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 발견으로 포르투갈이 중국을 거쳐 일본에 이르렀던 것도 임진왜란의 원인(遠因)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김동환과 배석은 [금속의 세계사]에서 인류 문명을 바꾼 7가지 금속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다. 7가지 금속 가운데 은이 세 번째로 등장하는데, 바로 은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서 김감불과 김검동이 함경도 단천에서 채굴되는 납을 가지고 순도 높은 은을 더 많이 제련하는 단천연은법을 개발해내는데 성공했다는 기록을 인용한다.
단천연은법은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最高)의 은 제련법으로 중국이나 일본, 또는 서양의 제련법보다 순도가 더 높은 은을 추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기술이 중국과 일본에 전해졌고, 일본은 1533년 전해진 이 기술을 이용하여 대규모의 은광산을 개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은을 기반으로 전국을 통일할 수 있었고 나아가 조선침략을 꿈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은상은 [정화의 보물선]에서 포르투갈이 동아시아 역사에 기여한 바를 정리하고 있다. 바스쿠 다 가마가 1498년 희망봉을 돌아 인도의 서쪽 캘리컷에 도착한 이후로, 1514년 호르헤 알바레스가 중국에 도착하였고, 1543년에는 일본에 도착하기에 이르렀다. 1557년 포르투갈이 마카오에 정착하면서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삼각무역이 활기를 띄게 되었다.
포르투갈 상인은 중국에서 비단, 황금, 사향 그리고 자기를 일본으로 가져갔고, 일본에서 돌아올 때는 은을 가져왔다. 그 무렵 은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화폐였는데, 중국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은이 비쌌던 것이다.
17세기에 이르면 일본이 전 세계 은 생산량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다고 하니 조선이 전해준 은 제련기술에 더해진 포르투갈의 삼각무역은 일본의 발전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렇게 쌓은 부를 바탕으로 임진왜란을 일으켜 전 국토를 쑥대밭을 만들었으니 은혜를 원수로 갚은 셈이다. 당연히 그 배경에 있는 포르투갈의 아시아 진출이 달갑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발견의 탑’에서 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가 우리에게는 고난의 시작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불편한 마음을 추스르면서 지하도를 건너 제로니모 수도원으로 간다. 길 건너에서 바라보아도 한 눈에 들어올까 싶을 거대한 건물이 펼쳐진다. 그리고 지하도에서 올라서는 순간 건물 앞으로 펼쳐지는 널따란 정원에 압도당한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제로니모 수도원은 15세기 경 엔히크왕자가 벨렝의 성모께 봉헌한 교회가 있던 장소에 세워졌다.
마누엘1세는 성모와 제로니모성인을 기리던 엔히크왕자를 기념하기 위하여 수도원을 설립하기로 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항로 무역에서 거둔 5퍼센트의 관세를 재원으로 하였는데 연간 황금 70kg에 달했다고 한다. 후기 고딕의 마누엘양식으로 지어진 수도원은 1501년 1월에 착공하여 100년 뒤에 완공되었다. 디오고 드 보이타카( Diogo de Boitaca)가 처음 설계하고 후안 데 카스틸루(Juan de Castilho)가 이어서 건축을 맡았다.
포르투갈이 해상무역을 독점하여 호황을 누리던 16세기 초에 유행하던 건축양식으로 산호나 조개 문양으로 장식된 몰딩이며, 로프나 밧줄 모양을 새긴 건물의 돌림띠도 볼 수 있다. 창이나 문 위에서 보는 문장을 새긴 방패, 십자가, 항해도구, 부표 등은 배에서 흔히 보는 장식들을 건축에 적용한 것이다. 대항해시대에 이곳은 항해에 나선 사람들의 무사 귀환을 기도하는 곳이기도 했다.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를 열었지만 그 영화가 오래갈 수 없었던 것은 결국은 사람이 문제였을 것이다. 브라질에서 말레이제도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지역을 품은 포르투갈제국은 넓은 제국을 통치하기 위하여 식민지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결국 본토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사람이 부족하게 된 것이다. 1500년에 200만에 달하던 인구는 1586년 무렵에는 절반으로 줄었는데 대부분 아시아로 떠난 사람들 때문이었다.
이들 가운데 포르투갈로 돌아오는 사람은 10분의 1도 되지 못했다고 한다. 풍토병에 걸리거나 배가 난파되어 죽은 사람도 있고, 식민지에 눌러 앉는 길을 선택한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최근 뉴스에서 본 거대한 브라질 녹색뱀(Green Snake)이 소를 삼켰다가 토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욕심을 부려 소를 삼켰지만 자기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안 뱀은 소를 토해낸 것이다.
그런데 당시 포르투갈은 돈을 벌어들이는 재미에 빠져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식민지를 구축하였던 것이고, 역설적으로 식민지가 독이 되어 스스로 쇠락의 길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달이 차면 기운다는 자연의 이치를 깨치지 못했던가?
포르투갈을 스페인에 통합시킨 펠리페3세가 1604년 제로니모 수도원을 왕가의 묘소로 사용하도록 한 이래, 포르투갈 왕실이 나라를 되찾은 다음에도 이곳을 왕실의 묘소로 사용하였다. 아마도 수도원에 부속된 성모성당이 그 장소가 아닐까 싶다. 성모성당에 들어서면 바스코 다 가마(1468-1523)와 대항해시대에 활동한 포르투갈의 국민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1527-1570)의 석관을 볼 수 있다. 1880년 성당으로 옮겨진 두 사람의 석관은 당시 유명한 조각가 코스타 모타가 신마누엘양식으로 조각한 것이다.
성모성당에 들어서면 높다란 천장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 눈길을 끈다. 성당을 지을 무렵 포르투갈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야자수의 모습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얻은 자유시간으로는 겨우 성모성당을 돌아볼 수 있는 정도의 여유밖에 없어 제로니모 수도원 내부까지는 구경할 수 없었다.
발견의 탑에서 제로니모 수도원으로 가는 길에 사실은 리스본의 명물로 소문이 난 에그 타르트 가게에 먼저 들렀다. 화장실도 이용하고 에그 타르트를 만드는 모습도 구경하기 위해서다. 일행들이 모두 에그 타르트 맛을 보려고 기다랗게 줄을 서야하는 불편함을 막기 위하여 인솔자 이봄씨가 대표로 줄을 서 에그 타르트를 사서 일행들이 맛볼 수 있도록 선물해주었다. 세심한 데까지 신경을 써준 봄씨에게 다시 감사드린다.
[꽃보다 할배] 스페인편에서 신구씨가 '이건 계속 먹을 수 있을 것 같다'하고 했다는 에그 타르트는 제로니모 수도원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수도원에서는 수녀복을 빳빳하게 하기 위하여 계란 흰자를 시용하였는데, 남은 노른자를 활용하여 만든 것이 바로 에그 타르트였다는 것이다. 수도원에서 에그 타르트 제조기술을 근처 가게에 전수하여 일반인도 맛볼 수 있도록 한 것이 리스본의 명물을 넘어 세계의 명물이 된 것이다.
우리가 찾은 벨렝빵집(Pasteis de Belem)이 그 원조집이라고 한다. 이 가게는 1837에 창업했다고 보도에까지 표시를 하고 있으니 우리가 방문한 지난 해를 기준으로 보면 177년이나 이어온 셈이니 정말 대단한 가게가 아닐 수 없다. 에그 타르트를 사려는 사람들이 가게 밖으로 길게 줄을 서고 있다. 봄씨가 줄을 선 덕분에 우리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에그 타르트를 파는 모습과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에그 타르트를 먹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다들 행복한 표정인 것을 보니 같이 앉아서 먹고 싶지만 봄씨를 기다려야 한다.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막 구워진 에그 타르트가 나오는 모습을 엿보는 행운을 잡았다.
자유시간을 마치고 버스에 탔을 때 봄씨는 하나에 1.05유로나 하는 에그 타르트를 고루 나누어주었다. 행여 놓칠 새라 조심하면서 한 입 베어 물었는데 바삭하게 구워진 타르트에 얹힌 커스타드 크림이 달지 않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별나다는 음식에 그리 감동하지 않는 성격 탓인지 '나쁘지는 않네…'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에그 타르트의 여운을 느끼면서 우리는 리스본을 작별하고 유럽대륙의 서쪽 끝, 카보 다 로카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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