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언론의 주목을 끈 범죄 사건들 중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사건들이 있었다. 당시 많은 미디어들은 마치 정신질환 그 자체가 범죄의 원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도했다. 정신장애인을 대하는 이러한 언론의 태도는 다수의 사건들에서 공통된 하나의 경향성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이를 다룬 한 연구에서는 정신장애인 관련 사건을 보도한 기사들 중 과반수가 정신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파악하기도 하였다.
정신장애인에게 가혹한 것은 언론의 태도뿐만 아니다. '정신병자'라는 정신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 욕설이나 우스갯소리로 쓰이는 광경을 우리는 가끔 목격할 수 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미디어에, 그리고 일상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그러나 2016년의 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정신질환자 범죄율은 약 0.1% 수준으로 전체 인구 대비 범죄율인 1.4%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의학적으로도 정신질환은 그 자체로 범죄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정신질환에서 범죄가 증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일 테다. 정신장애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대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부당할 뿐만 아니라 통계적, 의학적으로도 그 근거가 상당히 부족하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 사회에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뿌리깊은 사회적 낙인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회적 낙인은 정신장애인이 치료를 받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한다. 이는 정신장애인이 스스로 치료를 거부하거나, 주변의 부정적 인식을 두려워해 치료를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적 낙인이 이들이 느끼는 정신적·사회적 고통을 더욱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신장애인들이 치료를 기피하는 현상은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는데, 보건복지부의 2021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신장애가 있는 것으로 진단된 사람 중에서 평생 동안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는 비율은 12.5%밖에 되지 않았다. 또한 한국의 지난 1년간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은 7.2%로 미국(43.1%), 캐나다(46.5%)와 비교해 볼 때 현저히 낮은 수치였다. 이는 정신장애 평생 유병률인 27.8%와도 큰 격차를 보여, 한국의 정신장애인들이 다른 국가의 정신장애인들에 비해 치료를 요청하고 정신질환을 관리하기 어려운 사회문화적 환경에 놓여 있다는 점을 추정할 수 있었다.
비장애인 시민들이 정신장애인들과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거둘 때 비로소 이들이 적절히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치료 이후에 지역사회에서 정신질환을 적절히 관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정신건강사회복지 전문가인 순천향대 장은숙 교수는 칼럼 작성을 위한 인터뷰에서 지역사회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 바 있다. 정신질환의 경우 지역사회에서의 재활과 관리가 굉장히 중요한데, 한국 사회는 이러한 지역사회의 장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인식 변화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에서 정신질환을 관리하기 위한 다방면에서의 지원 정책 또한 요구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법적 제도 또한 정신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시민으로서 지역사회에서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을 가로막는다. 현행법은 정신질환이 있을 경우 운전면허부터 의료인 면허까지 그 취득에 있어서 광범위한 제한을 가하고 있다. 대부분의 조항이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 원칙적으로 면허나 자격의 취득을 금지하고, 업무 수행 등에 지장이 없을 경우 예외적으로 그 취득을 허용한다. 이에 더해 정신장애가 있을 경우 예외 없이 면허나 자격의 취득을 금지하는 조항들도 존재한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에서 보장하는 직업선택의 자유 및 평등권과 같은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다분하다. 미국이나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는 정신장애인들의 고용과 직업수행에 있어 적합한 수행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검토하는 경우는 있으나 장애나 질환 여부만을 근거로 자격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이러한 해외의 사례들과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을 근거로 2018년에 이러한 제도들의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해당 제도들이 정신장애인을 질환의 경중에 관계없이 잠재적 위험성을 가진 집단으로 낙인찍고 직업수행에서 배제함으로써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복귀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강화하는 제도들도 사회적 논의의 과정을 거쳐 정신장애인들의 일상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어슐러 르 귄의 단편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는 도시의 번영을 위해 지하실에서 고통받는 한 아이가 나온다. 오멜라스의 많은 사람들은 그 아이의 고통을 외면하지만, 성숙한 시민들이라면 누구든 그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신장애인들의 고통에 있어서도 이는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정신장애인들은 오랫동안 사회적 낙인과 차별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지 못했다.
이제라도 정신장애인이 평등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가 모두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존엄하다는 인간 존엄성의 대원칙에 합의한다면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한 방안들에 대해서도 활발히 논의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정신장애인들이 차별과 혐오 없이 행복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서 각자가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적극적으로 고민해 보아야 할 때이다. 지역사회 안에서 모든 정신장애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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