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한해가 지나가고 있지만 올해는 유난히 더 추운 것 같습니다. 매년 그렇지만 올해 의료계는 더욱 우울한 연말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의료일원화 , 한의사들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 의료인 행정처분시효에 관한 의료법 개정뿐 아니라 내년 총선 이후에 논의가 본격화 될 원격의료 등 의료계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일들이 산더밉니다.
조금 더 지켜봐야 겠지만 의료일원화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조짐이 좋지 않습니다. 추무진 회장을 불신임하겠다는 움직임이 이곳저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추무진 회장과는 안면이 오래됐습니다. 수 년간 경기도에서 살을 부대껴 온 만큼 최근 논란은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그의 꼼꼼함과 순수한 마음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불통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현 시점이 아이러니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가감없이 의료일원화에 대한 의협 집행부의 회무에 뼈 있는 조언을 드리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대한의사협회가 추진하고자 하는 의학 교육을 통한 의료일원화의 방안은 장기적으로 보면 옳바른 방안일 수도 있지만 현 시점에서는 중단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첫 단추부터 잘못끼웠습니다. 의협은 의-한 정책협의체에 참여해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막아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자세히 보면 복지부는 언제나 그렇듯 예정된 수순을 밟아왔습니다. 그걸 의협은 유예됐다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요.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논의는 질질 끈다고 국회 발의 법안처럼 자동 폐기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지부는 왜 의협과 한의협이 함께 참여하는 정책협의체를 운용하려 했을까요. 의협이 참여하지 않은 정책협의체를 통해 복지부가 한의사 사용 가능 현대 의료기기 리스트를 발표하기란 심적인 부담이 큽니다.
쉽게말해 복지부 마음대로 의협의 합의나 검증을 얻지 못한 채 퍼주기식 의료기기 허용이라는 모험을 감행하기란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협회가 정책협의체에 참여하면서 잘못 끼운 단추가 더욱 어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복지부로서는 의협이 참여해서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에 합의했다는 핑계거리가 생겼습니다.
반면 의협은 내심 의료일원화 논의로 지금껏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주장을 효과적으로 막았다고 '착각'하고 있을 테지요.
안타깝지만 모든 회무의 판단은 결과론적이어야 합니다. 이는 회무를 집행하는 사람의 숙명과도 같습니다. 어떤 회원도 일만 열심히 하고 성과물을 내놓지 못하는 집행부를 용인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영 여건을 걱정하는 회원들에게 의료일원화는 의약분업만큼 파급력을 가진 밥줄이 걸린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지요.
복지부가 26일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가능 리스트를 공개한다는 설이 파다합니다. 뚜껑이 열렸을 때 의협 집행부는 과연 플랜B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더구나 의료와 한방의료 간 교류를 촉진하고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복지부의 중재안을 보면서 더 이상의 논의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중재안에는 복지부의 의중이 들어있습니다. 의-한 정책협의체로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면 이렇게 길게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복지부는 의료일원화를 들고나온 의협을 보면서 쾌재를 불렀는지 모릅니다. 복지부가 교차진료 확대를 의협에 제안한 건 "어차피 의료일원화를 주장했으니 그럴 바에야 미리 교차진료를 해보는 게 어때"라는 말이 생략된 것이니까요.
의협은 한술 더 떴습니다. 의료일원화의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교육일원화를 들고나온 것이지요. 교육을 받기 전까지는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안된다고 하는 논리입니다.
한의협은 과거부터 의대 교과 과정의 75%를 이미 배우고 있다고 선전해 왔습니다. 안타깝게도 교육일원화의 논리는 한의협의 "교육을 받고 의료기기를 쓰라고? 우리 이미 배웠어"라는 논리 앞에 자유롭지 않습니다.
의료일원화가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막을 근거에서 사용을 위한 근거로 탈바꿈했다는 소리입니다.
의협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을까요? 너무 멀리, 오래 왔습니다.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즉각 복지부 , 한의사협회와의 대화를 중단하고 복지부가 한의사들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한다면 복지부의 행위가 적법한 행위인가에 대해 법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정도는 제언해 드릴 수 있겠네요.
이제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의사는 희생만 감내야하 하는 고귀한 존재가 아닙니다. 의사 역시 노동자라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의료일원화라는 껍데기 논리 싸움은 이제 벗어던시라는 간곡한 제언으로 마지막 말을 갈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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