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화면 속에 나타나는 의사는 진짜 의사일까? 내가 쓰고 있는 VR 고글 속 병원에서 나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의사는 진짜일까? 진짜라는 질문은 사람일까? 면허일까? 그들이 만약 사람은 아니지만 국가로부터 받은 면허가 있고 허가 받은 범위 안에서 질문과 처방을 하고 있는 '인공지능 의사'라면 어떨까?
코로나로 인해, 이렇게 빨리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미래가 타임머신을 타고 온 느낌이다. 마치 다른 은하계 다른 별에 사는 것 같다. 예전에 살던 지구에서 컴퓨터,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 세상이 석기시대부터 계속되어 온 '편리해진 세상으로의 진화였다면, 새롭게 도착한 은하계의 디지털 세상은 모든 경제·사회의 구성 요소가 디지털화 돼있는 다른 세상'인 듯하다. 지구인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지구와 디지털 은하계를 오가며 살고 있다. 코로나가 지구인들을 강제로 디지털 은하계로 이주시켰지만 대부분의 지구인들은 두려웠던 디지털 은하계 삶에 만족해 하는 눈치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도 디지털 은하계를 포기하고 지구에서만 살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코로나가 가져온 이런 급격한 변화는 자연스럽지만 강력하게 지구의 법과 규범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의료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원격진료가 그렇다. 코로나는 꼭 의사를 만나지 않아도 진단과 처방을 받을 수 있으며, 그것이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시켰다. 물론 아직까지 원격진료의 부작용, 진단이 지연되거나 치료가 늦어지면서 생기는 문제 등에 대한 충분한 연구는 없다. 그럼에도 지구인들은 코로나 완화세로 인해 병원에 갈 수 있음에도 여전히 원격진료를 이용하고 있다. 이런 소비자 트렌드는 정부와 국회가 생각하는 제한적인 원격진료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2002년 허용된 의료인간 비대면 진료는 이미 의사-환자 간의 비대면진료 경험으로 규제의 의미를 잃었고, 2014년부터 시행되어 온 시범사업들의 결과로 지리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 거동이 불편한 사람, 만성질환자 등으로 원격진료의 대상을 제한하자는 것도 지구인들을 설득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현재 발의돼 있는 강병원의원과 최혜영 의원의 법안도 상당한 제한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이것은 모두 과거에 기반한 현재의 문법으로 디지털 세상을 보는 얘기다. 규범은 경험을 앞서가기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미래를 기반으로 규범의 틀을 만들어야 할 때다. 이미 비대면 문화의 확산으로 인한 소비자의 원격의료 선호는 제한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환자들은 어떤 증상이 생긴다면 일차적으로 원격진료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필요하면 대면진료를 추가로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일차의료가 원격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것을 의미한다. 접근성, 지속성, 포괄성 측면에서는 좋아지는 점도 있을 것이다. 반면 원격 일차의료의 의학적 기능은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진단을 위해 문진·시진·촉진·청진 및 각종 임상검사 등을 활용했다면, 문진과 시진 그리고 간단한 자율검사 정보만으로 진단하고 처방해야 한다. 이는 의학적 측면에서는 문진과 시진만으로 가능한 진료의 의학적 가이드라인을 요구한다. 그에 따른 의과대학 교육을 포함한 의학교육 전반의 변화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의료공급체계도 변해야 하고 그에 따른 지불제도 마련돼야 한다. 이렇듯 디지털 은하계에서는 협진체계, 전원체계, 의료기관의 역할, 의료인의 역량 등 모든 것이 새롭게 구성되고 조직화될 것이다.
본질적으로 빠른 속도로 변하고 만들어져 가는 디지털 의료세상을 예측해서 틀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눈 앞에 보이는 위험으로부터 기본권과 안전을 지키고 법률의 체계정당성을 지키는 수준에서 입법적 보완을 해 갈수밖에 없다. 당장은 원격진료라는 진료행위가 청진과 촉진이 없는 통상의 진단을 수행하는 행위와 다르다는 점에서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 원격진료가 화상과 전화를 반드시 포함하는 것인지, 전화진료만도 허용하는 것인지에 대한 정의도 필요하다. 전화진료에서는 시진도 제한되기 때문이다. 원격진료 과정에 개입하는 기업들이 다루는 데이터 보관과 거래를 규제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반면 의료정보 데이터들을 의료계의 경계를 넘어 복지 정보와 함께 결합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만들 필요도 있다.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필수적인 요구이기 때문이다.
당장 필요한 것들을 조치한다고 하더라도 빠르게 변해가는 디지털 헬스와 복지의 시대를 능동적으로 대처해 갈 조직이 필요하다. 정부행정조직이 아닌 ‘대한민국 헬스케어와 복지 5.0 위원회’와 같은 민관합동 위원회가 필요하다. 사회보장위원회처럼 법적 근거를 갖고 행정조직도 갖춰진 위원회여야 한다. 보고서 하나 쓰고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륙법 체계 내에서 기술발전에 불러 올 세상의 틀을 미리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최대한 지식과 이성을 집단적으로 동원해서 상상 가능한 미래를 그려보고 그것이 기본권과 안전을 헤치지 않도록 최대한 허용하는 것, 그리고 사후 평가를 철저히 함으로써 제도를 개선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
이런 노력들이 지속되다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가 가장 부러워하는 혁신적인 의료체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의 경험과 기술력이면 충분하다. 아니 우리나라의 의료혁신을 넘어 대한민국 면허를 가진 인공지능의사가 세계의 무의촌을 누비는 일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은, 대한민국 이과 1등들로 구성된 한국의료계가 두려움과 이해관계를 넘어 세계로 미래로 통 큰 걸음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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