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 &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 공동기획]
장기 기증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나, 여전히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실정입니다. 일선 현장의 의료진들이 경험한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장기 기증 인식률을 높이고, 이를 촉진하는 공동기획 시리즈 ‘오늘, 장기이식병원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21회] 11월, 뇌사 장기기증자를 위한 위령미사를 봉헌하며
김미형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 교수
혈관이식외과 의사로서 제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일화로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제가 혈관이식외과 의사가 되고 두 번째나 세 번째 해였던 것 같습니다. 긴 투병으로 지쳐 있던 환자들이 수술만 하면 소변을 보고, 안색이 맑아지며 활력을 찾는 모습을 보고, 그런 드라마같은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 좋아 신장이식을 하는 의사가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는 일에 무척 보람이 있었고, 할 줄 아는 수술도 점점 늘어나 마냥 의욕이 넘치던 시기였습니다. 뇌사 의심 환자가 생기면 이식을 준비하느라 수술 전날부터, 수술하는 날, 때로는 그다음 날까지도 제대로 쉴 수 없어서 꼬박 3일을 매달려야 했지만, 뇌사자 기증 장기이식이 생기는 것을 한번도 마다하거나 부담스러워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날도 젊은 뇌사 의심 환자가 전원되어 왔고, 노숙자였기 때문에 보호자를 찾아야 한다고 해서 이식수술이 지연되겠구나 하며 조바심이 났습니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보호자분과 일찍 연락이 닿았습니다. 보통은 보호자분이 환자분을 면회할 때 참석하지 않는데, 그날은 우연히 면회하는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두 분 다 백발의 어르신이었고 소박한 옷차림이었습니다. 크게 오열하지도 않으셨고, 그저 담담히 환자분의 얼굴과 손을 여러 번 쓰다듬고 돌아가실 뿐이었습니다. 면회가 끝난 후 코디네이터 선생님을 통해 들은 얘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환자분이 지적장애가 있어 어린아이 같았대요. 어느 날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고, 10여 년 만에 닿은 첫 소식이 오늘이었대요.”
“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겠네요.”
“그동안 아들이 나가서 분명 다른 사람들에게 밥을 빌어먹었을 텐데…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기증을 결정하셨대요.”
“…”
이 얘기를 듣고 머리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할 틈도 없이 두 눈 가득 눈물이 쑥 올라왔습니다. 10년 전 잃어버린 아들이 뇌사 상태로 누워있는데, 두 손에 꽉 쥐고 있던 어떤 것이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을 텐데 그래도 내가 못 챙겨줬던 끼니를 챙겨준 고마움을 말씀하시는 두 어르신. 가족의 죽음 앞에 수만 가지 생각과 감정이 몰아칠 텐데, 남은 가족은 이런 마음으로 기증을 결정하시는구나… 심장, 폐, 간, 신장, 각막을 주고 가시는 고마운 분, 단순히 이게 아니구나… 수백 겹의 슬픔, 그리움, 깊은 사랑, 헛되이 보내고 싶지는 않은 마음… 이런 것이 쌓이고 쌓인 후에 하나의 뜻으로 정제해서 내린 결정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년 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11월에 위령미사를 올리고 있고 저희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희는 2021년부터 미사에 뇌사 장기기증자 가족분들을 모시고 함께 미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첫해에는 몇 분의 뇌사 장기기증자 가족분들, 그리고 저희 장기이식병원 식구들이 참석하였고 미사 중에 다들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올해 4번째 미사를 함께 봉헌하였습니다.
올해는 매년 오시던 뇌사 장기기증자 가족분들뿐만 아니라 수혜를 받은 환자분들, 그리고 이식 업무와 관련이 있는 부서는 물론,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부서에서도 정말 많은 분들이 함께 미사에 오셔서 뇌사 장기기증자분들과 또 남은 가족들의 안녕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자리가 부족하여 간이의자를 놓아야 했고 꽃을 봉헌하는 시간에는 준비해 주신 성가를 2번, 3번 다시 불러야 할 정도였습니다. 네 해째 뵙는 뇌사 장기기증자 가족분들은 첫해에는 깊은 슬픔에 보는 사람도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울기만 하셨지만, 올해는 집에 가실 때 옅은 미소로 인사하며 돌아서셨습니다.
그럼에도, 4년이 흘렀지만, 미사 중 꽃을 봉헌하며 가족의 이름 앞에 섰을 때, 미사 후 장기이식병원에 들러 한쪽 벽에 남겨진 가족의 이름 앞에 섰을 때는, 마치 그 이름 석 자가 가족인 듯, 그리고 그리운 가족을 만났다가 이제 다시 헤어지려 하는 듯, 손으로 이름표를 아끼고 아껴서 천천히 쓸어 만지는 모습을 보면 시간이 흐른다고 남겨진 가족의 그리움과 슬픔이 낫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앞에서 저는 이식외과 의사로서 저의 역할을 생각합니다. 신장동맥과 정맥, 요관을 잇는 수술을 잘하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객관적인 사실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눈으로 보이지도 않고 남들이 봐서 알 수 없고, 제 스스로도 그게 어떤 것인지, 어떤 크기인지, 어떻게 담아야 할지 잘 알지 못하지만 무언가 담아야 한다, 그것도 진심으로, 잘, 꾹꾹 눌러서 밀도 있게 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다리던 연락을 받고 응급실에 온 수혜자에게 이 수술이 어떤 의미인지를, 기증자분 수술을 진행할 때 내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그렇게 받은 소중한 장기가 빛을 충분히 발할 수 있도록 수혜자를 어떻게 진료해야 할지를, 그리고 장기기증자와 그들의 가족들을 위해 저와 우리 기관이 어떻게 그 마음을 헤아려야 할지를. 나는 그리고 나의 가족은 이제 쉼으로 돌아가지만, 내 가장 귀한 것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다른 사람에게 주고 가겠다 하신 고귀한 뜻이 수혜자에게로, 또 우리 모두와 이 사회 전체로 잘 전해질 수 있도록 바느질 한 땀, 말 한마디에도 철학과 진심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올해 미사를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지켜보며, 이 글의 처음에 말씀드렸던 두 분의 어르신을 모실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분은 숭고한 생각으로 어려운 결정을 하셨지만 정작 두 분의 마음은 위로받지 못했을까 봐 걱정이 됩니다. 내 가족의 일부가 어디선가 살아서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로 이미 위로를 받으셨을 수도 있지만 그 미사에 함께 하셨다면 어르신 두 분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감사한 마음으로 아드님을 위해 기도드린다는 사실에 조금은 마음이 더 따뜻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글을 마치며, 모든 뇌사 장기기증자분들과 그 가족분들께 가슴 깊이 존경을 표하며 마음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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