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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끗발없는 바지원장…공공병원은 시장 생색용"

발행날짜: 2013-04-09 06:40:28

기획김모 진료과장 "존재감 상실"…"퇴직 공무원 위한 굿판"

A지방의료원 김성민 진료과장(가명)은 레지던트를 마치고 개인병원에서 봉직의로 1년간 근무하다가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10년째, 그는 스스로 정체된 느낌에 한숨이 나온다.

그가 처음 지방의료원에 온 것은 저소득층 환자에게 소진진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의사로서 공공의료에 한몫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하지만 그는 요즘 헷갈린다. 이제 와서 다른 병원에서 적응하기 귀찮고 민간병원보다 비교적 여유롭게 환자를 진료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지방의료원은 왜 존재하는가?"

환자대기실에서 지켜본 김성민 과장은 환자 한명 당 10분 가깝게 진료하는 열성적인 의사였다. 환자와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며 진료하는 목소리가 연신 새어나왔다.

그런 그가 현재 지방의료원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니 더욱 궁금해졌다.

A지방의료원 김성민(가명) 진료과장
경남의 진주의료원 폐업 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일단 자신은 다른 시각에서 얘기하고 싶다며 자조적인 어투로 평소 생각했던 것을 토해내듯 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지방의료원은 공공의료를 실현한다는 이유로 변화를 게을리 했다. 하지만 이제 저소득층의 의료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존재 이유가 불분명해졌음을 느낀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는 의료원을 잘 운영할 수도 없고, 환자가 늘지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지방의료원은 몰라도 자신이 근무하는 의료원은 정체돼 있어 당장 개혁하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의료진은 물론 직원들이 안일한 태도로 근무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그의 말인즉슨 지방의료원의 공공병원으로서의 역할 등 모든 것을 떠나서 존재 이유가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역 주민들은 시립도서관, 시립예술회관, 공원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갖고 반기지만 지방의료원은 왜 그런 존재가 되지 못할까. 극단적으로 인근 주민 상당수가 지방의료원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이것이 지방의료원의 현주소다."

그는 지방의료원에 대해 지역주민이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의료진을 포함한 직원들의 책임이라고 단언했다.

또한 그는 지방의료원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나태한 것은 그에 따른 페널티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령, 환자가 민원을 제기해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한번 불쾌하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리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공공병원, 주인은 누구인가?"

자조적인 표정으로 일관하던 그는 잠시 숨을 돌리더니 이번에는 지방의료원이 왜 이렇게 됐는지, 자신의 열정이 왜 점차 식게 됐는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의료원의 주인이 의료원장도 직원도 아닌 도지사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자괴감을 맛봤다.

구조적으로 도지사가 바뀌면 그에 따라 의료원장이 바뀐다. 의료원장 임기는 3년에서 길어야 5년 정도. 도지사와 정치적인 노선을 달리하거나 구미에 맞지 않으면 의료원장이 될 수 없다.

"의료원장의 권위가 바로 설 수 있는 구조가 못된다. 직원들 대부분 도지사가 실세라는 것을 알고 있다. 도지사가 바뀌면 그에 따라 의료원 공공의료 사업도 달라진다. 진주의료원도 마찬가지다. 이전의 도지사였다면 폐업조치하지 않았을 거다."

김 과장을 더욱 씁쓸하게 하는 것은 의료원 공공의료사업이 도지사에 따라 정치적으로 활용된다는 점이었다.

그는 지자체에서 이라크 전쟁 당시 의료지원 사업을 추진해 참여했지만 전형적인 전시행정이었음을 느꼈다. 지자체는 진료보다는 사진 찍는데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로 공공의료 사업에 대해 회의적이 됐다.

게다가 잠시 스쳐가는 의료원장에 비해 고용을 보장받은 직원들은 의료원장을 무서워하지 않는 모습도 그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그는 "적어도 도지사의 말 한마디에 지방의료원의 존폐가 결정되고 공공의료가 휘둘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 "이는 일단 의료원이 공공의료에서 확고한 입지를 차지하지 못하고, 조직이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지방의료원은 여러 문제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래도 이를 없애는 것 보다는 공공병원으로서의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찾아주는 게 해답이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모 지방의료원 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이모 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시청에서 왜 의료원에 매년 수십억원을 지원하는지 아느냐"면서 "이는 의료원의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퇴직 공무원들 자리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사정이 이렇다보니 원장은 바지에 불과하고 실제 병원을 이끌어 가는 것은 시청과 결탁한 퇴직 공무원들"이라면서 "이러니 병원이 제대로 돌아가겠느냐"고 비판했다.

김 과장은 진주의료원 폐업에 대해 "파격적인 개혁 없이 과거처럼 운영해서는 가능성이 없다"면서도 "그렇다고 해도 개선의 여지를 찾아야지 폐업시켜 아예 가능성조차 잘라버리면 안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각에서 공공병원에 투입될 예산을 민간병원에 투자하면 그 이상의 성과를 낼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일부 공감하고 이해한다. 하지만 민간병원에서 할 수 있는 공공의료는 한계가 있다. 공공병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절대 부인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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