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은 성모병원이 임의비급여를 한 것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담당 의사의 직업적 양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며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복지부, 공단의 과징금 및 환수 처분을 취소한다고 결론 내렸다.
특히 재판부는 급여기준이나 식약청 허가사항을 위반한 치료행위라 하더라도 5가지 기준을 충족한다면 임의비급여라고 규정할 수 없다는 잣대를 제시했다.
서울행정법원 제2부(재판장 한승)는 29일 성모병원의 임의비급여사건과 관련, 공단의 19억 3천만원 환수, 보건복지가족부의 96억 9천만원 과징금 처분을 모두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성모병원이 식약청 허가사항을 초과한 약제나 별도 산정 불가 치료재료의 비용을 환자에게 부담시켰다 하더라도 이들 모두를 부당청구로 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서울행정법원이 부당청구로 볼 수 없다는 기준은 5가지다.
우선 성모병원이 환자 치료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 한해 임의비급여를 했다는 것이다.
또한 법원은 “복지부가 성모병원에 대해 현지조사후 문제가 된 임의비급여 약제 37개 항목 중 12개 항목, 별도산정 불가 치료재료 51개 항목 중 32개의 급여기준을 변경한 것에 비춰보면 기준 변경 이전에도 의학적 타당성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성모병원이 환자로부터 징수한 임의비급여 약제비나 치료재료 비용이 실거래가격이어서 별도의 이익을 얻은 게 없다는 점도 판단 근거의 하나로 삼았다.
이와 함께 법원은 “병원이 임의비급여를 할 당시 사전신청제도가 구비돼 있지 않았고, 달리 환자나 공단으로부터 그 비용을 보전 받을 수 있는 실효적인 사전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아 환자로부터 비용을 징수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고 직시했다.
마지막으로 법원은 병원이 임의비급여 진료행위를 하기 전에 환자에게 급여기준을 위반한 진료행위의 의미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그 시행에 대한 사전 동의를 받았다는 점도 꼽았다.
다시 말해 임의비급여라 하더라도 △생명이 위독한 환자의 치료를 위해 필요하고 △수진자의 사전 동의를 받고 △의학적 타당성이 인정되고 △비용이 약제나 치료재료 실거래가의 범위 안에 있고 △공단이나 환자로부터 비용을 보전 받을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다면 부당청구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런 사례들까지 예외 없이 법리를 적용하면 병원으로서는 비용 보전을 받지 못하거나 통상적인 치료를 할 수밖에 없다”면서 “전자를 강요한다면 병원 재산권을 침해하고, 후자로 한다면 의사의 진료행위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행정법원은 전자와 후자 모두 헌법에 위반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환기시켰다.
서울행정법원은 성모병원이 진료지원과에 대한 선택진료를 주진료과 의사에게 포괄 위임한 것에 대해서도 부당청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병원이 환자에게 이에 대한 설명 절차를 거쳤고, 법령 어디에도 주진료과 의사에게 진료지원과의 선택진료를 위임한 것을 금지하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는 것이 판단의 이유다.
여기에다 법원은 “복지부가 2008년 11월 주진료과 의사로 하여금 진료지원과 의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규칙을 개정한 것은 과거 포괄위임을 두지 않은 것이 의료계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부당한 것이라는 반성적 고려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반면 법원은 성모병원이 삭감을 우려해 공단에 청구해야 하는 진료비를 환자에게 부담토록 한 것은 부당청구에 해당한다고 봤다.
법원은 “종전에 심평원의 진료비 심사과정에서 삭감된 사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적 심사절차를 회피한 채 공단 부담분까지 본인부담금으로 징수한 점에 비춰보면 이에 대한 제재는 불가피하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허가사항 초과 의약품 비용 징수 유형, 별도산정 불가 치료재료 비용 별도 징수 유형 전부에 대해 일률적으로 부당청구에 해당한다고 본 점과 선택진료를 부당징수로 볼 수 없음에도 이와 달리 본 점에서 복지부와 공단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어 법원은 “당사자가 제출한 증거나 법원의 증거조사에 의해 나타난 증거자료만으로는 정당한 과징금 액수나 환수액을 구체적으로 산출할 수 없어 처분 전체를 취소한다”고 선고했다.
법원은 “병원이 임의비급여 진료행위를 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볼 여지가 있고, 환자들의 생명이나 건강을 구하고자 하는 담당 의사의 직업적 양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환수액의 5배에 달하는 과징금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 남용해 처분 취소를 면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이같은 서울행정법원의 판단은 기존 사건의 판결과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10월 서울대병원이 심평원의 진료비환불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과 관련, 판결을 선고하면서 의학적 타당성을 거의 인정하지 않았다.
성모병원이 심평원의 임의비급여 진료비 환불처분에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도 마찬가지였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7월 이 사건 판결에서 선택진료비에 대해서는 병원의 포괄위임을 부당청구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나머지 허가사항 초과분, 치료재료 비용 별도산정, 공단 부담금 환자 전가 등에 대해서는 심평원의 환불처분이 정당하다며 의학적 불가피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 최의호 공보판사는 “이번 판결은 급여기준이나 허가사항을 위반한 치료행위라 하더라도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부당청구로 볼 수 없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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