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임의비급여 판결이 과거와 달리 진일보한 것은 일부 공감한다. 하지만 판결 이후 의료현장에선 보험체계를 떠나 최선의 진료를 다하는 의사가 줄고 있어 안타깝다."
'건강보험법상 임의비급여와 소멸시효'를 주제로 열린 대한의료법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좌장을 맡은 이윤성 교수(서울의대)는 임의비급여 판결 이후의 변화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왼쪽부터 김필수 법제이사, 이윤성 교수, 박태신 변호사, 김연경 판사
이날 학술대회는 임의비급여 판결에 대한 의미를 짚어보고, 임의비급여 허용요건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토론자들은 임의비급여의 의학적 필요성이나 의학적 안전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했다. 하지만 의학적 유효성을 두고는 의견이 갈렸다.
자칫 건보체계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으므로 의학적 유효성을 엄격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측과 의료인의 판단에 맡겨 폭 넓게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 것.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박태신 변호사(심평원)는 "임의비급여 진료에 대한 증거 확보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요양기관이 예외적인 사정에 대해 증명책임을 지는 것은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하고 급여범위를 확대하면서 임의비급여의 많은 부분이 해소될 수 있겠지만, 이는 결국 보험재정의 문제로 귀결되므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토론을 맡은 대한병원협회 김필수 법제이사(본플러스병원)는 "대법원의 판결이 일부 진일보했지만 의료진들은 고뇌가 시작됐다"고 털어놨다.
김 법제이사는 먼저 요양급여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와 최선의 진료 대신 보험체계에 맞춰서 진료하는 의사 등 2가지 부류로 구분했다.
문제는 두 케이스 모두 비난을 받을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요양급여기준을 무시하고 소신진료한 의사는 허위 및 부당청구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을 수 있고, 이와 반대로 보험체계에 맞춰 진료한 의사는 추후 의료소송이 불거졌을 경우 최선의 진료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대법원의 판례에서 임의비급여의 허용요건을 정해두고 판단하자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허용요건을 폭넓게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좌장을 맡은 이윤성 교수 또한 김 법제이사의 발표에 동조하며 "특히 의원급 의료기관은 임의비급여 허용요건과 관련해 왜 임의비급여로 환자를 진료했는지 의학적인 부분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준대로만 진료하겠다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김연경 판사는 "핵심은 의학적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요양급여기준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라면서 "환자가 최선의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는데 급여영역에서 진료에 대한 사후 통제가 지나치게 엄격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의비급여 논란 해결책이 포괄수가제와 총액계약제?"
또한 박태신 변호사는 임의비급여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현행 행위별 수가제를 질병군별 포괄수가제나 총액계약제로 개편할 것을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임의비급여를 예외적으로 인정하게 되면서 보험재정 문제가 발생하고 더 나아가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릴 위험이 높다"면서 "그 대안으로 행위별 수가제를 질병군 포괄수가제나 총액계약제 등으로 개편하는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포괄수가제나 총액계약제를 도입하면 정해진 수가 안에서 의료진이 재량껏 진료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임의비급여 논란도 줄어들 것이라는 게 박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연경 판사는 "대안으로 질병군별 포괄수가제를 제시했지만 이는 오히려 임의비급여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일부 의사들 입장에선 이윤과 비용의 관계에 있어 많은 이윤을 남기려면 값싼 치료재를 사용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텐데 어떻게 포괄수가제가 임의비급여 논란을 해결하는 대책이 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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