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을 계기로 의료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필수의료'. 정부는 의사단체 및 의학회 의견을 적극 수렴하며 필수의료 강화 대안을 만들고 있다.
의료계는 젊은의사들이 외과계 진료과를 기피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진료과 중에서도 세부 진료과에 대한 핀셋 정책, 외과계 관련 수가 인상 등을 주장하고 있다. 보건행정학계에서는 외과계 기피 이유를 의사 부족으로 꼽고 '재정'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시선을 더했다.
메디칼타임즈는 대한병원협회와 30일 오전 서울 코엑스에서 '보건정책 대전환, 필수의료 강화 방안 어디로 가야 하나'를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강중구 병원장 "외과 수술행위, 의사 업무량 제대로 평가해야"
강중구 일산차병원장(외과)은 주제발표를 통해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이 필수의료 논의 계기가 된 만큼 '신경외과'의 예를 들어 외과계가 외면받고 있는 현실을 짚었다.
단순히 전공의 지원율만 놓고 보면 올해 기준 신경외과 전공의 확보율은 99%로 기피 대상은 아니다. 다만 '뇌수술'을 할 신경외과 의사가 부족한 현실인 만큼 같은 진료과 안에서도 세부전공별 편차가 존재하니 분리해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강 병원장이 공개한 데이터를 보면 전국 85개 수련병원에서 100례 이상의 클리핑(clipping)을 경험한, 즉 숙련된 개두술 의사는 133명, 개두술과 코일링이 모두 가능한 의사는 144명이었다.
신경외과학회가 수집한 개두술 가능한 전문의 69명의 연령을 확인해봤더니 50~59세가 27명으로 가장 많았고 30~39세는 5명으로 70~79세(4명) 다음으로 적었다. 60~69세가 18명, 40~49세가 15명이었다.
그는 "숙련된 개두술 의사가 한 병원당 2명이 채 안되는 현실이고 그나마 수도권에 치우쳐 있어 지방에는 전문가가 특히 부족한 현실을 매우 심각하다"라며 "신경외과 전문분야 중 뇌혈관 전문은 전체의 약 20%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강 병원장은 단순히 수가 인상만이 답이 아니라고 보고 ▲수가 보상을 비롯해 ▲감염병에 투자 ▲지역의료 개선 등 세 가지 측면에서 필수의료 해결책을 제시했다.
수가 보상 방안으로는 중증 수술 및 집중치료실 수가 조정을 비롯해 시간 외 연장근로, 휴일 및 야간에 하는 수술행위에 대한 중복 가산수가 별도 신설을 제안했다.
그는 "외과 수술행위 156개 중 95.%인 149개가 원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이미 외과계가 몰락하고 있다며 국회에서 토론회도 열고 했지만 이후 달라진 게 없다"라며 "외과 수술행위 의사 업무량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상대가치 및 수가 시스템을 전면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밤 10시부터 다음달 새벽 6시까지 처치 수술료 심야가산 100% 수가 신설, 고위험환자 수술 수가 가산, 복수의 외과계 전문의 협업해 시행하는 수술에서는 해당 전문의 시행 수술 각각 100% 산정 등을 구체적으로 내놨다. 또 외과환자 입원료 가산, 각 의료행위별로 만 75세 이상 노인 가산 신설을 제시했다.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콘트롤타워와 리더가 필요하다고 했다. 신종감염병 대응 지침을 개정하고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고도 했다.
지방의료에 대한 투자도 주장했다. 응급, 심혈관 및 뇌혈관 사망률이 높은 진료권은 집중 관리하고 지방 의료기관의 중증 수술 및 시술, 응급 및 중증환자 진료를 지원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상급종합병원 등 대형병원이 없는 지역을 대상으로 지역의 병원 중 공공이든 사립이든 기존 병원을 거점병원으로 지정해 육성하고 특히 산과 및 소아청소년과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라며 분만취약지 지원, 소아응급 취약지 지원, 신생아 중환자실 지원, 소아외과 지원 등을 방안으로 내놨다.
정형선 교수 "건강보험 재정 지속가능성이 관건, 국고지원금부터 쓰자"
보건경제학자인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외과계 전공 기피 문제를 '의사부족'에 있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의사 1인당 수입이 봉직의가 월 1300만원, 개원의가 2700만원이라고 하는데 그 돈이 부족해서 의사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보는가"라고 반문하며 "같은 의사로서 수입이 상대적이지만 미용성형 의사 수입을 만들기 위해 정책적으로 수가를 올려줄 수는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외과계 기피의 근본적인 문제는 2003년 이후로 3000명 선에서 묶여있는 정원 규제에 따른 의사 부족 현상 때문"이라며 "거시적으로 근원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해결이 안된다. 우리나라 중위소득이 한달에 2400만원, 근로자 평균이 한달에 340만원이다. 상대적으로 답답한 것은 있겠지만 수가 인상만으로는 의료정책을 펼칠 수 없다"고 밝혔다.
더불어 거시적인 관점인 '재정' 측면에서 바라봤다. 필수의료 강화를 하더라도 재정이 감당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건강보험은 필요의료(Necessary Services) 중 일부 또는 대부분을 보험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해 필수급여(Essential Package) 항목으로 정하는 것"이라며 이미 박근혜 정부에서도, 문재인 정부에서도 '필수의료'라는 이름으로 급여화는 이뤄져 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건보 급여대상은 폭넓게 유지하되 50~90%의 다양한 본인부담률, 참조가격제 등을 통해 이용자의 비용의식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신의료기술, 혁신의료기술 등의 급여화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지만 아직 환자 요구에 기반한 적정한 가격이 형성되기 전에는 참고가격제 등을 활용해 시장기전을 반영하면서 급여정책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수의료 급여화를 위해서는 비용효과성에 따른 우선순위 설정이 중요하고 가계의 의료비부담과 건강증진 전반에 대한 중장기적 영향을 고려해 급여 항목을 확대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위급성, 심각성 등은 보험급여 우선순위 판단 근거라기보다는 의료제공의 우선순위 기준"이라며 "어떤 서비스가 우선적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해서 꼭 보험급여의 순위가 앞서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병 종류에 따라 급여 여부 또는 급여 수준을 달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용의 크기, 소득수준 등 환자의 금전적 부담 정도에 따라 급여 수준을 달리하는 정교화 과정이 필요하다"라며 "비용효과성 측정을 위한 과학성 확보와 증거의 제시가 쉽지는 않으며 추계를 위한 많은 가정이 정치적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될 가능성이 큰 점은 항시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건강보험 급여비 지출은 현재의 증가율을 반영했을 때 5년 후인 2027년에는 110조원을 넘어선다는 예측을 내놨다. 이에따라 건보제도의 최우선 과제는 의료비 증가 속도를 둔화시키는 것.
정 교수는 "전체 의료비를 적정 규모로 유지하는 게 첫번째 과제"라며 "보장성 확대 과정에서 전체 의료비가 지난 20년 간의 증가속도로 계속된다면 보장 항목의 확대 정책을 재고하고 전체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제2의 과제는 가계의 직접주담 즉, 본인부담 수준을 낮추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국고지원을 높이는 것이 필요한데 이 둘 중 어느 것에 비중을 둘지는 정책 선택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험료율을 인상하거나 국고지원을 확대하기 앞서서 누적적립금 사용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라며 "보장성 강화를 위한 비용은 누적적립금으로 초기 비용을 사용하고 보험료, 국고지원 조정 순서로 충당해야 한다. 보험료율 인상은 누적적립금 10조원 수준이 될 때까지의 감소 추세를 고려해 설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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