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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의학기술 도입에 대한 태도

고상백 교수
발행날짜: 2025-02-28 05:30:00

[연재 칼럼]고상백 교수의 의학과 미술

토머스 이킨스(Thomas Eakins, 1844-1916)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미국 사실주의의 대표적 화가로, 그의 작품은 과학적 정확성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의사를 주제로 한 그의 대표작인 그로스 클리닉(The Gross Clinic, 1875)과 아그뉴 클리닉(The Agnew Clinic, 1889)은 의학적 진보와 의사의 역할을 예술적으로 조명한 걸작이다. 본 칼럼은 이 두 작품을 통해 당시 수술 방식과 소독 기술의 차이를 분석하고, 신기술 수용에 대한 태도가 현대 의학에 주는 교훈을 탐구하고자 한다.

그림. 토머스 이킨스. 그로스 클리닉, 1875 (Thomas Eakins. The Gross Clinic, 1875)

그로스 클리닉은 제퍼슨 의과대학에서 외과의사 새뮤얼 그로스(Samuel Gross)가 공개 수술을 집도하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환자보다 의사의 권위와 전통적 방식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작품 속 새뮤얼 그로스는 당대 미국의사협회장으로, 전통적 수술 방식을 고수하던 인물이다. 그는 손에 칼을 쥔 채 서 있는 모습으로 강인한 의사의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수술 도구와 환경은 위생적이지 않으며, 소독 기술이 전혀 도입되지 않은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묘사는 그로스가 새로운 무균술의 도입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전통적 방식에 대한 고집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로스는 작품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며 수술실의 주인공으로 부각되지만, 환자는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려져 있고, 수술이라는 행위의 배경으로만 나타난다. 이는 당시 의료 환경에서 환자의 역할이 얼마나 수동적이었는지를 상기시키고 있다.

반면, 아그뉴 클리닉은 이전 작품인 그로스 클리닉과는 대조적으로 데이비드 아그뉴(David Agnew) 박사가 펜실베니아 의과대학 수술 환경에서 환자 치료에 집중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당시 의학의 발전과 새로운 기술 수용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 속 의료진은 모두 흰 가운을 착용하고 있으며, 수술실은 밝고 정돈된 환경으로 묘사된다. 이는 소독 기술과 위생 관념이 도입되며 수술 환경이 크게 개선된 것을 상징하고 있다.

아그뉴는 새로운 기술과 방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외과의사로, 작품은 이러한 태도가 환자 치료에 미친 긍정적 영향을 강조했다. 또한, 수술을 받는 젊은 여성 환자는 작품의 주요 요소로 등장하며 그녀의 존재는 단순히 수술 행위의 배경이 아닌 치료의 중심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그로스 클리닉과 아그뉴 클리닉은 의학적 관행과 태도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로스 클리닉은 어두침침하고 침울한 반면, 애그뉴 클리닉은 화사하고 희망적이다.

그로스의 표정은 굳어 있고, 그 곁에 보호자로 보이는 여인은 이미 검은 옷을 입고 울고 있다. 반대로 애그뉴의 표정은 한결 여유 있고, 수술실 청결을 위해 아예 보호자는 출입을 안 시킨 듯 보인다. 전자는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며 기술적, 위생적 혁신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고, 후자는 신기술의 수용과 이를 통한 환자 치료의 개선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 토머스 이킨스. 아그뉴 클리닉, 1889 (Thomas Eakins. The Agnew Clinic, 1889)

이러한 대조는 현대 의학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용할 것인가? 초기 저항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신기술은 의료의 질을 높이고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토머스 이킨스의 그로스 클리닉과 아그뉴 클리닉은 의학적 변화와 신기술 수용의 필요성을 예술적으로 조명한 작품이다.

두 작품은 단순히 수술 장면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료 환경의 변화와 이를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탐구한다. 이를 통해 현대 의학은 새로운 기술과 관행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되, 환자 중심의 접근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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