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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와 연명의료 사이에서 현장의 딜레마

정진형 전공의
발행날짜: 2022-05-02 05:30:00

정진형 전공의(고려대 안암병원 내과)

내과 전공의로 근무하면서 환자 상태가 악화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보호자에게 연락해 소위 "어디까지 치료할 것인지" 물어보는 일이었다.

환자가 평소 연명의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보호자 의지는 어떠한지, 인공호흡기나 승압제, CRRT(지속적 신대체요법), ECMO(체외생명유지술) 들이 연명치료고 각각이 어떤 치료이고 어떤 영향을 주는지, 예후는 어떠한지 설명한다. 이런 치료를 할 경우 중환자실 입실이 필요함을 설명하고 치료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다.

대학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들인지라 중증도가 높은 분들이 많고, 중환자실 자리뿐 아니라 방금 언급한 치료를 위한 장비들 또한 늘 부족한 실정으로 그마저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말이다.

코로나 중환자실 주치의를 하면서 코로나 폐렴이 호전 추세를 보이다가 정말 갑작스럽게 환자 상태가 악화돼 하루나 이틀 안에 사망하는 경우를 상당히 보았다. 멀쩡하게 호전되어 내일 퇴원할 준비를 하다가 한순간에 의식이 떨어지거나 산소 수치가 떨어져 인공호흡기를 달고 승압제를 최대한 쓰고 다음날 사망하는 경우가 심하면 매일 일어났다. 언제나 죽음의 순간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사람은 죽음을 미리 생각해야 한다. 죽음 직전의 순간뿐 아니라,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언제든지, 인생의 마지막은 죽음이다. 사람이 젊을 때는 편안한 노후와 미래를 생각하고 늙어서는 좋은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듯이, 죽음 또한 그 고려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연명의료 결정제도라는 것이 있다. 사전에 본인이 악화되었을 경우 어디까지 연명치료를 할지 결정해두는 것이다. 실제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사전에 작성하는 서류임으로 본인 스스로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직접 결정을 하는 것이다.

이 제도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두 번의 큰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으로 인공호흡기를 떼면 사망할 것이 분명한 환자를 보호자의 강력한 요구로 각서를 쓰고 퇴원시켰으나 환자는 당연히 5분 뒤 사망했다. 이에 의료진에게 살인죄 및 살인방조죄가 적용됐다.

이 사건은 아직도 의료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살아날 가능성이 없어도 환자의 가망없는 퇴원을 보낼 시 살인죄가 적용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의사들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김할머니 사건으로, 평소 환자가 연명치료 거부의사를 지속적으로 밝혔으며 가족의 요청으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연명의료 중단을 인정한 경우다. 이 사건 이후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중단할 수 있는 연명의료 시술에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압 상승제, 체외생명유지술 등이 있다.

하지만 2018년 법이 개정되면서 연명치료 중 어떤 것은 하고 어떤 것을 하지 않을지는 미리 정할 수 없고 의료진 판단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결국 본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이 오게 된다면 의료진의 판단하에 모든 연명치료를 다 진행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 순간에도 보호자와 상의하게 될 것이고 환자의 의사와는 다르게 보호자의 뜻에 따라 치료를 진행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또한, 갑자기 환자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보호자가 연락이 되지 않거나 급박한 상황에서 일단 시작해둔 연명의료 치료들을 중단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든 치료가 시작은 쉬워도 중단하기는 참 어렵다.

연명의료는 가능한 한 중단되어야 한다. 물론 환자분이 연명의료를 진행했을 때 의식이 있고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진행하는 것이 옳다. 예를 들어 연명치료에 수혈이나 투석도 포함되는데 최근에는 의학기술의 발달로 투석만 주 3회 다니면 나머지 시간에는 직장을 다니는 등 일상생활을 영유하는 분도 많고, 갑작스럽게 피를 토하는 경우 내시경적 치료 및 수혈을 하고 호전되어 이후에는 문제없이 생활하는 분도 많다. 그런 수혈이나 투석이 현재 연명의료 항목에 포함되어 있지만 그런 치료는 단순히 목숨을 '연명'하기 위한 연명의료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죽음의 경계선에서 연명치료는 다른 문제다. 환자와 보호자의 뜻과 의료진의 뜻이 다른일이 생기면 연명의료를 진행해서 얻는 결과는 누구 책임으로 남을 것일지, 그리고 연명의료 이후에도 상태가 악화되어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것이 과연 최선의 죽음일지에는 의문이다. 연명의료와 무관하게, 한 사람의 의사로서 치료할 수 있는 분은 최선의 치료를 하겠지만 죽음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최선의 죽음을 제공하는 것 또한 의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폐렴이 악화되어 고유량 산소치료(Optiflow)를 최대로 유지하는 환자가 있었다. 고유량 산소치료를 최대치로 유지하면 의학적으로는 인공호흡기로 바꾸는 것을 당연히 고려해야만 한다. 환자분은 고유량 산소치료 중 의식이 명료하였지만, 보호자와 면담 후 인공호흡기를 유지하는 쪽으로 결정되어 환자분께 진정제를 드리고 주무시게 만든 후 기관삽관 후 인공호흡기를 달았으나, 결국 사망할 때까지 의식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맞이한 죽음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심장기능도 아주 떨어져 심부전이 진행한 환자분 중 심장이 뛰지 않아 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던 분이 있다. 역시 기관삽관 및 인공호흡기를 달고, ECMO로 기계를 통해 심장 대신 피를 순환시키도록 한 적이 있다. 그 환자분은 중환자실 처치가 필요하였고, 하루에 중환자실 비용 및 ECMO 유지비용이 100만원 이상 나가던 분이었다. 정확한 상황은 알지 못하나, 그 보호자분은 이후 병원비 때문에 전셋집을 팔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환자분의 죽음은 절대 최선이 아니었을 것이다.

ILD(간질성 폐질환)가 악화되어 돌아가실 때까지 호흡곤란을 호소하던 분이 있었다. 그 환자분은 마지막까지 호흡곤란으로 힘들어하시다 돌아가셨다. 연명치료는 하지 않기로 기존에 결정되었던 분으로 최대한 고통을 덜어드리려는 치료를 했지만 호전은 없었고, 그렇게 고통스럽게 맞이한 죽음은 절대 최선은 아니었을 것이다. 회진 때마다 보호자는 환자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고, 매일 "언제 돌아가실까요?"라는 질문만 했을 정도였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고통을 더 느끼시지 않을 때 여생을 정리하고 일찍 보내드리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환자분들이 좋은 경과가 예상되지 않는다면 정말로 최선의 죽음을 제공해드리고 싶다. 자신의 삶에 감사하며 이웃들에게 감사와 사랑의 말을 전하며 떠나는 죽음은 아름답지 않은가. 그런 죽음을 겪을 수 있다면 그 누구라도 하고 싶을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죽을 때는 남은 사람들에게 그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이 조금이라도 좋은 흔적으로 남는다면 좋지 않을까.

그런 죽음을 위해서는 그 최적의 타이밍을 결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결국, 연명의료의 중단 시점을 잘 결정하는 것, 그리고 필요하다면 적극적 안락사가 그 방법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안락사라는 것이다. 연명치료 중단은 소극적 안락사다. 환자가 악화될 것을 알지만 적극적으로 'Do harm'을 하지는 않는 선에서 통증 등 증상 조절을 하면서 지켜보는 것이다.

안락사. 말 그대로 안락한 죽음이다. 누구라도 원하는 안락한 죽음이다.

이미 연명치료 중단, 즉 소극적 안락사는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처음에 이야기했듯, 환자가 악화되면 연명치료를 할지, 하지 않을지부터 환자 및 보호자와 상의하는 만큼 우리 사회는 소극적 안락사에는 꽤나 관대해졌다.

연명의료 결정제도는 말 그대로 본인의 연명의료는 본인이 결정하는 제도가 되어야 한다. 먼저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 어느 정도 치료까지 본인이 원해서 받을 것인지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어야 하겠으며, 이를 위해서는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시 구체적인 치료 여부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하겠다.

현재도 그렇듯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본인이 언제든지 철회 또는 수정할 수 있으므로, 혹시라도 건강상태가 바뀐다면 그때 수정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되는 것이 좋겠다. 또한, 본인의 마지막 순간은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멀쩡한 사람이 자살을 원한다고 안락사를 시켜주자는 말이 아니다. 환자와 보호자, 의사가 다방면으로 상의해 가장 최선의 순간에 모든 것들을 마무리짓고 남는 사람들에게 좋은 흔적으로 죽음을 남기자는 이야기다. 서로가 원하는 최선의 시점에 죽음을 겪게 해주는 방법은 적극적 안락사 이외에 없지 않을까.

다만, 무분별한 자살을 막도록 이전에 정신건강의학과 등 충분한 전문적인 면담이 필요하겠고, 말기 환자의 경우로,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 심하여 현대 의학으로 쉽게 조절되지 않는 경우로 제한하여 허용해야 하겠다. 연명의료 결정제도는 본인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제도가 되어야지, 단순히 연명치료를 유지할지 중단할지만 결정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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