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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 못받는 의료전문가들 "떠나고 싶다"

안창욱
발행날짜: 2007-09-07 07:24:50

의료계, 정책불신 위험수위.."인식 바꿔야 의료가 산다"

[기획특집]성모병원 비급여사태 한달..무엇을 남겼나

복지부가 성모병원의 임의비급여 혐의에 대해 28억원 환수, 141억원 과징금 처분을 내린지 한 달이 지났다. 사상초유의 행정처분을 받은 성모병원. 이제 한달이 지난 시점에서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는 정상화된 것일까. 성모병원 의료진들은 불법진료(?)를 포기하고 건강보험법령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정상진료를 하고 있을까. 성모병원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심층취재했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산자도 죽은자도 환급민원 “환자 못믿는다”
(중)합법진료 굴레에 고통받은 의사와 환자들
(하)임의비급여의 굴레, 누가 돌을 맞아야 하나
지난 8월 26일 성모병원에서 백혈병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보호자인 장모 씨는 ‘마일로타그주’를 소아환자도 비급여로 처방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복지부에 탄원을 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임상논문 등 임상연구 결과를 토대로 허가사항을 변경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며 60세 미만에 대해서는 비급여 처방을 할 수 없다고 회신했다.

‘마일로타그주’ 적응증을 소아에게 확대하기에는 임상적 유효성을 증명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자 성모병원에서 소아백혈병을 담당하는 A교수는 “마일로타그주 근거가 부족하다니”라며 버럭 화를 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이런 식으로 하니까 우리나라에서 진료하기 싫다”며 절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미국의 가장 권위있는 소아암 연구그룹에서 소아 백혈병 판정을 받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마일로타그주’ 3상 임상시험이 진행중이다.

그는 “대개 소아를 상대로 대규모 임상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은 그만큼 안전하고,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이라면서 “우리나라는 신규환자도 아니고 재발환자에게 쓰겠다고 수차례 요청했는데도 막고 있다”고 꼬집었다.

의료전문가 의견 존중 시급

성모병원 의료진뿐만 아니라 상당수 의학자들이 정부에 대해 답답해하고, 불신을 가지는 건 이런 행태와 무관치 않다. 의료전문가의 의견을 묵살해 놓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2002년부터 2007년 7월까지 성모병원과 다른 대학병원, 혈액질환 관련 학회 등에서 복지부와 심평원에 혈액암과 관련해 급여 범위나 적응증 확대를 요청한 것은 모두 159건.

당연히 대학병원과 학회는 이런 건의를 할 때 임상적 근거를 제시한다.

이중 정부가 건의를 수용한 게 34건으로 21%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불인정이나 일부 인정이며 심지어 미회신도 적지 않다.

의료전문가집단의 건의가 수용되지 않는 것은 건강보험 재정의 한계와 관련이 있다. 의학자들도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성모병원 B교수는 “정부나 심평원에 뭘 건의하면 회신을 받는데 6개월 이상 걸리거나 딴소리를 하고, 심지어 답변조차 안하기 일쑤”라면서 “학회에서 숱하게 제도 개선을 요구하면 답변도 안하고 이젠 지친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소 잃어야 외양간 고치는 행정

이런 사례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7월부터 유방암 이외의 암질환에 대해 진료비 전액 본인부담방식으로 투여가 인정된 ‘카디옥산주’를 들 수 있다.

이 주사제는 유방암환자의 심장독성 방지에 투여할 때에 한해 급여가 인정되고 나머지 질환에는 투여 자체가 인정되지 않아 작년 한해 암환자들의 진료비 환급 민원 가운데 환급액 비중이 가장 높았던 대표적 약제다.

항암제 독성으로 인한 심부전, 부정맥 등을 사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약제이다 보니 의료기관들은 요양급여기준에 맞지 않더라도 불가피하게 사용해 왔지만 결과적으로 임의비급여를 한 것이어서 진료비 환급을 피할 수 없었다.

전액 본인부담이 최근 인정된 것은 다행스럽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의료기관들은 환자에게 부당청구했고, 진료비를 환급해 줘야하는 혹독한 죄 값을 치러야 했다.

B교수는 “왜 해달라고 할 때는 들은 척도 안하더니 임의비급여사태가 터지니까 선심 쓰듯 해 준다”면서 “그렇다고 병원들이 부당청구를 한 게 아니었다고 환자들이 생각하겠느냐”고 따졌다.

"정부가 의료기관과 환자 이간질"

심지어 성모병원 의료진들은 정책 당국자들이 의사와 환자를 이간질하고 있다는 의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앞서 언급한 ‘마일로타그주’와 마찬가지로 성모병원은 과징금 사태 이전까지 ‘사이폴엔’을 골수이형성증후군 환자에게 임의비급여 형태로 처방해 왔다.

그러나 성모병원이 임의비급여 사태 이후 이 약제 처방을 중단하자 이 환자 보호자 역시 복지부에 탄원서를 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처방 투여할 수 있다’는 식으로 애매하게 회신했고, 메디칼타임즈가 이를 보도하자 뒤늦게 골수이형성증후군에 투여할 수 없는데 답변에 착오가 있었다고 해명하고 나섰다.

하지만 성모병원은 복지부의 회신이 단순 실수가 아니라고 단정하다시피 한다.

C교수는 “환자에게는 마치 약을 투여할 수 있는 것처럼 답변하고, 실제는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게 복지부의 이중적 태도”라면서 “약을 투여할 수 없으면 국민을 이해 시켜야 하는데 국민과 의사를 이간질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성모병원과 의료기관들은 심평원도 이중 심사잣대를 들이댄다고 불만이다.

의료기관들이 질의하면 급여할 수 없다고 회신하면서 환자들이 진료비 확인 신청 민원을 제기하면 급여로 인정해 환급하도록 통보한다는 것이다.

심평원이 “민원과 심사는 업무의 내용이 다른 것일 뿐 심사의 기준은 단일한 규정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깊은 불신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성모병원 C교수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양급여 책자에 보면 ‘진료상 필요한 경우 인정한다’거나 ‘소견서를 첨부하면 인정한다’는 게 있다. 하지만 이런 문구는 문구에 불과하다. 막상 진료에 필요해 어떤 행위를 하면 삭감하면서 자기들(심평원)은 필요 없다고 한다. 또 소견서를 첨부하면 해당 소견이 없다고 한다”

기준초과시 환자 전액부담 인정해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리’ 식의 심사를 한다는 것인데 사실 여부를 떠나 불신이 얼마나 깊은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 의료진은 “정부가 그간 임의비급여를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니라 암암리에 인정해주고 있었던 것”이라면서 “지난해 말 이후 갑자기 진료비 확인민원이 폭주하니까 이제야 모든 책임을 병원에 떠넘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성모병원 의료진들은 임의비급여사태 이후 정부와 심평원이 요양급여기준이나 심사기준을 완화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별로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임의비급여가 문제가 되니까 일시적으로 풀어주는 것이지 언젠가는 다시 의료기관을 압박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그렇다면 성모병원 의료진들은 제2의 임의비급여사태를 막기 위해 어떤 대책을 주문하고 있을까.

A교수는 “복지부와 심평원은 임의비급여의 제도적 모순을 알고 있었지만 덮어둔 것”이라면서 “이제라도 건강보험 재정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정직하게 밝히고, 보험이 안되는 것은 환자가 본인부담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성모병원 교수들은 정부가 의료를 바라보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C교수는 “임의비급여 사태는 건강보험 재정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신의료기술의 선택권을 시장에 맡기고 전문가집단의 자율적 판단을 존중하려는 인식전환이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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