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 진단서 등을 환자에게 교부할 수 없다고 규정한 의료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헌법재판관 8명 중 4명이 이 조항을 위헌이라는 입장을 취해 간신히 합헌 결정이 선고됐다.
헌법재판소는 29일 재판관 4:4의 의견으로 의료법 제17조(진단서 등) 제1항 본문 중 '직접 진료한' 부분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청구인은 2006년 1월부터 총 672회에 걸쳐 자신의 병원에서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않고 전화로 통화한 다음 처방전을 작성, 환자가 위임하는 약사에게 교부했다.
이 때문에 청구인은 의료법 위반으로 약식명령이 고지되면서 정식재판을 청구했지만 벌금형을 받았다.
그러자 청구인은 항소를 제기하고, 소송 계속 중 의료법 제17조 제1항 본문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을 했지만 기각되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고 나섰다.
의료법 제17조 제1항에 따르면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가 아니면 진단서·검안서·증명서 또는 처방전을 작성해 환자에게 교부하거나 발송하지 못한다.
다만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가 부득이한 사유가 있다면 같은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다른 의사·치과의사·한의사가 환자의 진료기록부 등에 따라 내줄 수 있다.
이 사건 심판대상은 의료법 제17조 1항 본문의 '직접 진찰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다.
이에 대해 헌재는 "이 사건 법률 조항에서 말하는 '직접 진찰한'은 의료인이 '대면해 진료를 한'으로 해석되는 외에는 달리 해석의 여지가 없다"고 못 박았다.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의료인의 '대면진료의무'와 '진단서 등의 발급 주체'를 함께 규율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헌재는 "통상적인 법 감정과 직업의식을 지닌 의료인이라면 대면진료를 한 경우가 아니면 진단서 등을 작성해 교부할 수 없고,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의료행위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고 환기시켰다.
이어 헌재는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그 내용이 불명확해 수범자의 예측 가능성을 해한다거나, 법 집행기관의 자의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고 보기 어려워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관 8명 중 김종대, 목영준, 송두환, 이정미 등 4명은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직접 진찰한'의 의미가 진단서 등의 '발급주체'만을 한정한 것인지, 아니면 '진찰행위의 방식'까지 한정한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 재판관은 "부득이한 사유가 있으면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더라도 진단서 등을 내 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의료법 제17조 제1항 단서에 비춰 이 사건 법률 조항은 진단서 등의 발급주체만을 한정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지적했다.
'직접 진찰'이란 문구가 반드시 '대면 진찰'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들 재판관은 "진찰방식을 '대면진찰'로만 제한해 해석하는 경우에도 '대면진찰' 이외의 모든 진찰을 전면적으로 금하는 것인지, 아니면 '대면진찰에 준하는 정도의 진찰'은 허용되는 것인지 여부가 여전히 불명확하다"고 주장했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원격진료를 할 때에도 진찰의 정확성이 보장될 수 있고, 질병의 종류나 상태에 따라서는 최초대면 진찰 이후에는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는 한 대면 없는 진찰을 통해 처방전을 발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재판관은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진단서 등의 발급을 위한 진찰행위와 관련해 어떠한 진찰행위가 금지되고, 처벌되는지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아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반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동의해야 헌법 결정을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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