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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왜 환자는 의사를 만나기가 어려울까

김규성
발행날짜: 2019-04-02 06:00:30

김규성 대한전공의협의회 정책이사



왜 환자는 의사를 만나기가 어려울까.

지인의 가족이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고 한다. 만나려고 할 때마다 ‘다른 환자를 보고 있다’ ‘응급실에있다’ ‘수술방에 있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통해서라도 이야기를 들어보려 했지만, 중환자병동 간호사를 통해서만 연결할 수 있는 시스템에 속이 터져버릴 것 같다고 했다. 지인이 물었다. 정말 주치의들은 이렇게 바쁜 거냐고. 그래서 대답했다. 안타깝지만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바쁠 거라고.

얼마 전, 인천 소재 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선생님이 사망했다. 한참 주치의 업무를 도맡아 하는 저(低)년차 전공의 선생님이었다. 언론 보도를 보면, 근무시간이 주당 평균 100시간이 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병원 측 추정으로도 최소 주당 80시간 가까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망 전날에는 제대로 된 수면시간 없이 연속 36시간의 당직 근무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당 52시간이 제한인 일반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근무형태다. 이것은 비단 전공의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윤한덕 선생님도 지난 달 과로로 순직했다. 설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센터장으로서 일터를 지키다가 돌아가신 것으로 알려져 더욱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간호사의 3교대 근무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목소리가 많다. 야간 근무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임신까지도 순번을 매겨서 해야 한다는 보도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전공의들에게는 이러한 3교대 근무마저도 꿈같은 일이다. 전공의 근무를 3교대 혹은 2교대 수준으로라도 운영해보자는 논의에 전공의 내부에서조차 실현이 힘들지 않겠냐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임신과 출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의사도 누군가의 딸이고 엄마이길 원한다. 그러나 임신한 전공의들은 때론 배가 불러오기 전까지 본인의 임신을 숨겨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저출산 대책을 위해 출범한 정부기관 조차, 임신 전공의의 모성보호 문제에는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에서, 환자-의사 간 소통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바로 전공의의 ‘열악한 근무환경’이다. 주치의로서 맡아야 하는 '과도한 업무량'은 결국 그들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소진(Burn-out)시킨다.

매번 자신이 돌보던 환자의 죽음에 마주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감정적으로 지치고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감정을 숨기거나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새로운 환자를 다시 만나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하며, 끊임없는 '감정노동'에 시달린다.

과로에 시달리는 전공의는 환자를 직접 만나는 데에 제대로 시간을 할애할 수 없을 뿐더러, 불친절해지거나 심지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전공의의 과로는 환자와의 소통은 물론 환자의 안전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어느 누구도 며칠 잠을 못자고 수술 도중 꾸벅꾸벅 조는 전공의에게 수술 받길 바라지 않겠지만, 현실과 바람은 때론 너무 다르다.

그럼에도 대형병원에서는 누구도 전공의의 과도한 업무를 나누거나 대신하려는 직역이 없다. 그러면 그 많던 의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경우마다 다르겠지만, 강남에 새로 오픈한 성형외과나 피부과가 넘쳐나는 통에 채 1년을 버티지 못한다고 한다. 이른바 미용 진료와 같은 보험 외(外) 진료로 의사들이 내몰리는 것이다. 물론 성형외과와 피부과의 미용 진료가 모두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미용 진료도 환자의 수요가 있는 만큼 충분히 가치를 인정 받을 만하다.

문제는 산부인과나 흉부외과와 같이 이른바 '비인기과'의 전문의들이 전공의 때 배운 본업에 안정적으로 종사하지 못하고, 원치 않게 미용 진료로 내몰리는 현실이다. 한쪽은 의사가 부족한데, 다른 한쪽은 의사가 넘쳐서 망하고 있다.

여기 의료계에서는, 나름의 고민 끝에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바로 '입원전담의사' 제도다. '호스피탈리스트'라고도 불리는 입원전담의사 제도는 말 그대로 입원한 환자를 전담하여 보는 의사를 별도로 병원에 고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 이 제도는 세부적인 면에서 보완이 필요하다. 또 다시 '전공의 5년차'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에 입원전담의사의 지원을 꺼리지 않도록 합리적으로 업무 강도를 설정하되, 현재 전공의의 업무를 실질적으로 분담하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제도의 확대와 안착을 위해, 가능하면 정규직과 같은 안정적인 고용 신분을 보장하여, 그들이 다시 보험 외(外) 진료로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문제는 입원전담의사를 병원에서 안정적으로 고용하고 제도를 지속가능하게 발전시킬 재원이다.

성공한 입원전담의사 제도는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의료서비스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뿐만 아니라, 환자의 안전에도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가의 재원은 무엇보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우선적으로 쓰여야 한다. 안전하게 치료받을 환자의 권리를 위해, 입원전담의사 제도를 정착시킬 진일보한 논의와 재원 마련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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