제재가 없다.
이와 관련 산부인과의사회는 "낙태죄가 폐지된 상황에서 그 사전행위인 태아 성 감별금지법의 존재는 모순적이다. 시대의 변화에 입법목적이 상실되고, 위법 여부가 모호하며, 현재적 의의를 잃었다"며 "최근 태아 성감별 금지법에 따라 처벌받는 사례는 거의 없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필요치 않은 법 규정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사료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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