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간호협회가 간호조무사의 생존권을 박탈하기 위해 간호(사)법을 제정하려 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한국간호조무사협회를 비롯하여 보건의료계 단체가 결집했다는 것이다.
정혜신 박사는 시사저널 2003년 8월 7일자에서 ‘음모가 아니라는 반론이 강하면 강할수록 음모론에 대한 확신은 확고해진다고 했다. 이는 아이가 떼를 쓰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고, 그 옆에서 음모론을 뻥튀기 기계에 넣어 의도적으로 부풀리는 사람 또는 집단도 무책임하다는 점에서 꼴 사납다’고 기술하고 있다.
다시 정혜신 박사는 ‘모든 걸 음모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인간의 운명도 신의 음모일 뿐이라고 하면서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자기 일에 책임지지 않고 떼를 쓰는 어린이와 다를 바 없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측면을 볼 때, 현행 법체계의 구조적 문제점, 의료인 직역 독자법 제정의 필요성 등 정작 논의해야 할 내용은 제외한 채, 일개 조항으로 간호협회가 간호조무사를 말살할 수 있다는 주장에서 성숙한 어른의 자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사)법이 제정되면, 현재 간호조무사에 대한 법령(의료법 제58조, 의료법 시행규칙 제28조의 6, 간호조무사 및 의료유사업자에 관한 규칙 제2조)이 자동(?)으로 그 법적 효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간호조무사는 의원급에서 근무를 할 수 없게 되고, 이로 인해 간호사를 의무 채용해야 하는 의원은 더 경제상황이 악화된다는 논리로 타 의료 단체와 공동으로 간호협회를 공격하고 있다.
반면 대한간호협회는 의료법에 있던 간호조무사 관련 조항 제58조는 간호법 제 38조로 수평 이동됐고, 의료법 시행규칙 제28조의 6은 의료기관 정원에 대한 부분이기 때문에 간호법과 관련이 없으며(간호사는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 간호조무사 및 의료유사업자에 관한 규칙은 별도의 독립적 규칙이기 때문에 모법에 영향을 받는 다른 시행규칙과 달리 자동 개정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결국 핵심은 간호조무사의 의원급 근무를 정당화시켰던 진료보조조항이 기존에 어느 법에 근거했냐로 좁혀지게 된다. ▷원래 의료법에 있던 조항이 간호법으로 옮겨가면서 의도적으로 삭제됐다. ▷처음부터 의료법에는 진료보조조항이 없었다.
간호조무사의 진료보조 업무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제도의 역사적 배경부터 이해해야 한다.
1960년대 지역사회 개발과 농촌보건사업 강화, 의료법 개정으로 인한 무면허자의 간호업무 금지(의료법 제25조), 1964년 시작된 간호사 해외취업(간호원 1,894명 해외진출 의료인의 60% 차지)은 국내에 간호인력 부족 문제를 야기시키게 된다.
이때 WHO와 ICN(국제간호협의회)이 대한민국에 간호인력이 부족하니 한국의 간호사 초청을 중지하라고 서독정부에 요청하고, 우리나라에도 간호사 해외 파견 중지를 요청(보건신보 1967. 4.17)할 정도로 간호사의 부족은 국내 보건의료계의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러나 정부로서는 간호사 해외 파견으로 인한 외화 획득과 재정적 지원이 너무도 매력적인 사안이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인력 수출을 중지하기보다(1969년 8월 한독간호협정 체결로 정부차원 간호사 송출 활성화) 무자격자의 양성화와 단기간 양성을 받은 간호보조원(이하 ‘간호조무사’로 명기)의 배출로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이에 정부는 1966년 7월 25일자로 의료보조원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보건사회부령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간호보조업무에 종사할 수 있는 ‘간호보조원’을 의료보조원의 한 종류로 신설했다.
의료보조원법에 의해 간호조무사가 처음 배출된 이후, 1970년 초에 그 수가 거의 만 여명에 육박하였다는 것은(의사신문 72.6.19), 간호사 수가 1972년 겨우 1만9,089명이라는 사실과 비교할 때 특기할만하다.
이외에 1969년부터는 간호조무사도 해외로 진출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사설 양성기관이 난립, 1970년에서 73년 사이에 학원이 34개소, 배출되는 수가 매년 5천에서 7천에 이를 정도로 간호조무사 양성이 활성화되었다. 당시 후생신보(1971. 12. 3)는 “간호보조원 양산의 꿈이 실현은 됐으나, 양산된 간호보조원이 대부분 취업을 못하고 있고, 더더군다나 외국취업의 길은 바늘구멍보다 좁아 새로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간호원의 부족을 메워보기 위해 9개월간의 약식교육으로 급조시키려 했던 것이 이른바 〔간호보조원〕...외국서도 간호원이 모자라니까 간호보조원까지 데려가게 되자, 이틈에 여중 또는 여고 출신의 실업소녀들이 멋모르고 덤벼들어 한때 간호보조원 양성소들은 크게 활기를 띠었으나, 뜻밖에도 사회에 배출된 간호보조원들은 국내서는 물론 외국취업의 길까지 막혀 애써 얻은 보조자격을 활용코자 하나 발붙일 곳이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해외파견을 이유로 대량 양성된 인원이 실제 모두 해외로 가지 못함에 따라 국내에 남은 인력들은 취업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이에 정부는 남아도는 간호조무사가 간호사를 대행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 1972년 3월 13일 부령 제391호로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간호보조원이 간호원을 대신할 수 있다”라는 조항을 삽입하였다(후생일보 72.3.10). 또한 1973년 10월 31일 부령 제428호로 간호보조원・의료유사업자 및 안마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해 간호조무사로 하여금 △간호업무의 보조외에 △진료의 보조 △간호업무까지 하도록 대폭 간호조무사의 업무 범위를 확대시키게 된다. 이 같은 법 개정으로 인해 간호조무사는 1973년부터 의원급에서 의사의 진료보조를 시행할 수 있게 됐다.
당시 후생신보(1972. 5. 10)는 이에 대해 “간호는 질병의 발생과 함께 그 유래가 시작되었으나...이렇게 엄격한 교육과 엄청난 비용을 들여 배출된 간호원들이 간호원을 보조키 위해 단기양성기관에서 양성된 간호보조원들에 의해 또 침해를 당하고 있다. 9개월이란 짧은 기간과 함께 적은 비용으로 간호원의 행사를 할 수 있고, 또한 외국으로의 진출 용이 등으로 1년에 1만 5백여명이라는 엄청난 보조원이 산출되고 있는 현실”이라고 기술하였다.
이처럼 간호조무사의 “진료보조업무 규정”은 과거에도 의료법이 아닌 별도의 보건복지부령인 간호조무사 및 의료유사업자에 관한 규칙에 있었으므로, 한국간호조무사협회의 “발의된 간호법에는 의료법에서 보장하는 간호조무사의 진료보조업무가 빠져있다”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이다.
즉 이미 없었던 것이지, 대한간호협회가 의도적으로 의료법에서 간호법을 독립시키면서 삭제시킨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법령의 수평 비교를 통한 누차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의료법에 있던 진료보조조항이 빠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바로 간호법 제정 반대를 빌미로 이번 기회에 하위 규칙에 있는 진료보조 조항을 법률로 상향시키려는 한국간호조무사협회의 정치적 의도가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비의료인인 간호조무사에게 의료인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해 준 정부의 처사는 30여 년 전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여러 가지 현실적 어려움을 감안한 고뇌의 산물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보건의료인력의 면허별, 자격별 훈련기간과 과정의 상이함에 따라 업무의 차별이 분명히 존재해야 함에도,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기대하는 국민의 바람은 뒤로 한 채, 보건의료인력의 업무의 범위 및 한계를 단체와 단체간의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것은 국민의 입장에서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과거에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정부가 판단했다면 이제는 국민에게 자신의 건강권을 위한 최선의 정책을 옹호할 수 있도록 그 판단의 몫을 돌려주어야 한다.
음모론의 매력은 “미래에는 ....할 것이다”라는 말로 판단의 시점을 미래로 이동시켜 현재의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논리적 분석을 어렵게 한다는 데 있다. 또한 음모론의 매력은 “...아니면 말고...” 빠질 수 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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