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 우리나라 의료 인공지능(AI)이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지만 정작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 개발을 위한 데이터 활용에 대한 제약으로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복잡한 데이터 확보 절차와 품질, 규격 표준화 문제가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맞춰 정부가 특별법 제정을 언급하며 대책 마련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30일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실은 한국AI의료헬스케어연구원·범부처통합헬스케어협회 등과 '디지털 헬스케어 진흥 및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관련 입법 방향' 국회 세미나를 개최했다.

■우수 기술력·인프라에도 국내 산업계 고전 "데이터 제약 때문"
이 자리에서 헬스올 도형호 대표(HL7 코리아 운영위원장)는 주제발표를 통해, 국내 기업의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 개발 애로사항을 짚으며 규제 완화 및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도 대표는 현재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 해외 기업들이 우리나라 기업보다 앞서가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센서·클라우드·모바일 플랫폼 등 기술적 측면에 강점이 있고, 전 국민 건강보험과 높은 전자의무기록(EMR) 보급률 등 우수한 데이터 인프라를 갖춘 것과 반대되는 상황이다.
도 대표는 이런 시장 구도는 관련 산업의 핵심이 기술 격차가 아닌 데이터 활용 역량에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업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확보한 뒤 실제 개발에 돌입하려 해도, 병원 설득,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 승인, 가명 처리 및 반출 심사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수개월에서 수년의 시간이 소진돼 결국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
도 대표는 "한국의 보건의료 데이터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의 활용이 몹시 어려운 상황이다. 기업들은 임상 가치 입증보다 인허가와 행정 절차 대응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고 있다"며 "데이터 확보와 정제 단계에서 제품 개발이 지연되는 사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해외 국가들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망자 데이터 접근 제한도 지적…표준화로 개발 비용 수직상승
디지털 헬스케어 AI 학습에 매우 효과적인 사망자 보건의료 데이터의 활용이 제한적인 상황도 문제로 지적했다. 사망 데이터는 질병의 발생부터 진단, 합병증, 사망에 이르는 전 과정을 담고 있어 AI 학습의 완벽한 정답지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통계청,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여러 부처의 규제에 묶여 기업 접근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사망자 데이터 활용을 위한 제도적 특례 도입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
또 데이터 양적 확보를 넘어 품질과 상호 운용성을 위한 표준화 문제도 걸림돌로 지목했다. 병원마다 혈압, 체온 등을 기록하는 단위나 구조, 코드가 달라 이를 통합하고 매핑하는 데 기업 입장에서 기하급수적인 비용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의료기관에서 데이터를 원활하게 추출할 수 있는 시스템 보완과 함께 상급종합병원과 여타 의료기관 간의 데이터 품질 편차를 줄여야 한다는 제언이다.
실제 미국의 경우 '21세기 치료법' 등을 통해 정보 차단을 막고 인센티브를 부여하며 데이터 품질 프레임워크를 고도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도 대표는 "사망자 데이터는 질병의 처음과 끝을 모두 담고 있는 핵심 정보임에도 여러 부처의 규제가 얽혀 있어 기업이 사용하기 매우 어렵다"며 "병원에서 양질의 데이터를 원활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균형 잡힌 특례를 마련하는 한편, 상호 운용성을 담보할 수 있는 국제적 기준의 표준화와 데이터 품질 체계 구축이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 기술 수익으로 안 이어져 "수가 및 실증 인프라 확충해야"
어렵게 제품을 개발한 이후에도 실증 및 사업화 단계에서 또 다른 장벽에 부딪히는 상황도 우려했다. 임상 환경에서 실증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가 여전히 부족하며, 무엇보다 혁신 기술이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 명확한 수가 체계가 부재하다는 비판이다.
도 대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과제로 ▲의료 정보 접근 절차 개선 ▲사망자 데이터 활용 특례 ▲KR 코어(Core) 등 기반의 상호 운용성 확보 ▲데이터 품질 지표 및 검증 체계 구축 ▲실증 및 사업화를 위한 국가 인프라 확충 등 5가지를 제안했다.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더라도 구매 주체가 이를 도입할 수 있는 건강보험 수가 체계 등 현실적인 사업화 연계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 대표는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한 유망 기업들도 결국 사업화 과정에서 수가 문제에 부딪히고 있는 만큼 실증 인프라와 연계된 건강보험 보상 체계에 대한 고민이 필수적이다"라며 "데이터 접근 절차 간소화와 품질 검증 규범을 확립해 질 좋은 데이터가 자유롭게 모이는 환경이 조성돼야 비로소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계 거버넌스 일원화 촉구…의료계 "법적 책임 분산 먼저"
이어진 패널 토의에서도 산업계 성토가 이어졌다. 제이엘케이 류위선 CMO는 뇌졸중 환자 등 골든타임이 중요한 질환에서 데이터를 활용하지 못해 발생하는 해악을 헤아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다기관 연구 시 병원마다 별도로 거쳐야 하는 IRB·DRB 절차를 상호 인정해 주는 등 거버넌스 일원화가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선 가이드라인 수준이 아닌 특별법 수준의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
딥노이드 현지훈 연구소장 역시 실제 AI 연구 개발 기간 1년 중 10개월이 데이터를 확보하고 병원을 설득하는 데 소요된다고 토로했다. 현재의 폐쇄망(안심존) 중심 데이터 제공 방식을 넘어, 보안 인증을 거친 외부 환경에서도 데이터를 반출해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유연하게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다. 이를 위한 국가 주도 데이터 유통 체계 마련도 촉구했다.
다만 의료데이터는 환자의 민감 정보인 만큼, 활용하기에 앞서 이를 보호하고 법적 소재를 명확히 할 근거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대구로병원 영상의학과 우옥희 교수는 현재 데이터 활용에 따른 책임이 오롯이 의사와 의료기관에 지워지는 구조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병원 내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나 데이터심의위원회(DRB)의 기준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형·비정형 데이터의 표준화와 더불어 국가 차원의 신뢰할 수 있는 중개 기관을 마련해 안전성과 책임 문제를 분산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복지부, 특별법 연내 제정 추진 "규제 부담 완화 및 활용 도울 것"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각계의 이견을 조율해 올해 안에 보건의료 데이터 특별법 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법안은 의료법·개인정보보호법 등 여러 법률에 분산된 의료데이터 활용 기준을 일원화해 법적 불확실성과 규제 부담을 완화하는 것이 골자다.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육성 및 연구 활성화를 위해 보건의료 데이터의 2차 활용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와 함께 입법 전이라도 행정 절차를 개선해 데이터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해외 디지털 헬스케어 사례 대응과 관련 법안 제정이 국정과제인 만큼 관련 절차를 신속히 정비하겠다는 의지다.
복지부 최경일 과장은 해당 법 제정이 10년 넘게 지연된 배경으로 산업계, 의료계, 시민사회단체, 환자단체 등 이해관계자 간의 극명한 시각차를 꼽았다.
산업계는 활발한 데이터 활용을 촉구하는 반면, 시민단체 등은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해 대립이 지속돼 왔다는 분석이다. 다만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양질의 데이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국면이 전환되고 있다는 것.
특히 난치성 질환 환자단체를 중심으로 치료제 개발을 위한 데이터 활용 요구가 높아지는 등 시장 상황이 변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실제 복지부 외에도 산업통상자원부의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법,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바이오 데이터법 등 유사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복지부는 국회 입법 논의 과정에서 이들 법안이 긴밀히 조율돼 결론을 낼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법 제정 전이라도 현장의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지적된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와 데이터심의위원회(DRB) 등 절차적 지연 문제를 우선해서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의료 정보 표준화와 전자의무기록(EMR) 확산을 위한 정책적 노력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 최경일 과장은 "개인정보 보호와 양질의 데이터 제공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균형 있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현재도 데이터 활용은 이뤄지고 있지만, 현장이 겪는 절차적 지연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IRB와 DRB 심의 구조를 우선해서 개선하겠다. 의료기관의 표준화 수용성 제고 등 법 제정 없이도 가능한 조치들을 신속히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산업부와 과기부에서도 유사 법안이 발의될 만큼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큰 상황이다"며 "국회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해 올해 안에는 완성도 높은 법안이 제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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