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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수첩

어느 응급실 의사의 좌절

조형철
발행날짜: 2004-11-25 06:25:52
"대형약국에가서 일반으로 주사약을 사가지고 오면 우리가 몰래 주사하겠다"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한 의사가 죽어가는 환자를 앞에 둔 채로 급박한 상황에서 보호자에게 한 말이다.

환자는 미진이라는 5살난 어린아이로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배를 부딪혀 응급실로 들어왔다. 복부가 부풀고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수축기 혈압이 80에 맥박수 120회, 전형적인 실혈성 쇼크였다.

의사는 손상된 비장을 떼어내고 아이의 몸안 피보다 더 많은 양을 수혈해가면서 간신히 회복시켰다.

2주만에 미진이는 언제 사선을 넘었냐는 듯 활달함을 되찾았고 온종일 재롱을 부려 병동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아이를 치료한 의사의 보람은 더할나위가 없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미진이에게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고 패혈증이 의심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반코마이신을 긴급히 투여해야 했으나 건강보험심사 규정상 패혈증이 확인된 후에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대로 사용하면 바로 삭감이 된다.

상황은 급박했고 패혈증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3~4일이 소요되는데 그 때는 이미 늦게 된다.

이에 의사는 보호자에게 은밀히 대형약국에서 일반으로 주사약을 사올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미진이의 부모는 돈이 없어 제 시간에 약을 구해오지 못했다.

결국 의사는 미진이를 위해 임의 투약을 결정하고야 말았다. 검사결과가 나오기 전에 규정을 어기고 투약을 한 것이다.

환자를 구하기 위해 불법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다. 언론에서 매도되는 흔한 '부당청구 의사'로 낙인찍히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미진이는 패혈증으로 인한 뇌출혈로 결국 사망하고야 말았다. 비싼 반코마이신은 뒤늦게 물처럼 쏟아 부어졌다. 미진이가 사망한 후 이틀이 지난 뒤에야 혈액배양 검사가 포도상구균에 의한 폐혈증으로 나왔다.

의사는 좌절할 수 밖에 없었고 비슷한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그때마다 의사로서의 소신과 제도에 복종해야하는 사회인으로서 규범 사이에서 일종의 사회 부적응자가 돼버렸다. 이렇게 그는 가운을 벗었다.

지난 한 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총 요양급여비용 중 2,652억원을 삭감했다. 이렇게 삭감한 금액으로 건강보험이 사상 최대의 흑자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흑자 파티에는 미진이처럼 안타깝게 숨져간 어린 생명과 이때문에 의업을 버린 의사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의사가 쓴 글 전문은 다음과 같다.

--------건강보험 철퇴를 맞아라----------
드디어 건강보험공단의 흑자가 수천억이 났다고 한다.

그리고 경제특구에 외국인 의사가 진료하는 병원을 만들고, 그곳은 의료보험적용을 하지 않는 대신, 그곳을 이용 할 수 없는 서민들에게는 국가가 공공의료를 확충해서 의료혜택을 늘려주겠다는 발표가 났다.

의약분업을 처음 시작할 때, 의료보험료 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거짓말이었다. 의료보험료를 거둬서 이제는 약국까지 보험료를 지급해야 하는데, 보험료가 오르지 않으면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비록 의약분업이 필요한 제도라 하더라도 이런 사실을 정부가 속이면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의료보험료가 천정부지로 올랐는데. 이젠 한해에 수천억씩 흑자가 나니까, 흑자를 남겨서 기금화를 한다고 한다, 기가막힌 일이다, 당연히 그만큼 보험료를 깎아주거나, 아니면 국민들에게 보험 혜택을 더 주어야하는데, 기금화라니..

사실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야전 의사로 있을 때는 정말 의료보험제도가 저주스러울 때가 많다. 겉으로만 생색을 내지, 실제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는 사람을 죽이는 제도다, 내가 종합병원에 근무할 때 있었던 일이다.

미진이라는 아이가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배를 부딪혀서 응급실로 들어왔다. 복부가 부풀고 안색이 창백하고, 수축기 혈압이 80수준에 맥박수가 120회, 전형적인 실혈성 쇼크다, 뱃속에 있는 간이나 비장같은 장기,혹은 동맥이 터져서 배안으로 대량의 출혈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아무리 의사란 직업이 이런 일에 감각이 무뎌진다 하더라도, 환자가 5살 아이라면 의사도 눈이 뒤집힌다, 혈액형 검사가 늦어져서 수혈이 지연되자,, 내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왔다, " 임상병리 담당하는 ** 뭐하고 뒤집어져 있어? 빨리 피 가져오라구 그래,," (사실 이것은 완화한 표현이다)

아이는 의식이 가물거리고, 쇼크상태에 점점 빠져드는데 혈액이 준비되는 오분 십분도 열흘같은 것이다. 레지던트가 옆에서 "선생님 그래도 일단 복부 시티를 해보고 어디가 문제인지를 알아야 수술을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한마디 거들다가 "야 이x끼야,. 니눈에 얘가 지금 삼십분 넘게 버틸거 같아..?" 내게 욕만 잔뜩 얻어 먹었다.

피가 도착하자마자 수혈봉지를 주렁주렁 매달고 일단 수술실로 내달렸다.
수술실에서도 분쟁이 시작된다.

"마취를 하기에는 혈압이 너무낮다, 일단 혈압을 높여야 마취를 할 수 있다," 마취과 의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때도 일단 욕부터 한다 " 야이 **. 배속에 피가 줄줄 새는데, 혈압을 어떻게 높여? 일단 마취해 책임은 내가 진다잖아..!!"

이런상황은 그야말로 살벌하지만, 사실 종합병원에서는 거의 일상적인 일들이다. 다만 의사도 사람인 이상, 환자가 어린이이거나, 산모.. 이런경우에는 눈이 뒤집히는 것이다.

보호자 동의서로 그냥 말로 주고 받았다, 수술실 문앞에서 그냥 "일단 수술 합니다, 살릴 확률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무조건 수술은 합니다, 동의하신거죠?" 대답도 제대로 듣지도 않고 수술장으로 애기를 밀고 뛰어들어갔다. 개복과 동시에 벌건 피가 천정으로 쏟구쳤다.

천정에서 환자를 비추고있던 무영등까지 피가 튀어오르고, 마스크를 쓴 내 얼굴, 심지어 내 몸을 붉은피로 물들인 다음, 다시 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배속에 있는 피를 흡입 할 시간도 없었다.

커다란 수술용 그릇을 집어넣어 피를 퍼내고, 황급히 손상부위를 찾는데, 머리쪽의 마취과가 난리가 났다, "어..어.. 일단 중지..!! 혈압이 너무 떨어져..!!" 마취과가 뭐라건 내손은 아이의 배속을 헤집는데, 피가 멈추지를 않는다.

황급히 거즈 수십장을 배속에 틀어박고 일단 압박을 한다음, 마취과에서 피와 링거를 쏟아부어서 혈압이 올라가도록 할 때까지 오분정도 기다렸다. 다시 거즈를 하나씩 빼면서 다친 자리를 확인해야하는데, 짐작으로는 아무래도 간이 다친것 같았다.

기다리는 동안 " 주님..............." 본능적으로 기도문이 스쳐 지나간다,
다시 수술을 시작했다. 다행히 비장 파열이었다, 좌측간도 일부가 찢어졌지만 상처가 크지는 않았다.

비장은 맹장처럼 일단 떼어버리면 산다, 황급히 깨어져서 피가 철철 흐르는 비장을 제거하고 찢어진 간을 조심스럽게 봉합했다. 수술기구들이 부딪히면서 나는 금속성의 소음이외에는 수술방이 쥐죽은 듯이 조용해 진다.

드디어 비장이 들려나오고, 비장으로 지나가던 혈관이 묶여지면서 출혈이 멈추자 안도의 탄식들이 흘러 나온다. "바이탈 어때요?" 마취과에 물어보지만,, 마취과 선생은 나의 만행에 (마취과의 수술동의 없이 수술실에 올라간 것) 화가나서 대답을 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서서히 혈압이 올라가고, 아이는 극적으로 회생했다.

미진이는 자기몸 안에 있는 전체 피의 총량보다 많은 피를 수혈 받으면서, 그렇게 생환했다. 그리고 중환자실에서 일주일을 입원해 있다가 일주일만에 일반 병실로 옮겼다.

응급실로 들어온지 열흘째, 일반병실로 옮긴지 사흘째 되던날 이제 퇴원을 준비하던 미진이는 언제 사선을 넘었냐는 듯이 활달했다. 형편이 어려운 부모들이 병원비 걱정에 날이 새는것도 모르고, 온종일 재롱을 부려서 병동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그런데 퇴원 하루전날 밤에 갑자기 열이 났다. 38도.. 타이레놀을 처방하고 열이 내렸지만, 다음날 오후에 일단 퇴원을 보류했는데 다시 열이 났다, 또 다시 타이레놀을 처방하였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미 실밥을 뽑은 상처를 잘 관찰해보았지만 상처 부근이 약간 붉은색을 띄고 있는것 외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처를 살짝 벌려 보았지만 역시 별 이상은 없는데. 다음날은 아침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무언가 미심쩍어서 혈액배양 검사를 보냈다. 팔 다리에 작은 붉은색 반점이 생기고 열이 두시간 간격으로 오르내렸다.

패혈증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일단 다시 중환자실로 내렸다. 이때는 반코마이신을 긴급히 투약해야 한다. 비장을 제거한 환자는 약 이주정도 후에 면역기능의 교란으로 패혈증이 올 수 있다. 설령 패혈증이 아니더라도 반코마이신을 쓰고 봐야한다. 혈액배양은 결과가 삼사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규정상 환자가 당장 오늘 죽어도 반코마이신을 쓰면 안된다. 의료보험규정에는 반드시 혈액배양검사상 패혈증이 확인되어야만 사용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죽을 지경이 되고나면 쓰라는 것이다. 도리없이 보호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급히 반코마이신을 쓰는것이 좋겠는데..우리나라 보험 규정상 비싼약은 검사가 나올 때까지 투약을 하지 못한다.

"대형약국에가서 일반으로 주사약을 사가지고 오면 우리가 몰래 주사하겠다"고 설명했다,(그것도 몰래 해야한다, 환자가 당장 죽더라도 규정상 보험가능한 약을 일반으로 반입하면 안된다) 보호자들은 난감해 했다. 이미 중환자실에 있을 때, 알부민을 그렇게 몇 병이나 사왔기 때문이다.

미진이처럼 간을 다치고, 큰 수술을 한 환자들은 간 기능이 원활치 못해서 알부민 수치가 떨어진다, 상처가 회복되고 부종이 내리고 면역이 증강되기 위해서는 알부민 투여는 필수다. 대개 알부민은 3.5 수준이 정상인데. 미진이는 2.8 이었다, 당연히 알부민 투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의료보함 규정상 투여하지 못한다.

알부민 수치가 2.5 이하여야 투약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아이가 사선을 넘나들어도 알부민 수치가 이제나 저제나 떨어지기를 기다리다가 어느날 떨어지면 "이제 드디어 떨어졌다 .." 라고 만세를 부르면서 알부민을 투약해야한다.

그리고 한병을 투약하고 재검사해서 2.7이나 3.0 정도로 올라가면 다시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가끔 레지던트들이 혈기를 못참고 수치가 기준미달이더라도 처방을 할 때가 종종 있지만, 그 경우에는 치료비를 삭감당하고, 부당청구자로 낙인이 찍혀버린다.

기가막힌 현실이지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런 허울좋은 보험제도를 운영하면서 매해 의료보험료만 죽어라고 인상하고 있다. 더우기 그러고도 모자라 경제특구에 내국인 일반진료를 허용하고, 대신 공공의료를 확충한단다.

그러면 특구에서 비보험으로 수천만원짜리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귀족들과, 검사 결과가 나올때까지는 당장 죽어도 약을 쓰지 못하는 소위 공공의료를 이용하는 자의 생명의 가치는 어떻게 달라지는건가...

누구는 사람목숨이고, 누구는 짐승 목숨인가..그런 정책을 세우는 자들은 그들이 아프면 특구로 가겠는가? 아니면 소위 일반병원으로 가겠는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돈 걱정하지 말고 필요한 약을 무제한 쓰라고 의사에게 고함을 지르겠는가? 아니면 검사결과가 더 나빠지면 약을 써야지 무슨소리냐고 하겠는가?

그들은 그런 빛좋은 개살구로 이렇게 국민을 속인다,..하여간 미진이 부모님은 난색을 표한다, 꼭 필요한거냐고 다시 물었다.

검사상 확진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가능성이 있어서 즉시 투약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마음이 무겁다. 저녘까지 미진이 부모님은 약을 사오지 못했다, 최소 몇십만원 이상의 약값을 구하느라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었다. 도리없이 임의 투약을 결정했다. 검사결과가 나오기전에 규정을 어기고 투약을 한 것이다.

부당 청구에 과잉진료자로 낙인이 찍히더라도 도리가 없었다. 약간 늦은 감이 있지만, 일단 반코마이신 투약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날은 중환자실에서 레지던트와 같이 미진이 옆에서 보냈다.

호흡이 나빠지는 기미가 있어서 인공호흡기를 달 것인지 판단이 서지않아 소아과와 상의했지만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다음날 잠시 샤워를 하고 아침식사를 한 다음 다시 미진이 병상으로 갔더니, 미진이가 인사를 했다.

그런데 사단이 생겼다. 마침 보호자면회 시간이어서 보호자가 같이 들어왔는데.,미진이는 누워서 침대 오른쪽에 있는 나는 보이고, 침대 왼쪽에 서 있는 엄마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bitemporal hemianopsia 반시(半視)가 나타났다.

시야의 좌측 절반이 소실된 것이다, 긴급히 신경과 의사가 호출되고 응급으로 뇌 단층 촬영이 이루어졌다. 뇌출혈이었다. 이미 혈액검사는 백혈구수가 1000개, 적혈구 50만, 혈소판 ...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패혈증이 오면 피속의 혈구들이 파괴되고, 새로생겨나지 않는다, 무서운 속도로 백혈구와 적혈구,혈소판이 파괴되었다. 혈소판 감소로 곳곳에서 출혈이 유발되고 몸의 곳곳에 붉은 출혈반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진이의 어린 몸에는 곳곳에 붉고 검은 피멍이 들었고, 뇌속에도 저절로 출혈이 일어난 것이다.

신경외과에서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한다, 혈소판 저하로 출혈이 멈추지 않는데 수술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도리없이 혈소판 수혈을 시작했지만, 나도 이미 그것이 무의미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오전이 지나갔고, 오후에는 어린 몸에 인공 호흡기가 달리고 붉은 수혈관이 다시 줄줄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코마이신은 뒤늦게 물처럼 쏟아 부어졌다..

그러나 그날 오후 네시쯤 미진이는 의식이 사라졌다, 뇌출혈이 점점 심해지면서 네시부터 의식이 사라지고, 동공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도 어린 심장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로부터 다섯시간 정도를 지나서 힘들게 뛰던 새같은 어린 심장이 멈추었다...

그리고 미진이가 세상을 떠난지 이틀 후에야 혈액배양검사 결과가 나왔다. 역시 포도상구균에의한 패혈증이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일을 감당하기에는 내게는 벅찼다. 어린 생명을 앗아간 제도에 분노하고, 하루를 망설이면서 시간을 보낸 나의 비겁함에 분노하고, 사악한 세균에 분노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의료시스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비슷한 일이 몇 번 반복되고, 그때마다 의사로서의 소신과 제도에 복종해야하는 사회인으로서의 규범 사이에서 일종의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어느 정도를 겨우 버티다가 결국 모 재벌그룹 계열의 종합병원에서 전문의로 근무를 시작한지 일년만에 스스로 옷을 벗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행복하다, 당장 최소한 일주일에 한명은 내 환자의 임종을 지켜봐야 했던 끔찍한 상황이 없어졌고, 하루에도 서너번씩 피를 말리는 상황이 사라졌다.

아울러 거의 매일 피고름이 묻은 속옷을 버리고 매일 새로 속옷을 사입지 않아서 좋다. 그런데 누군가는 지금 이시간에도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내 또래의 의사들은 병원에서 중견이자, 중추다. 지금 우리 동기 중의 누군가는 내가 이글을 적는 밤 열한시 오십 오분에 중환자실 환자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당직실에서 쪼그리고 자고 있을 것이고, 또 친구중의 누군가는 방금 전에 눈을 감은 환자를 떠나보내고 밤하늘에 담배연기를 길게 뿜고 있거나, 천정으로 쏟구치는 피를 덮어 쓰면서, 누군가의 배를, 가슴을 그리고 머리를 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끄럽다, 지금 그들과 같이 밤을 새우지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한사람이라도 더 붙잡으려고 응급실 중환자실을 뛰어다니지도 않고, 그냥 이렇게 하루종일 농담같은 삶을 그렇게 살아가는 내가 한 없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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