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비밀번호 변경안내 주기적인 비밀번호 변경으로 개인정보를 지켜주세요.
안전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3개월마다 비밀번호를 변경해주세요.
※ 비밀번호는 마이페이지에서도 변경 가능합니다.
30일간 보이지 않기
  • 전체
  • 일반뉴스
  • 오피니언
  • 메타TV

소리를 듣기 위해서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2024년 개봉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지금껏 홀로코스트를 다루어 왔던 수많은 영화와는 전혀 다르다. 1944년, 가장 끔찍한 전쟁이 일어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는 그 어떤 격정적인 전투나 슬픔의 절규도 등장하지 않는다.전쟁하면 으레 떠올리기 마련인 폐허는 전혀 그려지지 않고, 오로지 아름다운 강변과 널찍한 정원, 수영복 차림으로 피크닉을 즐기는 단란한 한 가족의 일상이 이 영화를 지배할 뿐이다. 아이들의 귀여운 말썽이나 부부의 말다툼까지, 이 저택은 그들의 삶 그 자체다.영화의 역설적인 부자연스러움은 오로지 소리로만 들려온다. 나치 친위대 장교 루돌프 회스의 사저의 담장 너머, 아우슈비츠의 음산한 불협화음으로만.독재나 전쟁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들을 묘사하는 창작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들이 일상으로부터 완전히 유리된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정말 그것들이 끔찍한 이유는 그 안에서 삶이 여전히 연속되기 때문이다.세계 2차 대전 한복판에서도, 폭격을 당해도, 자연재해가 덮쳐와도 사람들은 그 안에서 저마다의 일상을 찾아내곤 한다.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추상적인 장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생활을 바꾸는 힘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바로 그래서 오랜 역사 동안 늘 정치가 인류사의 중대한 화두였던 게 아닐까.나는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학부를 졸업했다. 학부 1학년 1학기 때 미국의 45대 대선이 치러졌다. 결과가 나온 날 학교에서 이런 이메일을 받았다. '선거 결과에 우울감 등을 느끼는 학생을 위해서 상담이 진행되고 있으니 필요한 학생은 신청하기를 바랍니다'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만큼 대선 결과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 시민권자조차 아니었던 어린 내게 정치는 남의 일이었다. 대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그들은 내게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구 반대편 높으신 분들의 권력 싸움이 내 삶에 미치는 여파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을까.그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나는 정치에 큰 관심이 없었다. 미국에서는 시민권자가 아니었기에 그랬다는 핑계가 있었다면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고 귀국한 후에는 그조차도 없었다. 졸업하자마자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쳤고 보건의료 재난 상황에서 또다시 정부와 의료진들이 협력하고 갈등한다는 뉴스가 송출되는 와중에도 나는 대학원 수험을 해야 했다.면접을 준비하며 보건학도 역학도 조금씩 공부했지만 그렇다고 의료 현장이나 정치적 견해들이 피부로 와닿지는 않았다. 그런 주제가 면접에 출제된다는 건 분명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의료인을 사회가 원했다는 뜻이었을진대 아이러니한 일이다.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오고서는 매일매일 공부에 치여 사느라 안 그래도 크지 않던 관심이 거의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선거에는 참여했지만, 매번 신경 쓰기에는 피곤한 일이 바로 정치였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의대생과 의사들도 비슷했을 거라 추측한다.쏟아지는 공부에 피로에 지친 와중에 발표된 정책들을 알아보고 비판하는 일은 쓸모없고 피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외면해 왔던 대가가 결국 내 일상에까지 덮치고 만 것이다.역시 나치에 관한 유명한 시가 있다.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금언이다.나치가 공산주의자를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작금의 사태는 일견 이 시를 떠오르게 한다. 지금껏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했던 정치야말로 실은 내 일 그 자체였다는 귀중한 사실을 깨닫는 나날이다. 분명 누군가의 일상에 이미 넘실대고 있었을 파도가 이제는 나에게까지 온 것이다. 거기에 발을 적신 후에야 이 풍랑이 우리 모두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노라면 문득 부끄러움을 느끼고 만다.환자를, 생명을, 삶을 다루는 의학도로서 이토록 '사람'에 무지했다니. 기계적인 의술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보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현대 의학이라면, 인간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정치 또한 당연히 관심을 가지고 고찰해야 할 대상일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대란은 의료인들에게 이러한 중요성을 깨닫게 만들어 준 중대한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의 정원 너머, 비명을 가두어 둔 담장은 무엇이었을까. 시멘트와 콘크리트보다도 강고한 그것은 의료인들의 무관심인 동시에 예쁜 저택의 탈을 쓴 의료 시스템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겠다.의료인들이 벽 너머 정치를 외면해 온 것처럼 벽 밖의 사람들에게도 의료인들은 '일반적이지 않은', '설명하기에는 너무 바쁜' 소음이었을지도. 지금 이 순간마저도 수많은 언론과 그 뒤의 결정권자들이 대한민국 의료를 이해하지 못한 채 기사를 쏟아내고 있고 의료진들 역시 지금껏 외면해 온 소통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몰이해가 쌓아 온 공고한 간극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더디게나마 그 벽을 무너뜨릴 기회인 것은 아닐까.눈과 귀를 열고, 피와 살뿐만이 아닌 진짜 인간을 볼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 의료인을 의료인으로 만들어 주는 가장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누군가 나를 위해 말해 주기를 바란다면 나 또한 누군가를 위해 말해야 한다. 나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의 삶을 지켜줄 수 있어야 한다.그러기 위한 첫걸음은 책에서 눈을 돌려 세상을 보는 것이다. 활자가 아닌 소리를 듣고 살아 숨쉬는 사람들을 느끼는 것이다. 바쁘고 피곤하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정치로부터 눈을 돌려왔다면 이제는 직면하도록 하자.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진정한 의미의 '소통'에 대해 고민하면서, 벽 너머 그저 성가신 소음이 아닌 그들의 진짜 목소리를 듣고 우리 또한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법을 연습할 때다. 그 첫 단계는 적극적으로 외부 세계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뉴스를 보고 꾸준히 의견을 개진하고 우리와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우리를 이해시키는 만큼 우리 또한 그들을 이해할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괴로운 시기지만 어쩌면 세상 밖으로 나와 스스로를 환기할 기회일지도 모르는 이 시간을, 내가 몸담은 사회와의 연결점을 새로이 만드는 데 사용하고 싶다. 그리하여 우리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의 경계가 무너지면 비로소 우리는 진정 사람을 보는 의사라고 스스로를 부를 수 있으리라. 사람을 보기 위해서. 소음이 아닌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
2024-10-28 05:00:00오피니언

한여름 밤의 꿈

메디칼타임즈=순천향의대 3학년 오명인 햇빛이 따갑고 찌는 듯이 덥던 8월 첫째 주, 나를 포함한 10명의 자원봉사자가 정동 초등학교 운동장에 도착했다. 정동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50명 정도 되는 작은 초등학교로, 운동장에서 지평선을 바라보면 기차가 논을 가로지르는 것이 보이고, 뒷문으로 나가 조금만 걸으면 정동진 해수욕장이 펼쳐지는 곳이다.이틀 뒤면 이곳에서 2박 3일간 정동진 독립영화제가 열리게 된다. 4년 전, 예과 1학년이었던 스무 살의 나는 학교를 이 주간 빼먹고 부산국제영화제의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스무 살 시절의 그 경험은 대단한 일이 아닌데도 왜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 추억하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 기억 때문에 휴학 동안 바다와 가까이서 열리는 영화 축제에서 다시 일하고 싶었다.하지만 '바닷가 초등학교에서 열리는 한여름의 영화제'라는 낭만적인 이름 뒤에 '높은 업무 강도로 유명한 영화제'라는 부제가 있다는 것을,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도착하자마자 트럭에서 짐을 내리고, 강당에 책상을 깔고, 입구에 플래카드를 달았다.폭염 경보가 떨어진 날이라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땀을 식히기 위해 잠시 그늘에 서서 운동장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는 것을 바라보았다. 내일이면 운동장이 관객으로 꽉 차고 저 스크린에 영화가 맺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다음 날, 해가 기울고 땅의 열기가 조금 식자 관객분들은 간식거리와 모기장을 들고 입장 몇 시간 전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 우리는 입장 준비에 속도를 붙였다. 영화제가 시작하기 십 분 전, 자원봉사자들이 입구에 모였다. 팀장님이 구호를 외쳤다."별이 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 정동진 독립 영화제 파이팅!"관객들이 박수를 쳐줬고, 드디어 영화제가 시작했다. 나는 붕 뜨는 마음으로 내 자리로 뛰어갔다. 입구 조 자원봉사자들이 뿌린 비눗방울이 8월의 노을에 반짝였고, 그 사이로 관객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부스에서는 강원도 지역 커피와 맥주를 팔았다.모기를 쫓기 위해 피우는 쑥불 향과 개막공연을 맡은 킹스턴 루디스카의 음악 덕에 축제 분위기가 나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별이 뜨자 모두 앉아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말 다양한 관객들이 정동진을 찾았다.연인들과 가족들, 손녀와 함께 온 할머니, 강아지와 함께 온 관객도 있었다. 그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웃고, 우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자 왜 다시 영화제에서 일하고 싶었는지 떠올랐다.저마다의 시간대를 살던 사람들이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시간대를 완전히 공유하는 마법 같은 순간, 각자 받은 감동을 얼굴에 감추지 못하고 영화관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퇴출구에서 바라보는 것, 감동과 행복이 가득한 축제를 내가 만들어 간다는 성취감, 나는 이것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잘 마무리될 것 같던 영화제는 마지막 날에 위기를 맞았다. 일기예보에서 분명 약간의 비만 내린다고 했는데, 빗방울이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더니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퍼붓기 시작했다.결국, 영화제 역사상 십 년 만에 실내 상영이 확정되었고, 그와 동시에 봉사자들의 업무는 180도 바뀌었다. 체육관 안에 의자와 방석을 깔고, 관객분들을 인솔해서 한 분씩 들여보내고, 비로 초토화된 외부를 정리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모두 우비를 입은 보람도 없이 쫄딱 젖어 있었고 신발은 젖다 못해 물이 찰랑찰랑 차 있는 느낌이 들었다.그런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나를 사로잡은 영화 하나가 있었다. <건축가A>라는 의뢰인의 과거와 추억을 재료로 집을 지어주는 건축가의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 영화였다. 나는 출입문 옆에 서서 상영시간 25분 동안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몰입했다.빛나는 내용이 꼭 맞는 그릇에 담겼을 때 선사하는 은은한 감동이 느껴졌다. 동시에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을 갑자기 마주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에도 비는 멈출 새를 모르고 내렸다.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행사가 마무리되자 새벽 5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지친 몸과 젖은 신발을 끌며 숙소로 돌아가는 중, <건축가A> 감독님이 옆에서 나란히 걷고 계신다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심호흡을 두 번 하고 말을 걸었다."저기, 감독님 영화 너무너무 좋았어요…!"영화를 보면서 예상한 것이 맞았다. 감독님은 작품만큼 따뜻하고 쾌활하셨다. 감독님과 같은 방향으로 걸으며 대화를 좀 더 이어가다 "사실 저도 이런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꿈이었는데…" 라는 오래 묵은 내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그 순간 왜 내가 <건축가A>에 더 빠져들었는지 깨달았다. <건축가A>가 내가 영화와 그림으로 만들어 보이고 싶었던 꿈같은 작품 같았기 때문이었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 내가 혹시 가볍게 생각했다고 보일까 봐 순간 걱정이 들었다.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감독님은 여전히 쾌활한 목소리로 대답하셨다."왜요? 하면 되죠!"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분이 가볍고 경쾌한 목소리로 대답하시는 모습에 안심했다. 10대의 나는 영화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매일같이 떠올랐다. 어떤 이야기는 나만이 할 수 있다고 믿던 때도 있었다.그러나 내가 만들고 싶은 것과,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의 괴리는 하루하루 커져만 갔다. 그리고 절대로 좁혀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 창작자의 괴리는 세기의 천재들도 모두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런 핑계를 대는 것이 부끄럽지만, 평생 그 깊은 골을 바라보면서 쓰고 그리고 실패하는 길이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중학교 졸업이 가까워져 오자 나는 내가 더 잘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하고 의대 진학을 목표로 두고 공부를 시작했다. 다행인 점은 지금의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어린 나를 그리워하면서도 아주 다른 길을 가는 지금의 나를 동정하지 않는다.감독님은 애니메이터들에게 의사가 너무 필요하다, 우리 좀 잘 봐달라고 농담을 던지셨고, 나는 "후속작 기다릴게요!"를 마지막 인사에 덧붙였다. 인사를 할 때 쯤에는 이미 동이 틀만큼 주변이 밝아져 있었다. 저기 해변에 함께 일주일을 동고동락하며 영화제를 만들어간 친구들이 일출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여 그쪽으로 뛰어갔다.사실 꾸준한 소비자도 아니면서 봉사자가 되면 왠지 영화계에 발가락이라도 담근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찾아오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영화를 만들지는 못할지언정, 누구에게나 영화 같은 순간은 찾아온다. 정동진 영화제가 내게 남긴 몇 가지 명장면처럼 말이다.이를테면, 비눗방울 사이로 활짝 웃은 웰시코기가 입장하는 것을 본 순간이나, 감명 깊게 본 영화의 감독과 새벽에 숙소로 돌아가며 대화를 나눈 순간이나, 잠 한숨 자지 않고 쫄딱 젖은 상태로 동트는 것을 보자고 모였으나, 구름 때문에 정작 일출은 보지 못하고 남이 태우는 불꽃놀이만 함께 보며 영화라는 이름으로 다시 마주치자고 약속했던 순간 같은 것이다.
2024-10-21 05:00:00오피니언

비밀의 언덕 이야기

메디칼타임즈=단국의대 1학년 유우선 당신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글을 쓴 적이 있는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글'. 실상, 우리가 쓰는 모든 갈래의 글이 여기 해당한다. 일기는 당신이 어떤 일상을 살아가는지 보여주고, 감상문은 당신이 가진 미학적 취향을 담고 있으며, 논설문은 당신의 눈을 통해 보는 사회를 비춘다. 글은 자기표현을 하는 데에 무엇보다 적격인 매체이다. 그래서 2024 의료대란 한복판을 지나는 우리에게 글은, 다시 말해 자기표현은 더욱 어렵다. 현시점의 우리는 보다 넓은 세상에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은 현재 의료계에 대한 설명과 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공유하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입을 꾹 다물고 있을 필요도 있다.이 난세(亂世)에는 너무나 많은 집단과 이해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의 표현은 자칫 불특정 다수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역풍이 되어 우리 스스로에게 내상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우리'에 대한 표현을 해야 하는 것인가?이 딜레마 앞에 황망히 서 있을 당신에게, 최근 내가 '글'과 지난하게 대립한 경험을 공유한다.글은 언제나 나에게 감정 표현의 도구이자 친우였다. 힘든 일이 있으면 일기를 썼고, 아끼는 사람이 생기면 편지로 마음을 전했으며, 지루한 날이면 감상문을 씀으로써 권태를 깼다. 그렇게 손 잡고 나란히 인생길을 걸어가던 글이, 최근 들어 내게 마른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갑자기 글쓰기가 힘이 들었다. 유려한 문장이 아닌 그저 단어의 나열만 노트북 화면에 떠다녔다. 겨우 한 편을 완성해도 다시 읽어보면 세상 밖으로 내놓을 수는 없는 끄적임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오래 고전하고 있었다.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로, 글 너머의 '나'를 너무나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휴학을 시작한 2월부터 지금까지, 교내 비상대책위원회 콘텐츠, 투비닥터 2024 의료대란 책자 <코드블루>, 다양한 교내외 소식지 칼럼 등, 다양한 형태의 글을 꾸준히 써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내 글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글을 쓰다가 문득 첫 문장으로 돌아가 보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낯선 나를 내 글 속에서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가, 하고 곱씹어 보는 시간이 쓰는 시간보다 늘어갔다.많은 사람이 읽을 글에 나조차 어색하게 느끼는 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꺼려졌다. 무엇보다 싫었던 것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 모습까지 글에서 감출 수 없다는 것이다.스스로에게조차 숨기고 싶은 생각,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감정들은 글에 녹아 거울처럼 나를 비추었다. '나를 표현한다'는 점은 내가 글을 사랑했던 가장 큰 이유였지만, 이제 맹점이 되어 내 글쓰기의 혈을 틀어막았다.둘째로, 완성된 내 글이 어디에, 어떻게 닿을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글은 나에게 감정 표현의 수단이었다. 그래서 내 글은 지극히 가벼웠으며, 또 제멋대로였다. 그러나 2024 의료대란은 내게 글의 결을 고를 때가 되었음을 알렸다.투비닥터 홈페이지에, 메디칼타임즈 칼럼 기고란에, 교내 소식지의 회고 에세이란이라는 특수하고 엄중한 자리가 주어진 것이다. 내 글은 이제 그저 내 감정을 담고 어딘가로 휘발되는 존재가 아니라, 무게를 가지고 누군가의 가슴속에, 혹은 혼란한 세상에 내려앉아야 하는 존재였다.이를 인지하는 것은 내가 한낱 학생 기자이고 아마추어 칼럼니스트라 할지라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이었다. 현상 이상의 것을 보고, 사회에 전달하는 바가 통찰력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러한 무게를 갖기에 나는 너무 무능력하고 겁이 많았다. 욕심이 커져도 대단한 글이 아니라 계속 껍데기만 찍어내는 나만 발견했다. 사회적인 글로 도약하지 못하는 내 펜에 힘이 빠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했을 때, 나는 자문했다. 그러면 이제 무슨 글을 써야 하지? 내가 원하는 글은 어떻게 만들어내야 하지? 답을 찾지 못하고 같은 질문만 거듭하다가, 나는 문득 이 고해나 다름없는 칼럼을 제법 편안하게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글쓰기가 더럽게 안 풀린다는 나의 한심한 고민과, 의료대란의 당사자임에도 어떠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자책이 담긴 이 칼럼은 앞서 말한 나의 두 가지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는 글이었다. 스스로의 모자란 모습도 부정하지 않고 드러내고, 사회에 어설프게나마 학생 기자의 무력감을 소리치는 글. 그제야 나는 내가 중요한 선후를 바꾸어 생각했음을 깨달았다.내 고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쓸 글'이 아니라 '글이 담을 나'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 글에 나타나는 내가 낯설고 창피하다면 우선 그 모습을 받아들이고 단단한 나를 만들기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회로 띄워 보낼 목소리에 자신이 없다면 더 배우고 경험하며 원색적인 주장이 아닌 통찰력 있는 의견을 만들어 낼 힘을 길러야 한다.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모든 과정과 결과 속에서의 '나'를 표현할 솔직함이 필요한 것이다. 그 용기 없이 쓰는 글은 텅 비어갈 수밖에 없다.당신과 나의 앞에 놓인 딜레마로 다시 돌아가 보자. 당신은 현 의료대란 사태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강하게 피력할 만한 합리적인 논리와 통찰력 있는 의견이 있는가? 동시에, 그 표현이 타인을 무분별하게 상처입히지 않을 성숙함이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 표현에서 드러난 스스로를 인정하는 솔직함을 가졌는가?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세상에 드러내는 데에 있어 이와 같은 질문들을 다시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 고민에서 나오는 해답이 현 의료계에 어스름히 깔려있는 '자기표현'의 딜레마 해결에 도움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위의 경험을 통해 내가 찾은 해답은, '내가 쓰고 싶은 좋은 글'이다. 글 너머에 있는 나의 색이 괴이할지라도 선명하게 보이는 글, 세상의 어두운 틈새에 불편하게 끼어들어 가더라도 솔직한 파장을 일으키는 글을 쓰고 싶다.그를 위해 당당하게 행동하고 감정에 꾸밈없어 지리라. 세상을 진지하게 직면하고 두려움 없이 발언하리라. 좋은 글을 위해, 그런 좋은 내가 되어가려 한다.영화 <비밀의 언덕>에서, 주인공 소녀 '명은'은 부족함 없는 아이로 보이고 싶어 거짓으로 쓴 글을 교내 글쓰기 대회에 제출한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거짓된 글과 진실된 글들이 차례로 '명은'의 삶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변화의 막바지에서 '명은'은 자신의 가장 숨기고픈 모습이 담긴 원고지를 몰래 언덕에 묻는 것으로 어떤 글을 쓸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간접적으로 선택한다.우리 손에도 앞으로 많은 원고지가 들릴 것이다. 그 원고지에는 때로는 부끄러운 나만의 진실이, 때로는 적나라한 견해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든, 우리에게는 원고지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원고지 속 '나'를 드러낼 필요가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외려 비밀의 언덕에 원고지를 묻어버린 이야기를 글로 써야 하는 솔직함이 필요하다. 그것은 괴랄한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지. 그러나 긴 딜레마를 지나 치열하게 해답을 찾아낸 우리가 쓸 글이라면, 그 글은 결국 우리를 가장 우리답게, 읽는 이들을 가장 감각하게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24-10-14 05:00:00오피니언

뉴노멀을 맞이하며

메디칼타임즈=연세의대 4학년 박태웅 올해는 겨울을 지내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순간이 썩 즐겁지 않았다. 눈이 소복이 쌓인 외상센터를 뒤로한 채 자취방으로 돌아온 나를 기다리는 건, 파국(波局)이었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새로운 세상에 던져졌다. 사람들이 남긴 댓글은 비수가 되어 날아왔고, 학생들은 이기심이라는 프레임 속에 갇혀 짓눌렸다.분명 가운을 입고 실습하고 있었을 노릇인데, 거리를 걸으면서도 알 수 없는 감정에 주눅 드는 상황. 현실감이 없었다. 친구들과 동생들은 매일 불안에 떨며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그저 어두운 터널을 걸어가는 마음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책임지고 싶었다. 2020년을 겪었던 사람으로서, 본과 4학년 선배로서, 공동체에 많은 애정을 쏟았던 사람으로서, 마땅한 도리를 다하고 싶었다. 소중한 사람들이 상처받는 상황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비상시국 대책위원회(이하 비시대위)가 설립되었다는 소식에 곧바로 지원했다. 능력이 허락하는 한에서 최선을 다했다.팀원으로, 팀장으로, 본부장으로, 직급이 한 단계씩 높아졌다. 체계를 개편했다. 더 많은 이들에게 진실을 알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다른 의과대학 비시대위들을 찾아 나섰다. 함께 나아가자고 외쳤고,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하자고 말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던 중, 어느새 옷장에서 반소매를 꺼내입는 날씨가 찾아왔다.사태 이후 몇 달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쉬지 않고 노력했다. 많은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모두 실현되지 못한 채 좌절되었다. 현실은 잔혹했다. 한낱 학생들의 마음만으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기엔 벽은 너무나 크고 단단했다. 20대 청년들의 무력감과 고통은 한낱 어리광으로 치부됐다.이 복잡하고도 심오한 문제를 푸는 과정에 조금이나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청년은 아마 의대협과 대전협의 임원진들, 그중에서도 지금 상황에 자신을 온전히 내던질 수 있는 사람들 정도에 불과했다. 많은 이들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단 자신의 안위를 챙기기에 급급했다. 우리에게 그들을 손가락질할 자격은 없었다.많은 의대생에게 그렇듯, 나에게도 무력감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노력만으로는 변화시킬 수 없는 무언가를 처음 마주한 이후로, 몸에서 의지가 눈 깜짝할 새에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버거워 천장을 마냥 바라보는, 그런 아침들이 늘어갔다.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서울의 여러 공원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웃음소리와 함께 천천히 늘어지는 강물을 들여다보면, 잠시나마 마음의 물결이 가라앉는 듯했다. 우연한 기회로 이주영 의원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워낙 열심히 활동하시기도 하고, 말을 참 잘하신다는 소문에 홀린 듯 찾아갔다. 무언가 통찰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좌석에 앉았다. 놀랍게도, 그녀는 청중에게 "당장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박민수와 이주영의 이름이 절대 나오지 않도록 삶에서 지워버려라"고 말했다.더욱 관심을 가지고 거리로 나오라고 할 줄 알았는데,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동자가 흔들렸다. 일단 여러분이 살아야 한다, 그래야 뒤를 생각할 수 있다는 그녀의 이야기, 백 번이고 맞는 말이었다. 언제까지고 무력감과 분노라는 핑계 뒤에 숨어 올해를 보낼 수는 없었다. 큰 울림을 느꼈다.이날의 충격은 2월부터 7월까지의 경험과 맞닿아, 하나의 방향을 이루었다. 덕분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뉴노멀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따위의 고민에 대한 답 또한 명쾌히 내릴 수 있었다. 지금부터는 내가 내린 답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참 가슴 아픈 말이지만, 답답함이라는 감정에 매몰될 시기는 이미 지나버렸다. 우리가 아파하는 와중에도 법안들은 턱턱 통과되었고, 화를 잔뜩 내며 뉴스를 보더라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이제 우리에겐 두 가지 삶이 남았다.하나는 현 사태와 관련된 모든 뉴스, 커뮤니티, 기사를 끊어버리고 여행도 다니면서 지금껏 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즐기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든 찾아 발악하는 삶이다.나는 원래 성정이 그러하듯 후자를 골랐지만, 무력함에 잠식될 바에 차라리 추억을 쌓고 행복을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이 낫다는 말에는 백번 동의한다. 뉴노멀은 필연적이다. 의정 갈등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더라도, 우리 모두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정부, 국민, 의사 그 어떤 집단도 승리할 수 없는 상황이 왔고, 의정 갈등은 누가 덜 쓰라린 상처를 안고 돌아가냐의 싸움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휴학 승인조차 그렇다. 승인된다면 물론 학생들의 안전은 보장되겠지만, 전공의의 복귀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지옥이 기다리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결국 휴학 승인, 원점 재논의, 그런 것들보다 더 먼 곳을 바라봐야 한다.'필수의료패키지'에 화를 내기보단 그 결과물이 왜 등장했는지에 대한 맥락을 알아보고, 언론의 악마화에 질색하기보단 거부감 없이 착착 진행되는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어떻게 하면 시민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 의사들은 사회의 엘리트로서 무엇을 제시할 수 있을지, 이제 우리는 의대를 다니며 좀처럼 고민하지 않았던 것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우리는 의대 공동체 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어떤 이는 공부에 몰두하며, 다른 이는 연구에 몰두하며, 또 누구는 동아리에 몰두하며 저만의 생활을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숙해지는 것은 사실이나, 비슷한 사람들과만 교류하는 삶에 지나치게 익숙해진다.나와 아예 다른 삶의 궤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한다. 이런 환경에서의 경험이 계속해서 누적되면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도, 다른 이를 이해하는 것도 어렵다.기존의 사고방식을 잠시 내려놓자. 예전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같은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시민들은 의료 현실을 알지 못한다, 의사들이 돈 많이 버는 게 배 아파서 돌을 던지는 거다.'. 흔히 보이는 이런 문장들, 이들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담론의 연장선을 그리지 말고 본질에 다가가자.고민하는 것은 어렵다. 앞서 던졌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렵다. 어떻게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우리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는 것이 그 열쇠라고 생각한다. 의대 내에서도 사람들의 삶은 제각각이지만, 다양한 진로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매력적이다.삶의 한순간에서 그들의 궤적과 당신의 궤적이 맞닿고, 전혀 알지 못했던 세상을 눈으로 바라보는 장면을 떠올리자. 약간의 기대와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가? 발을 내디뎌 그 궤적들을 마주할 때 비로소 나를 알게 되고, 고민에 대한 답을 얻게 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자부심과 안정감을 주었던 의대 공동체에서 잠시 벗어나자.봉사, 동아리, 대외 활동, 운동, 어떤 것이라도 좋다. 정 여의찮다면, 의대 내에서라도 내가 하지 않았던 것들을 도전해 보자. 새로운 환경에서 추억을 쌓으며 고민과 질문들을 이어 나가면 어느샌가 유의미한 지점에 닿는다.비틀어 바라보자. 골몰하고 도전하자. 
2024-10-07 05:00:00오피니언

허무의 너머에는

메디칼타임즈=인제의대 3학년 김성재 나는 지난 8개월간 현 사태에 대한 카드뉴스와 영상을 제작하거나 경험을 위해 인턴 생활을 하는 등, 대의와 실리 어느 쪽도 놓치지 않고 슬기로운 휴학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자신했었다.젊은 의사들을 위로하자는 취지의 행사를 주최하고 성황리에 마무리한 다음 날 오후 어머니의 울음 섞인 절규에 잠이 깨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외할머니께서 림프종을 진단받으신 지 고작 2주 만이었다.그 후 당신의 육신이 불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날짜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경황없는 3일이었다. 기억나는 장면은 입관할 때 5살 어린이처럼 엄마를 하염없이 불러대는 나의 엄마와 술에 취해 바닥에 주먹을 내리꽂는 고인의 부군, 그리고 이름 모를 울부짖음."집에 가고 싶다 캤는데, 김치 성그는 거 알려준다 캤는데. 이제 우리 엄마 못 보잖아. 엄마 못 보내겠다, 엄마, 엄마…"그래서 내가 얼마나 무너졌었는지, 림프종이 호지킨성이었는지, 당신의 별세와 의료대란이 어떤 관계였는지 따위의 무의미한 주제들은 제쳐두자.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튼튼하게 축조했다고 믿었으나 가장 필요한 순간에 어떤 위로의 말도 만들지 못하는 나의 철학, 그리고 본과 내내 만들었으나 두 달 전 정형외과를 방문하셨을 적 신생물이란 의심을 던지지 못했던 나의 스키마에 대한 것이다.혹은 수많은 이들이 발버둥 쳤음에도 나아진 게 없어 보이는 뉴스 속 이야기들에 대한 것이고, 피해 갈 수 없는 죽음, 불합리한 사회, 온갖 사사로운 감정들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의료계의 역사에서 난세(亂世)라고 구전될 갑진년의 의료대란 속에서도, 단 하나의 읍소조차 통하지 않는 판국에 우리 대부분이 느꼈을 감각은 분노 혹은 그것이 타버린 후 남은 무력감과 죄책감이 아니었을까.우리는 보통 위대한 철학자도, 우수한 의사도, 난세의 영웅도 아닐 테니, 누군가에게는 자그마할지 모르는 바람에 꺾이곤 하며 거대한 힘 앞에 좌절하기도 한다. 시련 앞에 무너지는 것은 인간이라면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종종 마주하게 되지만 반성의 시간은 너무 짧아서도 길어서도 안 되는 법.이를 극복하는 방안은 개인마다 다양하다. 고통을 발전에 대한 의지로 승화하는 이들이 있는 한편 술과 담배로 자해하며 잊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다. 누구나 각자의 병법서가 있겠지만 후술할 전략은 최후의 보루임과 동시에 내가 즐겨 쓰는 방법으로, 이미 많은 시도를 해보았으나 여전히 늪에서 헤매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고 참고하였으면 하는 마음에 기록해 두는 것이다.그것은 바로 좌절이 본인을 온전히 잠식하도록 몸을 내어주는 것이다. 삶의 불합리와 불규칙성을 온몸으로 느끼고, 나는 어떤 일을 행했는지, 세상은 어떻게 움직였는지 모두 잘근잘근 분석하고 자책하라.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죽기 직전에야 삶의 반짝임을 보았듯 밑바닥에서야 비로소 보이게 되는 경치는, 무질서한 세계 가운데 한마리 포유류에 불과한 나의 존재.비관적인 문장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그저 작동할 뿐인 세계는 분명 무의미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내가 부여하는 것만이 내 삶의 의미가 된다는 것이다. 적나라한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불완전한 스스로를 정밀하게 인식한 후에야 진정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가 보이게 된다. 한없이 부족한 나이기에 원하는 색채만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이 궁극의 자유를 인지한다면 도대체 어떤 것이 당신에게 무력감을 선사하고, 당신을 죄로 속박할 수 있겠는가?의료대란의 끝은 보이지 않을지라도, 죽음은 피할 수 없을지라도, 사람의 감정은 통제할 수 없을지라도, 아름답게 엉성한 이 장소에서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것만이 의미이자 행복의 전부인데 말이다.밑바닥에서야 비로소 보이던 경치는 허무 끝에 주어진 자유를 통해 무한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나의 존재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관성에 몸을 맡긴 채 허무의 바다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니체는 고통으로 얼룩진 생에서 영원회귀의 개념을 제시하며 '이 삶이 영원히 반복될지라도 사랑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세계에 던졌다. 나는 허무주의의 심연에 빠져 삶을 증오할 바에는 수없이 반복할지라도 즐거울 수 있는 숙명을 찾아 내일 죽어도 좋을 정도로 충실하게 살아가겠다.그러므로 오늘도 나를 지탱하고 남은 생명을 부싯돌 삼아 불합리함에 저항의 불꽃을 던질 것이다. 닿지 않더라도 좋다. 그게 아니라면 남은 선택지는 비관의 절벽으로 낙하하는 것밖에 남지 않으므로.
2024-09-30 05:00:00오피니언

'이야기'의 가능성에 대하여

메디칼타임즈=경북의대 1학년 노정연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일생 동안 우리와 함께하는 것들은 몇이나 될까?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공존하는 삶 속에서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우리와 함께하는 것. 오늘은 그중 하나인 '이야기'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누구나 어린 시절 동화책 속 이야기를 접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신비로운 요정과 동물, 아름답고 용감한 왕자님과 공주님이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한편, 말랑한 내용 속에 여러 사회의 규율들을 숨기고 이를 아이들에게 각인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성장하면서 우리는 더욱 많은 이야기를 접한다.다양한 예술 작품은 물론, 직간접적으로 접하는 수많은 사람의 사연을 듣고, 스스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도 하면서 우리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에 겹겹이 쌓인다.지나가 버린 '오늘'이 우리의 기억 속에 '어제'로 남을 때에도, 이 또한 '이야기'의 형식으로 남아 우리의 기억 속에 자리한다. 우리의 인지 체계가 송두리째 바뀌지 않는 이상은, 우리는 이 거대한 '이야기 세계관'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항상 우리와 함께하는 만큼 이야기가 가지는 의미를 늘 염두에 두기는 어렵겠지만, 얼마 전 우연히 이야기가 가지는 힘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바로 낭독회 참석을 계기로 김연수 작가님의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게 된 것이다."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백석, 『백석 전 시집-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스타북스, 2023) 와 같이 한국 문학계에서 널리 회고될 작품을 여럿 남긴 백석임에도, 광복 이후 월북하여 그의 말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일곱 해의 마지막』은 여러 자료를 토대로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기록되지 못한 백석의 말년을 담아냈는데, 그의 행적뿐 아니라 세세한 내면 묘사까지 담고 있어 읽다 보면 '시인'으로서의 백석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백석을 알아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이 책을 읽기 전의 나에게 '백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교과서나 시험지 속 문학 작품에 표기된 이름이었다. 그의 대략적인 행적과 얼굴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 그랬을까? 나는 단 한 번도 나와 같은 '한 사람'으로서의 백석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나에게 그는 항상 멈춰 있는 사진과 작품 속 '인물'이었을 뿐이므로. 나는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고 나서야, 그가 불과 수십 년 전에 나와 같은 땅을 밟고 살아갔던 '인간'이라는 것을 비로소 실감했다. 이 책에는 완성된 작품 속 백석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또 살아가기 위해 고뇌하는 백석이 있었다.어쩌면 이야기가 가진 가장 큰 힘은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겉모습보다는 상대방의 내면을 마주할 때 비로소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 이런 '마주함'이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이야기의 특별한 점은 어쩌면 평생 만날 수 없었을 사람을 '마주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너무 멀리 있거나, 어쩌면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고 해도, 나와 공통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괜찮다. 책장을 펼치고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숏폼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난다. 밖으로 직접 나가지 않아도, 유튜브나 틱톡, 인스타그램 속에서 스크롤만 하면 수 초 내에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바야흐로 소통의 르네상스가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만, 과연 정말 그럴까? 우리가 하루 동안 접하게 되는 사람들 중 몇이나 진심으로 '마주할' 수 있을까? 단편적인 만남이 너무 쉬워진 나머지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에는 오히려 소홀해진 것이 아닐까?점점 골이 깊어만 가는 집단 간 갈등과 끊이지 않는 각종 혐오 범죄들을 보며 고민이 길어지는 요즘, 우리가 다시금 주목해야 할 대상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인생은 그동안의 삶이 만든 흐름 속에서 이어진다.마찬가지로 모든 것들은 맥락 속에서 읽힐 때만 빈틈없이 이해되기 마련이다. 어쩌면 인류가 가진 가장 큰 가능성 중 하나는 타인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그동안 인류가 만들어 낸 사회의 큰 변혁들은 대부분 타인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이에 공감하여 변화를 위해 연대할 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오늘 하루,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속에서 과연 '나'는 어떤 이야기의 조각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누구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었는지 한 번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2024-09-19 05:30:00오피니언
  • 1
기간별 검색 부터 까지
섹션별 검색
기자 검색
선택 초기화
이메일 무단수집 거부
메디칼타임즈 홈페이지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방법을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할 시에는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 처벌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