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약이 무효했다. 의료 대란을 막고자 정부가 인기 전공 과목 지원을 모두 열어주는 유례 없는 특별 혜택까지 내밀었지만 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정부의 갈라치기가 통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나마 눈치를 보며 지원한 전공의들조차 비판을 우려하며 지원 사실 자체를 숨기고자 하는 부작용만 나타났기 때문이다.
메디칼타임즈는 하반기 전공의·인턴 모집 마감일인 31일 50개 수련병원을 대상으로 지원율을 조사했다.
그 결과 지원자가 있는 병원은 10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저도 대부분이 지원자가 1~3명에 그쳤으며 국립중앙의료원 만이 이례적으로 7명의 전공의를 받았다.
이례적인 것은 주요 수련병원들이 구체적인 지원자 수와 지원 과목을 밝히는 것을 꺼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원자가 1~2명 등 소수라는 점에서 이들이 비판의 대상이 될까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그나마 전공의 모집에 지원한 인턴들은 본인이 지원한 사실 자체를 대외비로 해달라고 요구 조건을 단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A수련병원은 전공의 지원자가 있었지만 그가 특정될 것을 우려해 공식적으론 지원자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마찬가지 이유로 빅5로 불리는 대형병원 역시 지원자와 지원 과목 자체를 밝히지 않았다.
서울의 B수련병원 교육수련부 관계자는 "지원자들이 어떤 과에 지원하는지 밝히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며 "이미 특정됐거나 특정되는 것을 우려하는 상황이라 병원 측에서도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다"고 말했다.
이에 의료계에선 정부가 의료 대란을 극복하기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등 인기 과목의 정원을 특별히 열어주는 등의 유화책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되려 지원 전공의들이 부담감만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8일 모든 전공의를 복귀 여부와 상관없이 행정 처분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복귀 전공의와 사직 후 올해 9월 수련에 재응시하는 전공의에 대해 수련 특례를 적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는 전공의들을 갈라치려는 속셈이라는 게 의료계 판단이다. 원칙 없이 특례를 정하는 것부터 부적절한데다가 이를 차별적·선택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전공의들을 위협·탄압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참담한 결과가 나오자 오히려 전공의들이 복귀하기 더 어려워지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셈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복귀를 고민하다가 정부 대책을 보고 사직을 결심한 전공의들이 적지 않다"며 "말만 유화책이지 내용은 협박이나 다름없어 오히려 전공의들의 반발을 키우는 결과만 낳았다"며 말했다.
이어 "차라리 정부가 가만히 있었다면 지원율이 더 높지 않았을까 싶다"며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전공의들만 일부 복귀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부가 갈라치기로 하반기 모집에 대한 반감을 키우면서 지원자들의 부담감만 키운 셈"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성명서를 내고 정부의 갈라치기가 통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는 이상 정부가 그 어떤 대책을 내놓는다 해도 실패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또 '2천명 의대정원 증원 정책의 진실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청에 관한 청원'이 5만 명 동의를 얻은 만큼 조속한 국정조사 추진도 촉구했다.
의협은 "정부가 의료계와 대화한다면서 노골적 겁박을 시도한 게 한두 번이 아니며 최근까지도 의협 지도부 소환조사, 의료계 단체행동에 대한 보복성 수사 등을 계속했다"며 "복귀 전공의 블랙리스트를 잡는다고 으름장을 놓고 수련 보이콧 시 법적 대응 한다고 엄포를 놓으며가차 없이 공격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는 이제 이전의 의료를 누릴 수 없게 만든 것에 석고대죄해야 한다"며 "이번 의료농단은 정부가 무근거·무분별한 의대 증원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며 시작됐는데 심정지 된 의료시스템에 심폐소생술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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