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의사도 합의안과 같은 정보가 없다면 적절한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
이상지질혈증 관리에 비상등이 켜졌다.
스테로이드, 항정신병제, 항고혈압제 등의 약물은 이상지질혈증을 유발할 수 있지만 만성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이러한 약물들을 장기간 사용하는 환자들이 많아지면서 이상지질혈증 발생 위험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특히 고령화로 인해 만성 질환이 증가하면서 약물 사용도 함께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이상지질혈증 관리의 어려움을 예고하는 지표. 문제는 이와 같은 유발 원인이 다양해 지면서 점점 원인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가 전 세계 최초로 '이차성 이상지질혈증에 대한 전문가 합의안'을 마련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상학 진료지침이사(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에게 이상지질혈증에 대한 전문가 합의안 마련의 배경 및 치료 패턴 변화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원인 모르는 치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유전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일차성 이상지질혈증을 제외하고 이차성 이상지질혈증은 주로 기저 질환 또는 약물 사용, 고령화, 생활습관 등에 기인한다.
학회가 마련한 합의안은 이차성, 즉 음식, 기저질환, 치료약제와 같은 다른 특정 원인에 의해 발생한 이상지질혈증의 진단과 치료 관련 내용을 담고 있다.
이상학 진료지침이사는 "이상지질혈증 상태를 야기하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을 찾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한 원칙"이라며 "약제를 통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춘다고 해도 특정 수치를 높이는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발생 빈도로 보면 식품에 의한 경우가 많을 수 있지만 합의안에서 강조했듯이 이차성 이상지질혈증 환자 처치에서 중요한 것은 여기에 해당되는 경우인지를 의심하고, 꼼꼼하게 원인을 찾는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지질강하제를 시작하기 전에 이런 절차를 밟는게 핵심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상지질혈증에 관한 국내외의 여러 진료지침에 이차성 원인이 언급됐지만 실제 치료에 적용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빈약했다"며 "원인이 되는 식품, 질환, 약물을 찾아보고 제거해 보라는 간단한 지침 정도만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진 못 했다"고 설명했다.
기존 지침은 단순히 원인을 파악해 제거하라고 기술하는 정도에 그쳐 해당 원인의 종류 및 각 원인에 따른 지질 수치의 변화 정도, 이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 방법론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
이 이사는 "수년간 항암제, 스테로이드, 면역억제제 등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 수치를 올리는 약제가 매우 다양해져 원인을 찾는 것이 까다로워졌다"며 "특히 약물은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치료 현장에 도입되기 때문에, 약물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이상지질혈증과 같은 부작용 가능성은 의료진들이 충분히 예상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차성 이상지질혈증은 여러 원인이 발생할 수 있어 일반 의료진뿐 아니라 이상지질혈증을 주로 보는 내과의사도 합의안과 같은 정보가 없다면 적절한 대응이 어려울 수도 있다"며 "이에 합의안은 어떤 검사를 해야하는지, 원인에 대한 대처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떤 순서로 하는지에 대헤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안에서 이차성 이상지질혈증을 크게 고콜레스테롤혈증과 고중성지방혈증으로 나누고, 원인은 크게 음식, 질환, 약제 등 3가지로 분류했다.
음식 항목은 적색육, 가공육, 트랜스지방, 고탄수화물, 가당, 알코올 등을 원인으로 지목했고, 질환 항목은 갑상선기능저하증, 간질환, 담관염, 신증후군, 비만, 조절되지 않는 당뇨병, 쿠싱증후군, 만성 콩팥병, 자가면역질환, 패혈증 등을 콜레스테롤 또는 중성지방 수치를 높이는 주범으로 지목했다.
약제로는 심혈관계 약물, 스테로이드호르몬, 피부질환 약물, 면역억제제, 항감염제, 항경련제, 항암제, 항정신병 약물 중에 원인 약물이 있을 수 있다.
■"도식·그림으로 이해도 높여…합의안 대로 하면 원인 찾기 가능"
이번 합의안은 전 세계적으로 최초로 꼽힌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진료지침위원회는 1년 여의 준비 끝에 이를 마련, 학회 저널 Journal of Lipid and Atherosclerosis와 대한내과학회의 국제학술지인 Korean Journal of Internal Medicine의 최신호에 게재케 했다.
이상학 이사는 "이번 합의안은 이차성 이상지질혈증의 원인과 치료에 대한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자료를 위원들이 검토하고 정리한 것"이라며 "특히 원인에 대해 최근에 밝혀진 메커니즘, 다양한 약물에 의한 이상지질혈증을 최대한 자세하게 정리했고, 이해하기 쉽게 그림을 추가하거나 대응방침에서 일선 의사들이 각 상황별로 이용할 수 있도록 도식화하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 입장에서 약물에 대한 주의를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의사 입장에서는 보다 세심한 주의와 관심이 필요하다"며 "약이란 항상 필요에 의해서 쓰는 것이고, 합의안에 언급된 약도 이상지질혈증 부작용을 항상 유발하지는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약제 사용 후 이상지질혈증이 나타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관심을 촉구했다.
그는 "이상지질혈증 유발 위험성이 큰 스테로이드 같은 경우는 대부분의 의사가 부작용에 대해 많은 지식이 있으므로 진단을 놓지는 경우가 오히려 적을 수 있다"며 "진단과 대응이 어려운 경우라면 이차성 지질혈증이 심하게 나타날 때라고 할수 있는데, 재차 강조하지만 이차성 원인을 의심하고 합의안에 따라 차분하게 대응하면 큰 문제없이 원인의 찾기와 제거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합의안은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지(JLA)와 내과영문학회지(KJIM)에서 무료로 다운로드록 공개했지만 진료실에서 쉽게 참고·활용할 수 있도록 한글판도 계획하고 있다.
이상학 이사는 "국제학술지에 먼저 공개한 까닭에 아직은 영문판만 마련됐다"며 "국내 의료진의 경우 아무래도 한글이 편할 수밖에 없어 내과학회지에 한글판 공개 계획도 세우고 있고, 이와 관련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홍보위원회에서 합의안에 대한 홍보방안을 추가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차성 이상지질혈증이 새로운 문제는 아니지만 그간 좀 경시되거나 지질 수치만 낮추면 된다는 식으로 대충 처리되던 경향이 있었다"며 "국제적으로 이번 합의안이 마련이 처음이라는 것이 이를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고 밝혔다.
그는 "체계적으로 원인과 원인을 찾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했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꽤 관심을 가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특히 합의안을 통해 지질강하제 투약 전 원인 찾기를 수행하는 것이 대응 절차로 자리잡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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