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민간보험사에 제공한 건강보험 데이터가 보험상품 개발로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일부 보험사는 공공기관 제공 데이터를 활용해 오히려 보장범위를 확대하는 암 보험 상품을 개발했다.
민간보험사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갖고 있는 건강보험 데이터를 요청하고, 제공까지 하고 있는 현 상황이 '의료민영화'를 가속화한다는 일각의 우려와는 정반대의 결론인 셈이다.
19일 국회 및 의료계에 따르면, 심평원은 최근 보험사, 헬스케어 기업 등에 제공한 빅데이터 현황 자료를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
이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종윤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하남시)을 비롯해 같은 당 강훈식 의원과 전혜숙 의원의 요청에 따라 만들어진 자료다.
특히 최 의원은 지난 12일 열린 건강보험공단과 심평원 국정감사에서 민간기업에 대한 심평원 데이터 제공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기업이 대놓고 '새로운 보험상품 개발' 등을 명시하며 자료를 요청하고 있는데 많게는 10년치 건강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며 민간보험사는 보험설계로 정부 데이터를 악용할 여지가 많다는 게 지적 내용이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이었을 때 개인정보를 비식별화 해 데이터 제공 길을 열어주는 일명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주도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데이터 3법 제정에 따라 비식별화된 데이터를 민간 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넓어졌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까지 나서서 데이터 3법이 신산업 성장을 위한 필수 법안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데이터 3법이 2020년 8월부터 본격 시행된 이후 바뀐 점이라고는 여당이 야당으로 바뀌었다는 것. 정권 교체 후 처음 열린 국정감사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간보험사에 건강보험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심평원, 민간보험사에 데이터 얼마나 제공했나
심평원은 지난해 7월부터 민간보험사 등에 외래, 입원, 고령, 소아청소년의 환자표본자료를 무작위로 추출한 후 비식별 처리해 제공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데이터를 비식별화 하더라도 다른 정보를 조합하면 개인 의료정보 유출이 가능하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는 데이터 3법 제정 전이나 후나 같은 입장이다.
환자표본자료 제공 신청 서류가 접수되면 심평원은 데이터 전문가 자문단을 열고 심의위원회 전 과학적 연구 여부, 연구목적 부합성 등 자문을 한다. 전문가 자문단은 임상연구 5명, 보건의료정보 4명, 정보보호 1명 등 외부 전문가로 꾸려졌다.
검토가 끝나면 공공데이터제공심의위원회를 열고 ▲과학적 연구 해당 여부 ▲제3자 권리침해 여부 ▲정보주체 이익침해 여부 등을 심의해서 정보공개를 최종 결정한다. 공공데이터 심위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해 내부위원 10명, 외부위원 10명으로 총 21명이다. 위원장은 심평원 빅데이터실장이 맡는다.
데이터를 제공 승인을 받은 연구자는 심평원 빅데이터센터에 내방해 폐쇄망에서 분석을 할 수 있다. 외부로 파일 반입 및 반출 모두 불가능하다.
심평원은 9개의 보험사와 9곳의 헬스케어 기업, 한 곳의 제약사 등 총 19개 민간기업에 환자표본자료를 제공했다. 심평원은 이 중 보험사에 상품개발 여부를 확인했고, 그 결과 두 곳에서 신규 암보험 상품을 개발했는데 오히려 보장범위가 확대됐다.
A사는 올해 10월 사전보장 신규 암 보험 상품을 개발했다. 보장범위를 진단 후에서 진단 전까지 확대했다. B사 역시 지난 7월 사전보장 신규 암 보험 상품을 개발했는데 보장범위를 진단 전으로 넓혔다. B사는 심평원 환자표본데이터를 비롯해 건강보험공단에 바늘생검 검사환자 수 등의 정보공개 자료, 통계청의 추계인구 통계를 활용했다.
나머지 8곳의 보험사는 내부적으로 연구보고서 작성에서 마무리하거나 자료를 아예 활용하지 않기로 했다.
심평원은 "환자표본자료는 매년 새롭게 추출한 1년 단위 단년도 자료"라며 "개인식별 등이 불가능한 연속성 없는 단면 자료다. 자료를 무작위 표본 추출 후 비식별 처리해 개인 추적이나 측정이 불가능하도록 한 뒤 결과 통계 값만 확인해 반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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