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해외에서의 신약 개발의 경우 1차, 2차 목표를 설정한다. 1차로 설정한 목표에서 위약 대비 효과가 나타나면 이를 임상 성공으로 표현한다. 2차 지표에서 효과가 나타나도 1차 목표에서 효과 입증에 실패하면 이를 실패로 표현한다. 말 그대로 2차는 보조 지표이고 1차 목표는 약의 존재 의의(primary endpoint)를 나타내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최근 셀트리온이 개발한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주가 허가 심사 막바지 절차에 들어가면서 논란이 뜨겁다. 셀트리온이 지표로 설정한 1차 목표로 설정한 지표는 바이러스의 양성→음전 기간이었다. 2차 목표는 경증·중등증 환자가 중증으로 악화되는 비율이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렉키로나주는 1차 목표값에서 실패했다. 바이러스 검사 결과 양성에서 음성으로 전환되는 시간, 즉 바이러스 음전소요 시간이 투약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 간에 유의미한 차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증 및 중등증 환자가 입원치료를 필요로 하는 중증으로 발전하는 발생률에서는 렉키로나주 확정용량(40㎎/㎏) 기준으로 위약군과 비교 시 전체 환자에서 54%, 50세 이상 중등증 환자군에서 68% 감소했다.
코로나19 증상에서 회복될 때까지의 시간을 보면 이 약을 투여받은 환자는 위약군 대비 약 3.43일 정도 빨리 증상으로부터 회복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만 유효성을 확인한 영역은 보조 지표에 불과하다.
게다가 300명에 불과한 임상 환자 수를 감안하면 이같은 차이가 실제 약의 효과인지, 아니면 분류된 환자간 개인차에서 발생한 변수인지도 확인하기 어렵다.
이와 유사한 결과가 다른 항체치료제에서도 나타났다. 리제네론사 REGN-COV2는 투약 7일째 체내 바이러스의 양 감소 시간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일라이 릴리사 LY-CoV555도 양성 판정 이후 11일째까지의 바이러스 양 감소일 변화에서 2800mg 용량 투약군은 고작 -0.53일 감소한 반면 700mg 투약군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물론 이런 약들의 사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FDA도 두 항체치료제의 긴급사용을 승인한 이력이 있다.
항체치료제의 효과 및 승인 여부를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리는 것도 무엇에 더 중점을 둬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판단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적절한 치료제가 없는 마당에 일부 효과만이라도 확인됐다면 굳이 렉키로나주의 사용을 막아야 할 명분이 더 궁색해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차이는 있다. 해외에서는 허가가 아닌 사용의 승인이었다.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건 (조건부) 품목 허가다. 1차 지표 설정에 실패한 약이 조건부 허가되는 건 '국산 1호 코로나19 치료제' 확보라는 타이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긴 힘들다.
결국 품목 허가 취소로 막을 내린 인보사케이주도 '세계 최초 유전자치료제'라는 타이틀에 눈이 먼 속도전이 조건부 허가 제도와 만나 일어난 사례다. 인보사는 조건부 허가될 만큼의 연골 재생에서 유효성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통증 완화라는 보조 지표만으로 조건부 허가된 바 있다.
우려하는 점은 하나다. 현재 대기중인 국산 코로나19 치료제만 29개에 달한다. 셀트리온 렉키로나주가 보조 지표를 통해 조건부 허가된다면 앞으로 다양한 치료제들 역시 '일부 효과'만으로 무더기 허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전례'가 있는 마당에 "우리 약은 왜 안되냐?"는 형평성 논리 앞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무더기 조건부 허가가 현실화될 경우 국산 신약에 대한 신뢰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조건부 허가 이후 3상을 통해 실제 효과 입증에 실패할 경우 천문학적인 임상 비용이 공중분해되는 것은 물론 무더기 허가 취소가 불가피하다. 임상 2상에서의 일부 효과 입증보다 3상에서의 완전한 효과 입증은 당연히 더 어려운 과제다.
렉키로나주와 관련해 1차 검증 자문단, 2차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의 품목 허가 권고가 나왔다. 이제 공은 식약처에게 넘어갔다. 이번주 렉키로나주의 최종 허가 여부가 나올 전망이다. 렉키로나주를 비롯한 다양한 국산 치료제가 식약처의 또다른 흑역사로 남을지, 신의 한수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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