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얼굴에 반달 모양의 눈웃음. 기자와 마주 앉은 그녀의 표정은 밝고 명랑했다. 자신을 온전히 내보여야 하는 기자와의 만남이라 부담이 클 만도 했지만 그녀는 시종 웃는 얼굴로 담담히 자신의 생을 풀어냈다. 하지만 취재 중 그녀의 얼굴에 스치는 표정에서 그동안의 삶이 녹록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29세 한경희 씨(가명). 그녀는 성인 주의력결핍장애(ADHD) 환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3년 ADHD 치료제 급여인정 연령을 기존 '6~18세'에서 '18세 이상 성인'까지로 확대했다.
하지만 확대된 급여기준에는 함정이 하나 있었다. '18세 이상'까지 급여를 확대했지만 18세 이전, 즉 소아 청소년기에 ADHD 확진을 받고 약제를 투여하던 환자가 18세 이후에도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만 급여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소아청소년기에 ADHD 확진을 받지 못했던 성인 ADHD 환자들은 질환으로 인한 고통에 경제적 부담까지 이중고를 호소하고 있다.
기자는 성인 ADHD 환자들이 겪는 고통을 직접 듣기 위해 환자들과의 접촉을 시도했고 어렵게 한경희 씨와 연락이 닿았다. 그녀는 기자에게 자신이 겪어왔던, 또 겪고 있는 상황과 고통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했다. 단 가명으로.
"어릴 적 내 모습과 꼭 닮은 ADHD 아동, 그제야 알았죠."
경희 씨는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기까지 자신이 ADHD 환자임은 인지하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어요. 한마디로 저는 눈치가 없었어요. 또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이나 엉뚱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따돌림을 많이 받았죠.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거나 버림받을 지도 못한다는 불안을 겪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뿐이라고만 여겼다. 자신이 ADHD 환자임을 알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ADHD 아동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ADHD 아동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 아이의 행동과 말은 어릴 적 내 모습과 무척 닮아 있었어요. 어느날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치료를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 ADHD 체크리스트를 카운터에서 보고 그 아이의 모습과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라 테스트를 했어요. 그 후 의사 선생님이 ADHD 치료제를 처방하면서 내가 ADHD 증상이 있음을 알게 됐어요."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녀가 ADHD 환자임을 모르고 있다. 소아청소년기의 ADHD와 성인에서의 ADHD는 증상 발현이 다르기 때문이다.
"커밍아웃을 하지 않으면 주위에서 내가 ADHD 환자임을 인지하지 못해요. 어릴 때는 과잉행동 위주로 증상이 발현된다면 성인 ADHD는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시간약속을 못 지키는 등의 증상을 보이죠. 특히 내 경우 여성들이나 성인들에게 많이 볼 수 있는 조용한 ADHD형이라 주변에서는 ADHD로 인지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렇다고 자신이 ADHD 환자임을 스스로 알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신경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적 오해와 편견 때문이다.
"주위에 알려도 이해받기 어려운 병이죠.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있을 당시에는 건강상 문제 때문에 주변에 알릴 수밖에 없었어요. 당시 주위의 반응은 '아, 그렇구나' 정도였어요."
그녀는 목이 마른지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ADHD라고 말하면 다들 웃어요. ADHD는 소아청소년에만 국한된 질환이라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ADHD는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병이지만 성인들이 걸리리라고는 생각도 못하는 것 같아요. 그들은 나에 대해 그저 게으르거나 느린 사람 정도로 인식할 뿐이에요. 또한 신경정신 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쉽게 ADHD라고 밝히기 꺼려지는 게 사실이죠."
경희 씨의 나이는 29세. 그녀는 현재 무직이다.
29세의 그녀는 현재 백수다.
"현재는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아요. 물론 직장이 있었죠. 좋아하는 일이었고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그녀가 직장을 그만 두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ADHD 증상 때문이었다.
직장을 다닐 당시는 그녀가 약물치료를 받지 않을 때였다. 업무에서 문제가 많았다. 일단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많이 발생했고, 또 상사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도 자꾸 들었다.
잦은 실수로 인해 일을 망치는 경우도 허다했다. 단순히 적응의 문제라고 여기기엔 너무 많은 삐걱거림으로 나와 동료들 모두 힘들다. 결국 그녀는 스스로 회사를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가 정상적인 삶을 되찾게 된 계기는 ADHD 치료제의 복용이었다. 현재 경희 씨는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약물치료에서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어요. 처음에 복용하던 치료제는 약물 지속효과가 워낙 짧고 감정의 업다운이 심해 얼마 전부터 오래 약효가 지속되는 콘서타를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어요. 부작용 없는 약물은 없겠지만 보조약과 함께 복용하니 부작용이 줄어 효과에 아주 만족하고 있어요."
"ADHD 치료제를 만나고 새 삶 찾았지만 급여기준은 절망적"
약물치료 후 그녀의 삶은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약물치료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치료 후 이뤄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예전에는 책을 읽으려고 하면 페이지가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로 보여 도저히 읽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텍스트가 눈에 쏙쏙 들어와요. 최근 드라마를 공부하는데 글의 구조도 훨씬 명확해졌어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삶이 변했어요."
ADHD 치료제를 복용하고 나아진 삶. 하지만 경희 씨에겐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바로 약값이다. 그녀가 ADHD 확진을 받은 것은 18세가 훨씬 지나서였다. 당연히 보험적용을 받을 수 없다.
그녀는 적정용량보다 조금 적게 처방받고 있다. 그녀의 한 달 약값은 10만원 초반대. 일년 약값은 약 120~150만원 정도다. 진료비까지 감안하면 한 달에 약 20~30만원이 든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평생 약물치료를 해야 하는 ADHD의 질환적 특성을 볼 때 경제적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경희 씨는 현재 직장이 없다. 그녀에 따르면 성인 ADHD환자들은 대부분 증상으로 인해 잦은 이직이나 사회생활 부적응으로 경제활동을 지속하지 못해 형편이 좋지 않다.
"실제 환우카페 내에서 경제적인 사정으로 약물 치료를 지속하지 못하는 분들을 종종 봤어요. 너무 안타까운 일이죠. 사회에서 끌어안고 가야하는 분들인데 이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없어요. 성인이 돼 질환을 확인했다는 이유만으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성인 ADHD 환자는 18세 이전에 확진을 받고 처방한 기록이 있어야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ADHD는 소아청소년 질환이라는 인식과 성인 ADHD가 소아와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쉽게 ADHD라고 병을 진단받기도 어렵다.
"ADHD로 진단받기까지 수년이 걸렸어요. 돌고 돌아 겨우 진단받고 적절한 치료를 받게 되면서 이전과 전혀 다른 새 삶을 살고 있는데, 뒤늦게 진단받았다는 이유로 보험급여 적용이 안 된다니 너무 절망적이에요."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급여 확대 목소리조차 못 내는 현실"
경희 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성인 ADHD 환자들이 경희 씨와 같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급여 확대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숨죽인 채 고통을 참고 있는 상황이다.
"ADHD 환우카페 안에 나와 같은 분들이 정말 많아요. 나라도 나서서 성인 ADHD 급여 확대가 절실하다고 외치고 싶어요. 하지만 신경정신과질환에 대한 편견 때문에 소리내 환자의 권익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없는 이 현실이 너무 슬퍼요."
경희 씨는 국가가 나서서 성인 ADHD 환자들을 보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ADHD는 단순한 주의력결핍의 성향을 보이는 질병이 아니에요. 충동성 조절이나 공감능력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수반하는 발달장애 중 하나에요. 특히, 나와 같이 사회생활을 지속해야 하는 성인 ADHD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아 사회생활을 지속할 때 국가경제에 이바지 할 수 있잖아요.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해요."
ADHD 환자라고 하기엔 무척이나 논리적이고 차분한 그녀의 말. 그녀는 그 역시 ADHD 치료제 덕분이라고 했다.
성인 ADHD 환자로 살아가는 한경희 씨. 취재가 끝났어도 그녀는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무언가를 더 말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인터뷰 내내 밝던 얼굴에 잠시 눈물이 어렸다. 어렵게 꺼낸 그녀의 말은 기자를 향한 것이 아닌 국가와 사회를 향한 호소였다.
"형평성에 어긋나는 제한적 급여기준이 하루 빨리 개정됐으면 좋겠어요. 지금 이 순간도 학교에서 직장에서 지역에서 많은 청장년들이 급여제한으로 인해 효과적인 치료를 맘껏 받지 못하고 있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불안감 잔뜩 묻은 그녀의 목소리가 기자의 발목을 잡았다.
"기사를 보고 주위에서 내가 성인 ADHD 환자임을 몰랐으면 좋겠어요. 꼭 가명으로 처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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