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의학'은 일선의 의료인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급여에 대한 기준이나 지침 그리고 심사 조정되는 사안들의 사유 등에 대해 비난하는 말로 이해하고 있다. 10여년 전에 유수 대학병원 건물에 교과서적인 진료를 보장해달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불만을 토로한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교과서적 진료를 보장하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없다. 심사의 수준을 현실화해 나가고 있는 결과일 텐데, 이런 심평원의 변화는 아무런 평가를 못 받고 있다. 기준을 설정하는 위원회에서는 일부 의제에 대해 임상시험을 통한 근거가 더 축적돼야 할 항목도 급여 기준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전문가들을 드물지 않게 접한다.
지금은 오히려 심평원이 의료인들에게 '제발 교과서적인 진료를 해주세요'라고 할 판이다. 청구한 모든 내역을 심사조정 없이 다 인정하고 아무 기준 없이 행한 대로 보상하면 심평원이 이런 이야길 들을 일은 없다. 그런데 행위별수가제를 쓰고 있는 한 어떤 형태이든 기준과 심사의 지침이 없을 순 없다는 것을 모두 인정할 것이다.
그럼 문제는 어디까지가 적정한 진료이고 어디까지가 과한 진료 혹은 부족한 진료일까. 그 판단 기준은 어떻게 정해야 할까. 상당 기간 전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위장관계 폴립절제술' 기준에 대해 일부 학회에서 강한 항의가 있어 회의를 한 적이 있다. 당시 해당 학회 대표로 오신 분이 주장한 내용을 상당부분 반영하여 기준을 개정 했는데 다음날 그 해당 학회에서 강력한 항의가 들어왔다. 도대체 누가 이런 기준을 만들었냐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기준을 만들어도 다른 전문가들이 동의하지 않는 일들은 왕왕 접하는 일이다. 2007년 이후 근거기반의사결정 체계를 도입한 것도 그런 사유에서였다. 근거와 의학적 표준에 따라 전문가들의 주관적 관점이 근거에 의하여 균형적으로 의사결정 하도록 회의 자료 작성의 표준화를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의사결정을 할 것인가'에 대한 'how'의 정의는 부족했다. 어떤 판단 기준으로 어떻게 의사 결정할지에 대한 구체적 판단 잣대가 아직 공유된 것이 부족하다 보니 공들여 전문가들이 모여 진지하게 기준을 만들어도 몇 일 후 항의의 목소리가 들려오곤 한다.
건강보험법 체계하에서 급여대상을 정하는 원칙은 의학적 타당성, 의료적 중대성, 치료효과성, 비용효과성, 환자의 비용부담 정도, 사회적 편익을 고려해 복지부장관이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요양기관에서 급여대상 환자들을 진료할 때 요구하는 원칙은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 최적의 방법으로 진료 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야 하며 약제, 치료재료의 경우는 식약처 허가사항 내, 그 외는 고시‧공고에 따른 범위 내에서 진료해야 한다. 임상연구 성격은 인정하지 않으며, 영양공급·안정·운동 그 밖에 요양상 주의를 함으로써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의약품을 처방·투여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를 하고 있고 이는 심사의 원칙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 최적의 방법으로 진료 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라는 것을 구체적 사안에서 결정할 때 어떻게 해석하고 정해야 할까. 전문가들마다 그 판단 기준이 달라 어떤 전문가는 의학적으로 적절하지 않다 하나 어떤 전문가들은 정반대의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공적 보험 체계에서는 이에 대한 판단의 척도가 분명히 제시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공적 의료보장 제도인 메디케어에서는 급여보장의 원칙으로 '의학적으로 필요하고(necessary) 의학적으로 적절한(reasonable)'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이러한 원칙은 사보험에게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 말들조차 모호해 각론에 들어가서는 역시 많은 논쟁을 낳게 된다. 이러한 혼돈을 줄이기 위해 스탠포드의 사라박사는 신의료기술의 경우는 과학적 근거를 따르고, 기존 의료는 최대한 과학적 근거를 따르되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 의학적 표준을 따르고, 이로도 결론을 얻지 못할 때는 신뢰할 만한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도록 권고했다.
이러한 정의가 적절하게 느껴져 미국의 여러 주에서 법으로 '의학적으로 필요하고 의학적으로 적절한' 정의를 채택하게 됐다. 이러한 정의가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 최적의 방법으로 진료 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설명할 좋은 정의로 채택해도 좋을 것이며, 2006년 신의료기술평가제도 도입과정을 포함한 많은 전문가들과 공개적 토론에서 이 정의를 제시했을 때 부정하는 전문가들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여기서 과학적 근거란 근거기반의학에서 말하는 과학적 근거를 말하는 것이며 이를 평가하는 체계는 이제 국제적으로 너무나도 정형화 돼 잘 알려져 있으므로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무작위대조군임상시험을 통해 양질의 수많은 근거들이 생성되고 있으나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어가는 이러한 연구들이 의학적 판단을 요하는 모든 상황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오랜 기간 의사들이 사용하며 알게 되고 경험하게 된 결과들이 학술대회의 교류와 전문가들의 문헌 게재를 통해 산출되는 지식들이 있는데 이를 'practice-based evidence generation'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러한 내용들은 앞서 기술한 의학적 기준들과 합해 그 시대 그 시점에서 의학적 표준으로 자리잡게 된다. 의학적 표준은 교과서, 임상진료지침, 종설 등의 형태로 발간된다. 따라서 과학적 근거에 따라 결정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이러한 자료들을 고찰해 일관성 있게 지지되는 의학적 표준을 판단의 근거로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체계도 어떻게 의사결정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과정과 절차와 방법을 엄밀히 하고 명문화함으로써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고, 강한 이해당사자들의 목소리나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음으로 일관성 있는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엄밀한 평가 자료,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 그리고 일관성을 갖춤으로 이제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그래요 '심평의학' 제대로 한번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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