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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치료제 부작용 미고지에 5억7000만 원 배상…의료계 반발

발행날짜: 2023-10-31 11:57:32

페라미플루 환각으로 아파트서 추락…법원 "미고지한 의사 책임"
인과관계 명확하지 않다는 의료계 "정부 필수의료 대책 공염불"

항바이러스제 환각으로 추락해 환자가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된 사건에, 이를 처방한 의사가 수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다.

31일 의료계에 따르면 독감 치료제인 항바이러스 주사제를 맞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된 고등학생 A씨에게, 병원 측이 5억7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항바이러스제 환각으로 추락해 환자가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된 사건에, 이를 처방한 의사가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다.

A씨는 2018년 독감 치료제인 페라미플루를 맞고 다음날 가족들이 외출한 사이 아파트 7층에서 떨어졌다. 이 때 사용된 페라미플루는 환각이나 이상행동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지만, A씨와 그 가족들은 의사로부터 관련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것.

특히 이 약의 설명지에 "소아나 청소년은 이틀 동안 혼자 둬선 안 된다"고 명시된 것이 판결 근거가 됐다.

이와 관련 법원은 "의사가 환자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이 인정된다"며 "치료비와 기대소득 등 약 5억7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이 같은 판결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항바이러스 주사제에서 환각이나 이상행동의 부작용은 의학적으로 명확히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

미래를 생각하는 의사들의 모임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이 같은 판결은 증거 중심주의 법의 원칙을 그 근본부터 허무는 매우 잘못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항바이러스제를 투약하지 않은 독감 환자에게서도 환각이나 이상행동의 부작용이 다수 발생해, 페라미플루만이 환각의 이유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뒷받침하는 의학 논문도 다수 있음에도, 약의 설명지를 근거로 거액의 배상을 판결한 것 역시 문제로 지적했다. 약의 설명지는 환자가 복용한 후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정도로도 경고 문구를 포함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데도 5억7000만 원이라는 거액의 배상금이 판결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 또 이 치료제로 병원 측이 얻은 수익 역시 미미하다고 강조했다.

사법리스크로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또 다시 이 같은 판결이 나온 것이 우려스럽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미래를 생각하는 의사들의 모임은 "이 환자의 피해는 지극히 안타까운 일이다"라며 "하지만 인과관계도 확실치 않은 사건에 대한 부실한 판결이 과연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를 행하는 과정에서 의사들이 평온하게 진료를 할 수 있게 하겠다고 여러 차례 걸쳐 얘기해 왔지만 이는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며 "필수의료를 행하다가 피치 못하게 안 좋은 결과를 당하는 국민에 대한 충분한 배상을 국가가 담당하라. 필수의료 현장에서 어려운 여건에 오늘도 서있는 의사들을 앞장서서 보호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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