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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치료제 1조 원 시대…정작 필요한 환자는

고대 안암병원 한병덕 교수
발행날짜: 2026-09-14 05:00:00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가정의학과 한병덕 교수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한병덕 교수

비만 치료의 시대가 달라졌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만 진료의 가장 큰 어려움은 효과적인 치료 수단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식사와 운동만으로 의미 있는 체중감량을 장기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고, 기존 비만치료제 역시 효과와 부작용 측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GLP-1 수용체작용제와 GIP/GLP-1 이중작용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비만치료제의 등장은 이러한 상황을 크게 바꿨다. 세마글루타이드와 터제파타이드 등을 통해 과거에는 비만대사수술에서나 기대했던 수준에 가까운 체중감량도 가능해졌다.

시장의 반응도 폭발적이다. 마운자로는 국내 출시 1년 만에 매출이 1조 원에 육박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비만치료제가 국내 의약품 시장의 중심으로 들어왔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변화다.

그런데 진료실에서는 이와는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있는데, 정작 치료가 가장 필요한 환자가 비용 때문에 그 약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만은 질병이지만 치료비는 개인의 몫

비만은 단순히 많이 먹고 적게 움직여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유전적·생물학적 요인과 환경, 사회경제적 조건, 수면, 스트레스, 약물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만성질환이다.

체중이 감소하면 우리 몸에서는 에너지 소비가 줄고 식욕이 증가하는 등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려는 생물학적 반응도 나타난다. 어렵게 체중을 감량한 뒤 다시 증가하는 것을 단순히 환자의 의지 부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비만이 수많은 질환과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제2형 당뇨병,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심혈관질환, 지방간질환,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퇴행성 관절질환 등 비만과 관련된 질환은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고도비만 환자의 체중을 치료하는 것은 외모를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당뇨병과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낮추고 비만 관련 합병증을 예방하거나 개선하며, 궁극적으로 건강수명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치료다.

그런데 여기에서 역설이 발생한다.

당뇨병이 발생하면 건강보험을 통해 약물치료를 한다. 고혈압과 이상지질혈증도 마찬가지다. 비만으로 수면무호흡증이나 관절질환이 발생하면 그 합병증에 대해서는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질환의 중요한 원인이 되는 비만을 약물로 적극적으로 치료하려 하면 환자가 상당한 비용을 직접 부담해야 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치료 필요성이 높은 고도비만 환자들이다.

진료 현장에서는 여러 비만 관련 합병증을 가지고 있어 적극적인 체중감량이 필요한데도 경제적인 이유로 약물치료를 시작하지 못하거나, 효과를 보고 있으면서도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중단하는 환자를 만날 수 있다.

비만을 만성질환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장기간 지속해야 할 치료비를 사실상 개인의 경제력에 맡겨놓는다면 치료의 형평성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모든 환자가 아니라, 가장 필요한 환자부터

그렇다고 모든 비만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비만 인구를 고려하면 잠재적인 치료 대상자가 매우 많고, 새로운 비만치료제의 가격도 높다.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만큼 무분별한 급여 확대는 건강보험 재정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정상체중이나 경도의 과체중인 사람이 단순한 미용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까지 공적 보험으로 지원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전면 급여냐, 전면 비급여냐'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치료 필요성이 높고 체중감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강상의 이득이 큰 환자부터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증 또는 고도비만이면서 당뇨병이나 당뇨병 전단계,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수면무호흡증, 지방간질환, 체중 관련 관절질환 등 중요한 비만 관련 합병증을 가진 환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BMI라는 숫자 하나만으로 대상을 결정하기보다 비만의 중증도와 동반질환, 향후 건강위험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치료 반응에 따라 급여 지속 여부를 평가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일정 기간 치료 후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체중감량과 비만 관련 건강지표의 개선이 확인되고 치료를 지속할 필요성이 있는 환자에게 지원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한다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는 것보다 치료하지 않았을 때 질병 부담이 크고, 치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강상의 이득이 큰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현실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약값 자체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비만을 장기간 치료해야 하는 만성질환으로 인정한다면 정부와 보험자, 제약회사 역시 환자가 치료를 지속할 수 있는 가격과 재정 모델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아무리 효과적인 치료제가 있어도 환자가 사용할 수 없다면 의학의 발전이 실제 건강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약이 좋아질수록 의사의 역할은 더 중요

치료 접근성만 높인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최근에는 어떤 약이 더 많이 빠지는지, 어디에서 더 저렴하게 처방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한 정보처럼 공유되고 비만치료제가 하나의 '다이어트 상품'처럼 소비되기도 한다.

그러나 비만치료는 주사제 하나를 처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치료 전에는 비만의 정도와 함께 당뇨병,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지방간질환, 수면무호흡증 등 동반질환을 평가해야 한다. 체중 증가를 유발하는 약물을 복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차성 비만의 가능성은 없는지도 살펴야 한다.

치료를 시작한 뒤에는 체중감량 속도와 부작용뿐 아니라 영양 상태와 체성분의 변화도 관찰해야 한다. 특히 강력한 비만치료제가 등장하면서 근육량과 신체기능의 유지가 더욱 중요해졌다. 체중이 감소할 때 지방만 선택적으로 감소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젊고 건강한 성인의 15kg 감량과 근감소 위험이 높은 고령 환자의 15kg 감량을 같은 치료 결과로 평가할 수 없다. 따라서 적절한 영양 섭취와 신체활동, 특히 근력운동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고령자와 근감소증 위험군에서는 근육량뿐 아니라 근력과 신체기능도 살펴야 한다.

체중감량 이후의 관리도 중요하다. 비만치료제를 중단하면 체중이 다시 증가할 수 있다. 몇 개월 동안 약물을 사용해 목표 체중에 도달했다고 해서 치료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감량한 체중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동반질환은 얼마나 개선됐는지, 약물치료를 어떻게 지속하거나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약의 효과가 강력해질수록 단순한 처방보다 제대로 된 관리의 중요성은 오히려 커진다.

그래서 환자 곁에서 지속적으로 치료하는 주치의, 가정의학과의 역할이 필요하다.

비만은 어느 한 장기의 질환이 아니다.

한 명의 비만 환자에게 당뇨병,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지방간질환, 수면무호흡증과 관절질환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 식사와 운동뿐 아니라 수면, 음주, 스트레스, 정신건강, 직업과 가족 환경도 체중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비만은 환자 전체를 바라보고 장기간 관리하는 의료가 필요한 대표적인 만성질환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가정의학과와 일차의료의 역할이 중요하다. 비만 환자의 체중뿐 아니라 혈압, 혈당, 지질, 간 기능, 수면, 신체활동, 흡연과 음주, 정신건강과 복용 약물을 함께 평가하고, 체중이 감소하면서 혈압과 혈당이 개선되면 기존 만성질환 치료도 조정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영양·운동 중재를 강화하거나 다른 전문 분야의 치료로 연결하는 역할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비만 치료는 수개월 만에 끝나는 단기 프로젝트가 아니다. 체중감량과 유지, 때로는 재증가와 재치료까지 이어지는 긴 과정이다. 지속성, 포괄성, 조정성을 핵심 가치로 하는 일차의료가 비만 치료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 이유다.

■비만치료제 시장의 성공이 비만 치료의 성공으로 이어지길

새로운 비만치료제가 가져온 변화는 분명 놀랍다.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큰 폭의 체중감량이 약물로 가능해졌고, 비만 관련 합병증을 예방하고 개선할 가능성도 커졌다.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이 단기간에 급격하게 성장한 것도 이러한 변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제는 '얼마나 많이 팔렸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한다. "그 약은 누구에게 사용되고 있는가. 그리고 가장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도달하고 있는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몇 kg을 더 감량하기 위해 최신 치료제를 사용하는 동안, 고도비만에 여러 합병증을 가진 환자가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한다면 비만치료제 시장의 성공을 곧 비만 치료의 성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진정한 성공은 매출이나 처방 건수가 아니다.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고, 그 결과 당뇨병과 심혈관질환을 비롯한 비만 관련 질환의 부담이 감소하고 더 건강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어야 한다.

비만치료제의 시대에 우리 의료가 고민해야 할 다음 과제는 더 강력한 약을 기다리는 것만이 아니다.

미용 목적의 사용과 의학적으로 필요한 치료를 구분하고, 제한된 건강보험 재정 안에서도 고도비만과 합병증을 가진 고위험 환자부터 치료 접근성을 높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동시에 일차의료를 중심으로 영양, 운동, 근육, 동반질환과 감량 이후의 체중까지 장기간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좋은 약을 개발하는 것은 의학의 발전이다. 그러나 그 약이 가장 필요한 환자에게 도달하고, 치료의 혜택을 건강한 삶으로 이어가게 만드는 것은 의료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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