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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 의식주(의 편) '가운'

배고은
발행날짜: 2014-05-31 06:03:29

경희대 의전원 3학년 배고은 씨

연 초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점심시간에 병원 근처 음식점에서 가운을 입은 채 식사하던 실습 학생들의 사진이 선생님들 사이에서 돌았던 것이다. '에이, 가까운데 괜찮겠지' 하고 입고 나간 가운이 하필 새것이라 하얗디하얘 그렇게 눈에 잘 띌 줄이야. 아무것도 모른 채 밥을 먹는 동기들의 해맑은 식사 사진은 밤사이에 병원 온 구석에 퍼졌고, 당사자들은 그 다음날 세탁한 빨래털 듯 탈탈 털렸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이제 막 병원 생활을 시작하는 모든 동기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던 사건이었다. 이제야 알게 된 건데, '병원 밖 가운 사건'은 매 해 치러지는 의식과 같은 행사라고 한단다. 가운이라고는 실험실 가운도 입어볼까 말까 한 학생들에게 '의사'로서의 의무를 입고 있음을 몸소 체험한 사건이었다.

옷은 생각보다 기능이 많다. 옷의 기능 발달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면, 고대의 체온과 물리적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보호 기능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후 염색 기술의 발달과 함께 주술적 기능이 추가되었고, 근대에 들어서 사회 계급 및 규제를 의미하는 상징적 기능으로 발달했다. 근현대에는 장신구 및 소재의 발달로 개성 표출의 표현 기능까지 더해지면서 옷의 기능은 어마어마하게 폭이 넓어졌다. 신기한 점은 옷의 기능이 발달해온 역사와, 사람이 성장하면서 입는 옷의 기능의 변천사가 꽤 비슷하다는 점이다.

어릴 때는 신체 보호를 위해 자극이 덜한 천으로 만든 아가 옷을 입다가, 파란색, 분홍색 옷을 성별에 따라 입으면서 남녀 각각의 상징적 행동을 깨닫는다. 그 후 중고등학교 때는 절제와 단체 행동을 의미하는 교복을 입고, 마지막으로 자아가 완성되며 사회적 독립을 할 즈음에는 개성을 담은 옷을 입는다.

이 관점에서 '병원 밖 가운 사건'을 어설프게나마 정의해보자. 이미 개성 있는 옷을 입어본 우리가 의무와 상징적 기능이 강한 옷을 입음으로써 일시적인 퇴화를 하며 순리에서 벋어났고, 이미 개성에 젖어있던 우리에게 가운의 의미가 익숙지 않아 실수를 범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매우 신빙성이 떨어지고 이론적 근거도 없지만(있을 수가 없지만) 옷과 관련해서 설을 풀어보았다.

아무튼 간에, 병원 실습을 돌다보면 가운의 이런 상징적인 위치를 실감한다. 가운을 걸쳤을 뿐인데 한참 어른 분께로부터 극존칭을 대접받거나 인사를 받기도 하고, 갑자기 질병에 대해 물어보는 등 당황스러운 상황이 꽤나 빈번하게 벌어진다. 실은 일반인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학생이지만, 가운을 걸친 그 모습이 병원의 모습이고, 나아가 의사의 모습인 것이다. 가운을 집어던진 후에는 클럽에 가던, 고기 집에 가서 술을 만땅으로 먹던, 반바지에 조리를 신고 다니던 아무 상관없지만, 가운을 입었을 때에는 의사의 기운과 고귀함을 존중할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아무리 의료가 서비스업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해도 의료라는 행위는 존경받고 인정받아야 한다. 이를 제대로 표현하고 상징하는 것이 가운이기에, 백의 가운은 어쩌면 의사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자 자부심, 그리고 순결하게 지켜야할 의무이다. 따라서 가운입고 밥 한번 먹으러 갔을 뿐인데, 그것이 큰 사건이 되었던 것이다.

하얀 가운은 매력 있는 옷은 아니다. 100% 면 소재라 한번 일어났다 앉으면 구김 때문에 대기 중에 몰래 앉아있을 수도 없고, 펜 한번 잘못 꼽으면 도화지에 그림 그리듯 알록달록해진다. 지금쯤이면 합성소재의 발달로 구김과 얼룩에서 해방된 가운이 나올 법도 한데, 참 일관적으로 하얀, 면 옷이다. 심지어 동대문 시장에 가면 만원에 세탁과 빳빳하게 드라이까지 해서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 꼬질하고 구깃한 하얀 가운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의미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새삼스럽지만 다시 느낀다. 실습이 끝난 주말에 가운을 세탁하려 세탁기에 집어넣으면서 표백제를 배로 넣었다. 더 하얗고 빳빳해지는 만큼, 올곧은 의사가 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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