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는 항상 떠날 곳이 있다. 예비 의료인이든, 전공의든, 공보의든, 의료기관 소속이든 누구에게나 그렇다. 직업상 학교에 남는다 해도 배움을 위한 학교는 떠나고 일터로서의 학교를 새로 맞이한다. 때가 되어 떠밀리듯 떠나는 것과 해후(邂逅)를 예견한 준비된 헤어짐은 다르다.
이어령 전 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본인은 불알친구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너무 똑똑해서 젊은 시절 주변의 시샘을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쌓아가는 삶으로 가득할 것 같은 분도 한때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떠남을 경험했을 것이다.
한 대학에서 의대와 간호대 인사제도와 관련해 자문을 한 적이 있다. 조교수급이 희망하는 제도는 부교수나 교수급의 요구사항과 다르다. 특히 퇴직을 앞둔 대학 선생과 이야기할 때면 기관의 제도 개선에서 그치지 않고 개인의 인생 역정이 묻어난다.
A 선생은 평생을 학교에 몸 바쳐 일했는데 대학이 퇴직 교원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보다 평균수명이 늘었는데도 역량 있는 명예교수를 대하는 제도는 예나 지금이나 형편없다고 안타까워했다.
A 선생은 명예교수 요건에 해당되는 분이라 이 정도이지, 요건에 들지 못한 분들 중에는 퇴임하는 교수 모두에게 명예교수 신분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다. 당시 A 선생에게 이렇게 반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5년 전 선생님께서 보직을 맡으셨을 때에도 명예교수 제도 개편의 요구가 있었습니다. 퇴직을 앞둔 선배님들께 대학이 베풀 기회를 만들 수 있었는데 제도의 변화는 없습니다. 퇴직을 1년 남긴 지금 시기적으로 오해를 사실 수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A 선생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좀 더 베풀었어야 했다며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을 남기고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다행히 그해, 그 대학은 명예교수 선정 요건을 더 까다롭게 정하는 대신 지원 제도를 대폭 확대하는 결단을 내렸다.
몇 개월 후 A 선생으로부터 감사의 메일을 받았다. 그러나 대학이 그런 결단을 내리게 된 데는 A 선생 같은 분이 떠남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한몫했고, 학교가 아량을 베풀어 선배를 대우하고 후배를 품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후생가외(後生可畏)’라고 젊고 기력이 좋은 후진들이 학문을 닦으면 훨씬 큰 인물이 될 수 있다며 두렵다는 말을 남겼다. 스타트업을 앞둔 예비 사회인, 예비 의료인이라면 현재 장소를 나서기 전에 좀 더 후배에게 베푸는 것은 어떨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동고동락할 사람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진가는 때론 떠났을 때 더 드러난다. 베푸는 것으로 떠남을 준비하자. 다시 보지 못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한 채 떠나면 마음속 충격을 줄일 수 있다.
준비 없이 떠나면 다음 단계에서 회귀본능만 생길 뿐 현실에 전력을 다할 수 없다. 학은 날아오를 때 둥지를 흩트리지 않는다. 떠난 자리가 깨끗해야 뒤돌아보지 않으며 다시 돌아와도 반갑다.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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