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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가 왜곡된 진짜 이유

이세라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발행날짜: 2022-05-02 05:30:00

이세라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대한민국 최고 번화가는 강남구이다. 이곳에는 22년 2월 23일 현재 1802개의 의원이 있다. 이 중 50~70%에 해당하는 의원들이 미용이나 성형과 관련된 진료를 한다. 반면 국민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필수 의료라고 표현하는 내과 의원은 101개, 외과는 34개(이중 18개만 미용성형과 관련이 적은 질병을 진료 중이다) 산부인과는 51개(이 중 분만을 하는 산부인과 의원은 4개소로 7.8%였다.)였다.

이 자료를 보면 건강보험에서 급여를 하는 진료과와 급여를 하지 않는 진료과, 소위 미용성형과의 극명한 대비를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의료 제도의 왜곡을 한 눈에 알려주는 자료인 셈이다.

이런 왜곡이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건강보험에서 보장을 해주는 질병들에 대한 진료비나 수술비는 매우 싸게 책정됐기에, 박리다매로 생존해야 하는 의료기관들은 강남에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소위 ‘고부가 가치’의 진료 분야, 즉 미용성형과들은 강남에 즐비할 수밖에 없다. 설령 강남에서 고군분투하는 급여 분야의 중심의 진료의원들(외과나 내과 등)도 비급여가 있어야만 생존 가능하다. 기실, 이런 현상은 강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국적 현상이다. 다만 강남에서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이런 현상 속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의사와 환자 간 대화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믿을 수 있는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편해지는 것처럼, 환자와 의사의 관계도 그래야 한다. 그런데 의사가 환자와 상담하는 시간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상이 없다. 그러니 의사들은 환자와 대화하는 것보다는 검사나 약이나 주사 처방, 수술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 관계는 쌓이기 어렵고 때론 손상되기까지 한다. 대화와 신뢰 부족은 단순히 환자의 불만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다. 의료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고, 의료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필수의료 분야는 단말마처럼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절대적인 생존의 문제는 물론이고 상대적인 빈곤에 허덕인다. 그것을 보여 주는 직접적인 통계가 강남구에 존재하는 비급여 진료 의원과 급여 진료의원 간 비율이다.

급여진료를 위주로 하는 필수의료 분야의 슬픈 현실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는 국공립병원이다. 이들 병원에도 비급여가 물론 존재하지만, 그것이 주된 진료가 아니기에 적자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국민의 건강을 ‘최종적으로 책임진다’(3차 진료기관)는 사명감 때문에, 혹은 의료의 기본은 필수진료 분야라는 자부심 때문에 국공립병원이나 필수 진료 병의원은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함에도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의료기관 내에 수많은 직역을 둘 수밖에 없다. 병원에는 의사와 간호사만 있는 게 아니다. 사무직, 환경미화직, 전기와 설비 점검, 의무기록, 운전이나 안전을 책임지는 직역도 있다. 이 비용은 과연 어디에서 나올까?

간호사, 간호조무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요양보호사, 간병인 등 수 많은 직역의 사람들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살고 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서 받은 면허증을 활용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거나 휴직 중이다. 이유는 단 하나, ‘보수에 비해 힘들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를 필두로 코로나 19 때문에 모든 국민이 고생했다. 코로나 19와 최전선에서 싸우는 의료진들의 고생과 열정을 부정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의료진들이 고생한 원인은 급증한 코로나 환자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잘못된 의료서비스의 공급 체계와 행정에 있다고 본다.

지금껏 정부는 의료서비스를 ‘통제해야만 하는 분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은 이제는 거두어야 한다. 의료는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 노동 분야이므로 고용을 창출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의료서비스는 비생산적인 투자가 아니라 생산을 위한 재투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래야만 국민에게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건의료인에 대한 인식개선과 처우 개선이 지금보다 적절히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미용성형을 시술하는 병의원도 필요하다. 그러나 의료서비스의 기본은 질병을 치료하는 필수의료분야이다.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이 제공하는 적정한 진료비가 필수일 것이다. 이래야만 환자와 환자 가족도 마음 편히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으면서 치료와 요양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지난 4월 28일, 필수의료 살리기 간담회가 국회의원 회관에서 있었다. 필수의료를 살리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비정상적인 수가 정책 때문이다. 원인을 알려주고 방법을 제시해도 수십 년간 해결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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