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한의사가 안압측정기 등의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한 것을 의료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결정했다.
헌법재판소는 26일 재판관 만장일치로 한의사인 하모 씨와 박모 씨에 대한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하라고 선고했다.
검찰은 지난해 3월 하씨와 박씨가 의료법 제27조 제1항을 위반했지만 정상을 참작해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
의료법 제27조(무면허 의료행위 금지) 제1항에 따르면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이들 청구인은 안압측정기, 자동안굴절검사기, 세극등현미경, 자동시야측정장비, 청력검사기 등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다가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이에 대해 헌재는 "의료공학의 발달로 종래 의사가 사용하는 것으로 인식되던 의료기기를 한방의료행위에 사용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한방에서 활용되던 의료기법을 의사가 활용하려는 시도 역시 계속되고 있다"고 환기시켰다.
이어 헌재는 "이러한 행위들이 의료법 제27조 제1항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의사와 한의사의 직역간 갈등으로 비화돼 행정조치 요청이나 형사고발 등을 통해 다퉈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헌재는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이 법리를 오해했다고 결론 내렸다.
헌재는 "청구인들이 진료에 사용한 안압측정기 등은 측정결과가 자동으로 추출되는 기기들이며, 신체에 아무런 위해를 발생시키지 않고, 한의사가 판독할 수 없을 정도로 전문적인 식견을 필요로 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더구나 자동안굴절검사기는 의료인이 아닌 안경사도 사용할 수 있는 기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헌재는 "동의보감에서는 녹내장에 해당하는 질환을 녹풍, 백내장에 해당하는 원예에 대해 그 원인과 치료방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고, 이 사건 기기 사용은 종래 전해 내려오는 진단방법으로서 망진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헌재는 "한의대의 교육과정에서 한방진단학, 한방외관과학 등의 강의와 실습을 통해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한의학을 토대로 이 사건 기기를 이용해 기본적인 안질환이나 귀질환을 진료할 수 있는 기본적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의료법은 한의사와 의사의 업무영역과 면허범위를 구별하는 이원적인 체계를 취하고 있지만, 안압, 굴절도, 시야, 수정체 혼탁, 청력 등에 관한 기초적인 결과를 제공하는 현대의료기기는 한의사의 진단능력을 넘어서는 전문적인 식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헌재는 청구인들이 이 사건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해 진료행위를 한 것을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라고 볼 수 없어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한편 이와 관련 한의사협회(회장 김필건)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의협은 "헌법재판소가 의료인인 한의사에게 과학기술의 산물인 의료기기의 사용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면서 "이로써 한의사들의 의료기기 활용에 대한 중요한 법적근거가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한의협은 "의사단체 등의 직역 이기주의로 인해 이제 더 이상 한의사들이 진료에 의료기기를 활용하는 것이 제한돼서는 안 된다"면서 "이번 판결에 따라 한의사들은 의료기기 활용을 통해 양질의 한방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안과의사회 등 의료계는 "안압 측정 기기는 한의학적 이론이 아니라 현대 의학과 과학적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면서 "이를 한의사에게 사용하도록 한 판결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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