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확대 정책이 부실 교육으로 의사 수준의 질적 저하를 불러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의료 생태계의 초토화를 초래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실습 병원에서 최소 400명의 학생을 수용하기 위해선 병원 규모가 최소 1천 병상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상급종합병원급으로의 덩치 불리기 경쟁이 곧 지역 의료기관의 무한 경쟁을 촉발하는 생태계 붕괴의 단초가 된다는 지적이다.
18일 권복규 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는 '의대 증원이 의학교육에 미칠 영향'을 대한의학회에 기고하고 의대 증원이 미칠 의료계의 파장에 대해 심도 깊게 진단했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계획에 따르면 현재 3058명 규모의 의대생은 내년부터 5058명으로 70% 가까이 늘어나게 된다.
권 교수는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 의학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믿는 의학교육자는 거의 없다"며 "기초의학 교수의 정원은 적정 수에 현저히 미달하고 있으며, 조교 등 지원인력조차 충분히 지원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카데바의 기증은 학교마다 매우 큰 편차를 보이고 있고, 실험실습 시설과 장비의 수준도 천차만별"이라며 "게다가 대학 등록금은 십년 이상 동결돼 이러한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한 재원은 크게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무엇보다도 임상에서 실습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로 이는 임상 교수진의 격무에 기인하기 때문에 진료와 연구에 치이는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선 제대로된 교육이 어렵다는 것.
그는 "카데바의 수급과 같은 문제는 단지 예산만 가지고 가능한 것이 아니며, 기초의학 교수의 양성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가 의대 졸업자들이 그 교수직을 원할 만큼 매력적인 처우가 보장돼야 한다"며 "교육이 가능한 임상 환경은 전체 의료 시스템과 맞물려 있는데 당장 2천명을 증원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학교에 따라서는 정원이 49명에서 200명으로 무려 4배 이상 증가하는 곳도 있다"며 "적시에 예산 지원을 한다면 아마 강의실과 실습실 공간은 마련할 수 있겠지만 이를 운용할 인력은 하루아침에 구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교육에는 교수뿐 아니라 각종 해부기사 등 보조인력이 필요하고, 시뮬레이션센터와 같은 실습 시설을 운영하려면 훈련된 인력이 필요하다.
교육의 하드웨어적인 측면은 쉽게 보완이 가능하지만 강의실이나 실험실습 장비와 달리 인력은 교육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며, 한번 채용하면 쉽게 해고하기도 어려워 인건비는 고스란히 학교의 교육 예산에 전가되며 만약 정원이 줄어들기라도 하면 이는 학교에 부담으로 남는다.
권 교수는 "교육이란 초기 투자 비용뿐 아니라 유지관리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며 "정원 증가로 인한 실험실습 장비들은 유지관리와 교체가 필요하고 그 예산도 적지 않아 의대 등록금만으로 이러한 예산을 마련하기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보다 더 큰 문제는 임상실습으로 예컨대 정원이 200명으로 편제된 의대에서 본과 3학년과 4학년이 실습을 나간다고 하면 실습 병원은 최소 400명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학생 400명의 수용을 위해서는 병원 규모가 최소 1천 병상은 훌쩍 넘어야 할 것이며, 임상 교수 숫자도 그만큼 늘어나야 한다"고 전망했다.
그는 "해당 지역 주민들은 지역에 상급 종합병원이 생겼다고 환영할지 모르지만 1천 병상의 상급 종합병원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배후 인구가 1백만 명은 돼야 한다"며 "그 지역 인구 모두가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고 그 병원에만 온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교육병원의 유지를 위해 경증 환자를 놓고 지역의 1차, 2차 의료기관과 경쟁해야 한다면 이는 해당 지역 의료 생태계가 초토화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그렇지 않다면 그 병원은 만성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판단.
권 교수는 "그 정도의 상급 종합병원의 교수들은 해당 분야의 세부 전문가일텐데 그만큼의 환자 풀을 유지하지 못하는 지역에서 본인의 전문성을 유지할 수도 없다"며 "현재의 전공의 TO는 수련기관의 교육/수련 역량이나 수련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고, 전공의를 피교육자가 아닌 저렴한 인력으로 보는 시각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한 해 5천 명의 신규 전공의가 매년 배출된다면 이들은 제대로 된 수련을 받을 수 없다"며 "공공의료시스템을 채택한 몇몇 나라들에서처럼 1~2년간의 기본임상수련을 받게 한 다음 일반의로 일하게 할 수 없다면 제대로 된 전문의 수련은 참으로 어려워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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