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말하는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수시로 환자의 죽음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 의사의 숙명이지만 상당수의 의사가 죽음에 대해 무관심하다. 어쩌면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꺼리는 게 사실이다.
최근 이같은 의료 현실 속에서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의료진 3인이 죽음에 대해 대담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책 '의사들, 죽음을 말하다'를 발간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책은 전 서울대병원 김건열 교수(호흡기내과), 정현채 교수(소화기내과), 서울아산병원 유은실 교수(병리과)등 3명의 의사가 대담을 주고 받는 형식으로 의료현장에서 마주하는 죽음부터 사후세계에 대한 내용까지 죽음에 대해 깊숙히 파고든다.
죽음에 직면한 환자에게 생명을 연명하기 위한 치료를 지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논의부터 죽어가는 환자에게 상태를 알릴 것인가 등 죽음을 둘러싼 다양하고도 진지한 논의를 이어간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열린 문'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게 저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특히 의사들 사이에선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논의조차 꺼리는 근사체험(near-death: 죽음 직전의 상태 체험)과 사후세계 체험에 대해 담담하게 풀어냈다.
정현채 교수는 "일각에선 근사체험을 '뇌가 헷갈리는 현상일 뿐'이라고 일축하기도 하지만 이는 실제로 임종환자를 곁에서 지켜보는 호스피스 실무자들은 잘 알고 있는 사실들"이라고 적고 있다.
그는 근거로 한 여의사 친구가 경험한 사례를 소개했다.
그 친구는 마취과 의사로 미국의 병원에서 근무를 했다. 그는 주로 심장수술 마취를 담당했는데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늘 그를 무시했던 외과의사가 심장이 멎는 응급사태가 발생했다.
급히 의료진이 30분간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반응이 없자 다들 포기하려고 했다. 그 순간 그 친구가 나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해보겠다고 나섰고 비지땀을 흘리며 30분간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극적으로 살아났다.
신기한 점은 여기서부터다. 회생한 외과의사는 심폐소생술 도중 체외이탈을 해 자신의 소생술하는 광경을 지켜봤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미국인 의사들은 심폐소생술 흉내만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한국인 의사인 그 친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며 이후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이처럼 사후세계는 존재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만 하기보다는 죽음에 앞서 현실의 삶에 더 집중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왼쪽부터 유은실, 김건열, 정현채 교수
이들 3명의 의사는 왜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일까.
정 교수는 4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해 현재에 이르게 됐다.
그는 "의과대학은 물론 전공의 과정에서도 생물학적 죽음만 배웠을 뿐 죽음의 다른 측면에 대해선 접하지 못해 궁금증이 커졌다"고 말했다.
유은실 교수는 어릴 적 장례식을 다녀온 후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신을 잃었던 경험 이후 잠시 잊고 지내다가 '죽음학회'라는 모임을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됐다.
올해 81세를 맞은 김건열 교수는 지난 1997년 발생한 '보라매병원 사건'의 대법원 판결을 지켜보며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당시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를 지낼 당시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이 환자 보호자의 요청으로 인공호흡기를 뗐다가 살인방조죄로 처벌을 받는 일련의 과정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김 교수는 "그 사건 이후로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의료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라면서 "의사도 죽음 관련 실정법과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에 참여해야한다"고 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실제로 저자 3명 모두 본인의 장기기증 서약서와 사전의료의향서를 이미 작성해뒀다.
정 교수는 "의대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죽음=질병치료의 실패'라고 바라보는 시각이 뿌리깊게 박혀 무리한 연명치료를 이어가게 되는 것"이라면서 "죽음에 대해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받아들이게 되면 무리한 연명치료를 하는 의사는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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