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80시간 근무를 골자로 하는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하 전공의특별법)이 본격 시작됐다.
22일 병원계에 따르면 현장은 분명히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제도가 연착륙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비관론이 팽배했다. 우리나라 의료현장은 전공의가 주80시간을 딱 맞춰서 근무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서울 주요 대학병원은 주80시간 근무 당직표를 일찌감치 짜서 적용하고 있었다.
서울 A대학병원 비뇨기과 2년차 전공의는 "확실히 저년차 업무 부담이 줄고 상대적으로 고년차와 전임의 부담이 늘었다"며 "1년차 당직 횟수가 주 4회에서 주 2회로 줄고 고년차와 전임의 당직이 늘었다. 다음달부터 본격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날 당직을 한 1년차는 다음날 오전은 쉴 수도 있다"며 "그동안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터라 수련 이탈 등의 돌발 상황도 생기고 있는데 과도기적 상황이 아닐까 한다"고 덧붙였다.
비정상적이던 근무 시스템도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서울 B대학병원 외과 전공의는 "1년차 때는 오프라도 집에 못 가고 열흘씩은 꼭 병원에서 숙식을 해야 했는데 법 시행으로 아예 없어졌다"고 말했다.
4년차 전공의가 전문의 시험 준비를 한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시험공부에 돌입하던 문화 역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 C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4년차는 연초 전문의 시험을 위해 9월에는 진료에서 손을 떼고 공부에만 매진하도록 했었다"며 "올해 4년차 전공의는 11월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하러 나간다는 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B대학병원 외과 전공의도 "진료과마다 다른데 4년차한테 다시 들어오라고 한 과도 있고, 기존보다 2주 더 근무하는 과도 있었다"며 "우리과는 10월 말까지 일하고 전문의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데 내년부터는 공부하러 나가는 것도 없앨 거라고 하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병원 따라, 진료과 따라 법 체감도는 천차만별
하지만 주80시간을 지켜보려는 노력을 하는 곳은 대형병원 이야기. 수련병원의 규모와 위치, 전공의 소속 진료과에 따라 전공의특별법에 대한 체감도는 천차만별이었다.
강원도 D대학병원 신경외과 1년차 전공의는 현장의 변화를 전혀 느낄 수 없다고 했다. 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교수님이 내년부터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고는 있지만 누가 환자를 볼 것인가라는 벽에 부딪힌다"며 "교수들도 응급수술이 있으면 시간이 새벽 3시든 4시든 뛰어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전공의 근무 시간을 주80시간으로 제한하면 환자는 누가 보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하루에 환자를 30~40명 보고 있는데 이벤트가 2~3개만 발생해도 혼비백산이 된다. 대형병원은 전공의 한 명당 환자 80~100명을 담당해야 한다고 하더라"라며 "특히 큰 병원은 중환자 위주로 병원이 돌아가는데 오더 내고, 회진하고, 협진하는 등의 현실에서 수련환경이 나아질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A대학병원 비뇨기과 전공의도 "산부인과나 흉부외과는 주80시간 당직표 자체를 만들 생각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인력이 모자라니 고민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의는 칼퇴근하고 펠로우와 젊은 교수들이 업무 과부하에 시달리는 현상이 연출되기도 했다.
충청도 E대학병원 내과 교수는 "전공의는 오후 6시면 칼퇴근을 하고 교수는 수술하고 외래를 보면 그 시간이 훌쩍 넘는다"며 "회진을 혼자서 도는 것은 일상화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환자가 금요일에 입원하면 주말에는 완전히 방치되는 상황"이라며 "당직의는 그냥 이전 오더만 반복 처방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공식적인 80시간 당직표…현실은 다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관론이 나오는 것.
변화가 있다고 하던 B대학병원 외과 전공의도 전공의특별법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시간을 줄이려고 하면 공식적인 당직표 상에서는 얼마든지 80시간 근무를 할 수 있다"며 "병원일 자체가 정시 퇴근이 힘들다. 교수들도 법은 알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고 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외과계열이라면 수술 준비를 해야 하고 행사나 컨퍼런스 준비 등을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간다"며 "오프를 하면 그 빈자리를 다른 사람이 채워야 하는데 인수인계만도 몇 시간이 걸린다"고 털어놨다.
E대학병원 교수도 "병원 입장에서는 저수가 체계에서 사람을 더 뽑지도 못할 것"이라며 "법의 취지는 좋지만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과 사회문화적 측면을 이해 못하고 덜컥 시행됐다"고 꼬집었다.
D대학병원 신경외과 전공의 역시 "결국 환자는 넘쳐나고 의사가 없는 것인데, 병원 차원에서 인력을 추가로 고용하는 것은 재정에 큰 타격이 있으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라며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같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수련병원 지원책을 법제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기동훈 회장은 "국가는 사법연수원을 운영하며 법조인을 교육한다"며 "의료도 법만큼 공공재 역할을 하고 있는데 나라에서 해주는 게 없다. 병원들이 재정 문제를 딛고 제도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정부가 만들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장 수가 신설이나 인상 같은 직접적 지원이 어렵다면 간접적 지원을 고민해볼 수 있다"며 "수련병원에 세제혜택을 주는 방향도 한 방법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국회 공청회나 토론회 등을 통해서 논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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