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자유무역협정)가 체결될 경우 약가폭등으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 날 뿐만 아니라 민간의료보험 확대로 인한 의료기관 양극화, 공적 건강보험 붕괴, 의료상업화 심화 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가 나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태홍(열린우리당) 위원장은 최근 사립대병원장협의회(회장 박창일 세브란스병원장) 간담회에 참석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한·미 FTA 협상이 보건의료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했다.
김태홍 위원장은 국회의원 50명과 함께 ‘한·미 FTA를 연구하는 국회의원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약가 폭등으로 보험재정 파탄
김 위원장은 한·미 FTA 협상이 보건의료분야에 미칠 영향으로 우선 약가 폭등을 꼽았다.
미국이 우리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수용하는 대신 약제급여조정위원회에 미 제약사의 참여와 특허기간 연장을 요구하고 있어 문제의 소지가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약제급여조정위원회에 미국 제약회사가 참여하면 미국의 입김이 작용, 미 제약사의 고가약이 혁신신약으로 분류돼 보험재정을 더욱 어렵게 하고, 특허기간이 연장되면 그만큼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의 부담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다.
김 위원장은 “FTA가 체결되고, 약가 적정화방안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다면 한국이 추가 부담해야 할 약값이 협정 체결 1년 후부터 매년 8천억원씩 증가해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나고, 의료서비스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고 예견했다.
민간보험 확대의 위협
또 김태홍 위원장은 한·미 FTA 체결로 인해 민간의료보험이 확대되면 공공의료보험 역시 붕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현재 미국은 FTA 금융서비스분야 협상에서 보험료율에 대한 규제를 완전히 폐지할 것과 모든 보험상품 출시를 제한 없이 자유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민간의보 규모가 커지면 공적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저해해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야기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FTA가 체결되어 의료시장이 개방되고 민간의료보험이 더욱 확대된다면 병원간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며, 의료서비스의 과도한 증가로 공적 의료비가 증가하면 건강보험 재정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민간의료보험이 확대되면 본인부담금이 없어져 잦은 진료행위를 야기해 건강보험 재정악화를 부추기고, 고소득자만을 위한 민간의료보험으로 전락함에 따라 의료서비스의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김 위원장의 설명이다.
의료상업화 심화, 의료전달체계 왜곡
지난 6월 한·미 FTA 1차 협상에서 미국 협상대표인 웬디 커틀러가 “교육과 의료부문에서 영리법인 허용을 통한 시장개방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교육과 의료분야가 한미 FTA 예외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한·미 FTA 1차 협상에서 정부는 서비스부문 개방을 열거주의가 아니라 포괄주의로 합의했기 때문에 협정문에 언급되지 않는 분야와 상품은 모두 개방되는 것”이라면서 “미국 주장의 의미는 ‘영리법인 허용을 제외한 교육과 의료분야 개방을 모두 요구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다 미국이 굳이 영리법인 허용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정부가 인천, 광양, 부산 등 세 곳의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도입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라고 김 위원장은 밝혔다.
문제는 국내 의료공급체계상 급성기 병상 과잉공급, 30%에 달하는 의원급 소규모 병상, CT 및 MRI 등 첨단 고가장비 중복투자, 의사와 병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의료서비스 인프라, 저수가 등 구조적인 취약성은 안고 있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의료시장이 전면 개방되고, 영리법인이 허용되는 등 보다 더 시장친화적이고 경쟁적인 의료서비스 전달체계가 도입되면 열악한 중소병원의 도산이 늘고, 비급여 항목을 확대해 의료비용이 더욱 증가하며, 사회적 취약계층의 의료접근성은 더욱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한·미 FTA를 통해 의료시장의 개방이 가속화되고, 외국자본이 운영하는 병원이 늘어나거나 국내 병원이 외국자본에 넘어가면 의료공급체계 불균형은 더욱 심화되며, 의료 공공성을 상실해 극도의 이윤추구 현상이 심화되는 등 재앙을 불러올 위험성이 크다”고 못 박았다.
김태홍 위원장은 “한·미 FTA가 우리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면 언제든지 협상을 중단하거나 연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정부와 국회, 의료계, 학계, 시민단체 등이 모두 힘을 모아 당당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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