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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의 슬픈 인사말 "아프지말자, 병원도 못가고 죽는다"

손의식
발행날짜: 2017-05-30 15:48:20

현장취재대이작도 응급환자 이송기 "헬기 못뜨고 해경선도 안 오고" 발만 동동

2017년 4월 22일 오후 7시30분.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에 위치한 대이작도에서 환자가 발생했다. 섬 관광을 왔던 1942년생 장 모 할머니는 복통을 호소하면서 쓰러졌다.

팬션 주인 강 모씨는 섬내 치안센터에 신고하고 후송을 요청했다.

오후 7시 45분. 환자의 상태가 안 좋다고 판단한 팬션 주인 강 모씨는 환자 장 모씨를 치안센터로 이송했다. 당시 치안센터에 따르면 환자는 심한 복통을 호소했다. 또한 환자의 가족에 따르면 환자 장 모씨는 당뇨병을 비롯해 치매증상과 우울증이 있음이 확인됐다.

오후 7시 50분. 섬에서는 인천소방본부 119 특수구조단에 응급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고 헬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119는 대이작도 헬기장에 야간 착륙이 불가해 덕적도로 후송해 달라고 했다.

오후 7시 58분. 섬에서는 대이작도 헬기장에 야간 조명시설이 돼 있어 헬기 착륙이 가능함을 설명하고 헬기를 재요청했으나 여전히 착륙이 어렵다고 하자 해경과 협조해 해경선이라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응급환자를 선착장으로 이동 중인 모습 <사진촬영:메디칼타임즈>
오후 8시 20분. 해경 112에 전화한 결과, 해경선은 못오고 대이작도 인근 자월도에서 행정선이 출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응급환자를 자월도 행정선에 태우는 모습 <사진촬영:메디칼타임즈>
오후 9시 5분. 자월도 행정선이 대이작도에 도착해 응급환자 장 모씨를 덕적도로 후송을 시작했다.

오후 10시 경. 응급환자가 덕적도에 도착해 119 헬기로 인하대병원으로 후송을 시작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상은 메디칼타임즈가 대이작도에서 발생한 응급환자 발생과 후송에 대한 모든 과정을 직접 확인하고 정리한 것이다.

결국 고령의 응급환자 장 모씨는 증상 발생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배로 후송을 시작했다.

"응급환자 이송 위해 만든 헬기장, 야간엔 무용지물"

여기서 몇가지 의문이 생긴다.

지난 2011년 보도에 따르면 인천시 옹진군은 섬 응급환자를 후송하는 닥터헬기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9억 8000만원을 들여 덕적도, 지도 대이작도. 소이작도 등 4개 섬에 헬기착륙장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실제 대이작도 등에는 헬기장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왜 119 헬기는 야간에 대이작도 헬기장에 착륙할 수 없었을까.

메디칼타임즈는 인천소방본부 119 특수구조단을 통해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인천소방본부 119 특수구조단 관계자는 "야간에 헬기를 운항하기 위해선 야간 투시경(NVG. Night Vision Goggle)을 착용한다. NVG의 원리는 빛을 증폭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착용하면 작은 빛이라도 있으면 환하게 보인다"며 "이런 이유로 헬기장 항공 등화장치는 빛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기준에 따른 광도(칸델라. cd)에 맞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야간 헬기장의 경우 단순히 조명이 밝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기준 이상으로 밝을 경우 마치 야간에 운전할 경우 맞은 편 차가 상향등을 켠 것과 같이 보이기 때문에 착륙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항공등화 설치 및 기술기준'에 따르면 양각별 최대 광도가 정해져 있으며, 무엇보다 '조종사 및 관제사에게 눈부심을 발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특수구조단 관계자는 "인천권 섬에는 기준에 맞는 광도로 조명이 설치된 착륙장이 몇군데 있는데 그중 한군데가 덕적도이다"라며 "대이작도는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고 일반적인 조명을 설치했다. 그래서 덕적도로 환자 이송을 유도한 것이다"고 말했다.

헬기 이송이 최선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자월도에서 배가 떠서 대이작도를 경유해 덕적도까지 간 후 인하대병원까지 한시간이면 충분하다"며 "반면 항공기를 꺼내고 준비해서 이동하는데도 한시간을 봐야 하는데 어떤 게 안전한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야간에는 항공기 운항이 위험하다"며 "왜 헬기가 안오지 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어떤 것이 환자를 위해 빠르고 안전한 것인지 도서주민에게 이해시킬 필요 있다"고 덧붙였다.

인천시 옹진군청 "헬기장이 많이 밝던가요?"

취재 결과, 대이작도 헬기장을 신설한 인천시 옹진군청은 '항공등화 설치 및 기술기준' 내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이작도 헬기착륙장 야간 조명 <사진촬영:메디칼타임즈>
옹진군청 안전관리팀 관계자는 "광도라는 것은 솔직히 확인하진 않았고 헬기장에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조명을 넣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대이작도 헬기장 조명이) 많이 밝던가요? (헬기에서)야간에 쓰는 안경같은 것이 있나 보네요"라고 메디칼타임즈에 반문했다.

메디칼타임즈가 제시한 문제점에 대해 옹진군청은 "현재 조명의 광도 조절은 안되고 전구가 나갔을 경우 유지보수 차원에서 교체하고 있다"며 "(헬기장 조명을)세기가 약한 것으로 교체해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해경의 두말 "섬에 접안할 수 없었다…가 아니라 더 빠른 이송 위해 다른 배 보낸 것"

또 한가지 의문점. 대이작도에서는 해경에 응급환자 이송을 위해 해경선을 요청했다. 그러나 환자 발생 1시간 30분 후 섬에 도착한 배는 해경선이 아닌 인근 자월도의 행정선이었다. 해경선을 왜 대이작도에 오지 못했을까.

메디칼타임즈는 인천해양경비안전서에 그 이유를 확인했다.

인천해양경비안전서 관계자는 "당시 상황실에서 근무했던 직원에 따르면 경비정의 이작도 접안이 불가했다. 물때 등 접안 여건이 안 맞는 상황이었다고 한다"며 "자월도에 행정선이 있어서 그 배를 이용해서 환자를 덕적도로 이송한 것이다. 육상에서 해상상황을 모르고 급한 마음에 불만을 가질 수 있겠지만 접안불가한 곳에 배를 투입할 수는 없다. 다른 이송 수단을 이용하는 상황도 체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경비정을 섬에 댈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잠시 후 인천해양경비안전서는 메디칼타임즈에 전화를 걸어 말을 바꿨다.

인천해양경비안전서 관계자는 "말씀드린 내용에 수정할 것이 있다"며 "환자 발생 당일 간조(바다에서 조수가 빠져나가 해수면이 가장 낮아진 상태)가 20시 19분이었고 119 연락을 받은 게 20시 14분인데 (간조라서)100톤급 경비정이 수심이 확보되는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경비정 위치에서 대이작도까지 1시간이 넘는 거리지만 지시를 내려서 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자월도 행정선으로 이동할 때와 비교하니 행정선이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며 "이런 이유로 자월도 면사무소에 행정선을 요청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자월도 행정선이 대이작도에 도착해 환자를 싣고 덕적도까지 가는데 1시간 40분 걸렸는데, 경비정으로 이동할 때보다 신속했다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embed/5o9g7JpWjnA


섬주민들 "아프지 말자, 아프면 병원도 못가고 죽는다"

대이작도 주민들은 해경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이작도 이장 김유호 씨는 메디칼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자월도 행정선은 상당히 느리다. 자월도에서 대이작도까지 오는데 25분 정도 걸리고 대이작도에서 덕적도까지 가는데 기본 30분을 봐야 한다. 덕적도에서 또 헬기장으로 이동하는 시간도 있지 않냐"며 "그럴 바엔 해경선이 영흥도까지 가면 40분이면 된다. 왜 해경이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민 강 모씨는 "119와 해경은 나름의 이유를 설명하지만 주민 입장에선 핑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자신들의 가족이 그런 상황이 되도 같은 이유를 댈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경비정이 대이작도 접안이 불가능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며 "간조 때에도 수백톤의 여객선이 선착장에 배를 대고, 실제로 풍랑주의보를 피해 경비정이 대이작도에 접안했던 적도 있다. 간조와 상관없이 충분히 배를 댈 수 있는 여건이 돼 있다"고 주장했다.

환자 이송을 위한 배 도착을 기다리는 대이작도 자율방범대원 <사진촬영:메디칼타임즈>
대이작도 주민들은 이번 사건을 겪은 후 상당한 공포감이 생겼다. 환자 발생 후 병원 도착까지 3시간 가까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아플 수 조차 없다는 것이다.

강 모씨는 "섬 환자중 중증환자는 대부분 헬기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복통환자라서 다행이지 심장이나 뇌 쪽에 문제가 있었으면 이송은 고사하고 기다리다 죽었을 것"이라며 "이번 사건 이후 섬 주민들 사이에선 서로 아프지 말자는 말이 인사처럼 되고 있다. 가슴 아픈 현실이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닥터헬기를 이용하는 환자 열명중 아홉명 가까이는 도서 지역 환자였으며 환자 두명중 한명은 중증환자였다.

가천대 길병원이 국내 최초로 도입해 운영을 개시한 인천 닥터헬기를 통해 2011년 9월부터 2015년 5월말까지 이송된 전체 환자의 88.8%가 도서 지역 환자였으며, 환자 2명 중 1명은 중증외상 또는 뇌혈관질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응급의료 정책, 의료 전문가 목소리 창구 막혀 있어"

대이작도의 환자이송 문제를 두고 응급의료 전문가들은 시스템을 문제로 지목했다.

부산대병원 응급의료과 조석주 교수(한국항공응급의료협회 무임소이사)는 "그 지역의 응급의료체계의 문제는 그 지역의 사람들이 대책을 고민해야 하고 행정에 반영돼야 한다"며 "그리고 그것을 책임질 사람은 시장이고 군수지만 지금은 그런 통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앙에서 쥐고 있는 정책의 총론은 지역적인 세밀한 정책에는 관심을 못 두고 있다"며 "지역 의사들이 행정과 접촉해 실현할 수 있는 체계 자체가 없다. 의사들이 응급의료의 패러다임을 설정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데 그 길이 막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서지역의 야간 응급환자 이송을 위한 인프라 구축도 필요하다고 봤다.

조석주 교수는 "야간에 응급환자를 이송할 수 있는 체계를 섬에 만들어야 한다"며 "중앙응급의료센터와 이야기 해보면 각 지역에 헬기장을 설치하자는 논의가 있는데 야간 운용기준과 장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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