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업무보고에서 유전성 탈모 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적용 검토를 지시한 것에 대해 의료계가 강력한 우려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17일, 복지부에 탈모치료제 급여화가 건강보험 재정에 미칠 파장을 분석한 보고서를 를 통해 "최대 3.6조원의 재정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촉구했다.

국내 탈모 인구는 약 1000만명으로 추산되며 관련 시장 규모만 4조원에 달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5년간 탈모증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111만 5882명, 총 진료비는 1910억원이었다.
문제는 급여 적용 시 현재 치료를 받지 않는 수백만명의 잠재 환자가 공적 시스템으로 유입되면서 수요가 폭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재정 추계의 심각한 괴리를 지적했다. 과거 대선 공약 검토 당시 제시됐던 연간 700억~800억원 수준의 추가 부담 추산은 현재 시장 규모를 단순 적용한 것으로, 급여화에 따른 가격 하락과 수요 증가 효과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약값이 저렴해지면 경제적 부담으로 치료를 포기했던 환자들이 대거 유입되는 이른바 모럴 해저드 현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분석이다.
의료계와 보건경제 전문가들이 제시한 현실적인 추계는 충격적이다. 수요 폭증을 반영할 경우 연간 추가 재정 지출은 1조원에서 최대 3.6조원까지 급증할 수 있다.
이는 단일 질환의 급여 확대 규모로는 전례 없는 수준이며, 암이나 희귀난치병 등 생명과 직결된 중증 질환의 급여 확대에 사용될 재원을 잠식하게 된다.
법적 정당성 확보도 난제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는 미용 목적이 강한 행위나 치료재료를 비급여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유전성 탈모는 국제질병분류(ICD-11)에서 L64.8 코드를 부여받는 질병이지만, 치료 목적이 주로 삶의 질 향상에 집중돼 있어 '미용과 질병'의 경계가 모호하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급여화가 추진될 경우 법적 형평성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형평성 문제는 더욱 첨예하다. 백혈병 환우회 등 중증 질환 환자단체들은 생명과 직결된 CAR-T 치료제 같은 고가 신약의 우선적 급여 확대를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탈모 치료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필수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중증 환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이다.
대통령실도 무제한 보장의 위험을 인식하고 있다. 급여 적용 시 처방 횟수나 총액을 제한해 재정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하도록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객관적인 임상 지표를 활용한 중증도 기반 차등 적용, 연간 처방 일수나 최대 급여액 설정 등의 제한적 급여 모델만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제시했다.
다만 제한적 급여 모델 역시 중증 기준 설정의 어려움, 복잡한 행정 절차, 의료진의 진료 자율성 제한 문제와 맞닿아 있다. 탈모 치료제는 의료진 판단으로 자유롭게 사용돼 왔던 분야인 만큼, 엄격한 급여 기준 설정 과정에서 행정적 규제가 의료 전문성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예상된다.
김 회장은 보고서를 통해 건강보험 재원 외 대체 재원 마련을 제안했다. 탈모 치료 비용에 대한 소득공제 확대 등 세제 지원이나 민간 실손보험과의 연계 강화를 통해 공적 재원 부담을 분산시키자는 것이다. 또한 단순 추계치가 아닌 수요 폭증을 반영한 현실적인 재정 시나리오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적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질병 분류 기준 확립, 치료제의 의학적 효과 및 경제성 평가, 건강보험 재정 영향 분석 등 3단계 검토 절차를 거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의결을 얻어야 한다. 대통령 지시로 검토가 급물살을 탔지만, 실제 정책 실현까지는 행정적·기술적·사회적 합의 절차상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김재연 회장은 "충분한 논의 없이 추진될 경우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신중한 접근을 거듭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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