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보건소장들이 인권위원회의 의사 우선채용 법 개정 권고안에 문제점을 강도높게 지적하고 나섰다.
대한공공의학회 김혜경 이사장(의사, 수원 장안구보건소장)은 29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역보건법 시행령 개정 권고는 국민 건강권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인권위원회는 지난 5월 "보건소장 임용 시 보건관련 전문인력에 비해 의사를 우선 임용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없이 특정 직종을 우대하는 차별행위로 판단된다"며 지역보건법 시행령(제13조 제1항) 개정을 복지부에 권고했다.
의사 출신 보건소장들이 급하게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 브리핑 이후 복지부 달라진 움직임을 경계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복지부는 2006년 이어 올해 인권위원회 권고안에 사실상 불수용 입장을 보였으나, 청와대의 인권위원회 권고 수용률을 기관장 평가 항목에 도입한다는 발표 이후 적극 검토로 입장을 선회했다.
김혜경 이사장은 "비의사로 보건학을 전공했거나 보건사업 종사 경력이 있는 자를 보건소장에 임용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인권위원회 결정문은 면허 종별 역할 등 전문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이 검토됐다"며 전면적인 재검토를 촉구했다.
공공의학회·지보위, 청와대·인권위·복지부에 반대 의견서 전달
공공의학회는 지역보건의료발전을 위한 모임(이하 지보위, 회장 하현성, 의사, 은평구보건소장)과 함께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청와대와 인권위원회,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및 복지부에 전달한 상태이다.
김 이사장은 "보건소는 일반 행정기관이 아니다"라고 전제하고 "보건소장 자격은 국민 건강보호와 증진이라는 책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책적으로 결정할 사항이지 단순히 국민 평등권이나 특정 직역 승진기회 부여 사항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6년 현재, 전국 보건소 252곳 중 의사 출신 보건소장은 103명(40.8%)이며, 의료기사 81명(32.1%), 행정직 공무원 48명(19.0%), 간호사(간호조무사) 18명(7.1%), 약사 2명(0.8%) 등이다.
현 지역보건법에 명시된 보건소장 임용 시 의사 우선 채용 조항에도 불구하고 전국 보건소 절반 미만이 비의사로 채워진 셈이다.
김혜경 이사장은 "보건소장은 보건정책 개발을 위한 의학 지식과 공중보건위기 대응 그리고 조직관리 등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보건학과 일반 행정직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나 의학적 역량이 부족하다"면서 "임상적 경험이 있는 의사가 가장 적합하다. 일본의 경우, 보건소장에 의사를 당연직으로 채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 이후 의사 출신 보건소장을 바라보는 지자체 달라진 인식을 설명했다.
그는 "메르스 사태 이후 신종 감염병 대비 의사 출신 보건소장 필요성이 급부상하고 있으며, 지자체장 분위기도 확 바뀌었다. 경기도 시군별 앞 다퉈 의사 출신 보건소장을 임용하고 한다"고 현실과 동떨어진 인권위원회 결정을 꼬집었다.
메르스 사태 후 의사 보건소장 부각…"국정자문위에 공중보건연수원 신설 제안"
보건소장을 외면하는 의료계 자성과 더불어 보건소 시스템 문제점도 지적했다.
김혜경 이사장은 "의사들의 보건소 인식 고취를 위해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예방의학과 공중보건학 등 공공의료 강의를 확대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의사를 당연직으로 채용하면서 3년 이상 실무경험과 훈련과정 수료 등 자격을 강화했다"면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의견서에 보건소장과 전문 직종 역량 강화를 위한 공중보건연수원 신설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보건소 관리의사는 열악한 보수와 함께 5년 계약직으로 신분이 불안정해 60~70대 의사들로 채워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명목상 정규직인 관리의사를 의무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석한 하현성 지보위 회장도 "그나마 지역보건법에 의사 우선채용 조항이 명시돼 지자체장들이 보건소장 임용 시 한 번 더 생각한다. 이 조항마저 개정되면 지자체장들이 마음이 드는 행정직을 승진시키는 사례가 빈번해질 것"이라면서 "새정부가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표방한 만큼 의사 자격에 부합한 보건소장 역할을 이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김혜경 이사장은 "의사 출신 보건소장 우선 채용은 직역 이기주의가 아니다, 20년 이상 근무한 의사 보건소장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국민 건강권을 최우선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인권위원회 결정문 재검토를 재차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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